brunch

매거진 A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카카오AI리포트]여성개발자들의 ‘AI 톡’ 좌담회

여성 AI개발자들이 말하는 'AI와 나'


인공지능(AI) 기술이 향하는 최종 기착지는 결국 우리 ‘인간’인듯 합니다. 인간처럼 보고, 듣고, 말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계는 역설적으로 과연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반추하게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다면 우리의 닮은꼴인 AI가 갖게 될 ‘인간다움'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AI의 시대, 다양성(diversity)과 윤리, 철학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카카오 AI 리포트는 이번 호에서 ‘AI와 여성’을 주제로 AI 연구의 다양성 부족 이슈를 살펴봤습니다.


[카카오 AI 리포트] Vol. 4는 다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Review - AI와 여성: Women in AI

01. 정수헌 : 페이페이 리의 꿈과 도전, ‘모두를 위한 AI’

02. 김대원 : 여성 AI 개발자들이 말하는 ‘AI와 나’ (이번 글)


[2] Industry - AI 알고리듬의 비밀

03. 전상혁, 김광섭 : 내 손안의 AI 비서, 콘텐츠 추천 알고리듬

04. 최성준, 이경재 : 알파고를 탄생시킨 강화학습의 비밀


[3] Information

05. 김연지 : 카카오 북클럽 추천 AI 도서 모음


[카카오 AI 리포트] Vol. 4 전체글 다운받기


내용 중간의 [ ]는 뒷부분에 설명 및 관련 문헌의 소개 내용이 있음을 알리는 부호입니다. 예를 들어, [1]에 대한 설명은 '설명 및 참고문헌'의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AI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AI가 현실 세계의 편견과 편향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남성 연구자 위주의 IT 문화도 AI 연구 내 다양성 부족의 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카카오는 현재 사내에서 AI 연구와 개발을 맡고 있는 여성 개발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고자 지난 5월 15일 사내 좌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좌담회에 참가한 한 여성 개발자는 갓난아기를 길렀던 육아 경험이 인간처럼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는 AI 서비스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은 통찰력을 줬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개발자는 “AI 연구는 실생활과 밀접한, 재미난 일들이 가득한 분야”라며 관심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꼭 한번 AI 연구에 도전해볼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좌담회를 마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습니다. 참가자들의 성명은 아래 참조

이날 좌담회에는 5명의 카카오 여성 개발자(김미훈, 김은화, 김소윤, 서가은, 안애림)(가나다 순)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날 사회는 경력 16년 차의 여성 개발자인 김연지 님(카카오 인프라실)[1]이 맡았습니다. 공대 출신의 여성 개발자가 여성 AI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회자로 적격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참석자 소개는 현재 AI 개발 부문 내에서 각자 맡고 있는 역할, 개발자로서 특기와 관심분야, 유관 경력, 본인이 연구 및 개발 중인 AI 분야의 매력 등 공통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참가자들의 간략한 자기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김미훈 님(AI 브리지 TF)

현재 카카오 AI팀에 소속되어 시퀀스-투-시퀀스(sequence-to-sequence)라는 모델링 방법으로 심층 신경망 기반 기계 번역기를 개발 중이다. 이 모델링 방법은 기계번역뿐만 아니라 최근 음성인식, TTS(text-to-speech), 이미지 캡션(image caption) 등에도 사용되어 좋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는 방법이지만 인간의 인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 과연 러닝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자주 한다. 사람과 같이 언어를 인지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알파고가 프로기사들에게 한수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사람보다 인간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하는 기계를 상상해 본다. 


김은화 님(AI 자연어처리파트) 

언어처리 모듈에 필요한 언어지식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챗봇을 위한 도메인별 발화문의 의도 분석 및 언어처리 업무를 수행 중이다. 자연스러운 대화와 인공지능적 처리를 위해 상황에 따른 문맥을 잘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담화 분석에 관심이 많다. 졸업 후 언어처리 연구실의 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자연어처리 기반 기술 회사에서 자동응답, 오피니언 마이닝, 대화형 챗봇 개발에 참여하는 등 16년째 이 분야를 연구 중이다. 사람의 언어를 기계가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속된 말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AI 친구가 생길 날을 기대해 본다. 


김소윤 님(AI 음성처리파트) 

음성처리 파트에서 음성인식 엔진의 언어모델링을 담당하고 있다. 데이터 정제, 형태소 분석, 발음열 생성, 인식 네트워크 구성 등을 맡고 있다. 언어모델을 확률 기반이 아닌 신경망(Neural Network) 기반으로 바꾸는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기계와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음성으로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늘고 있고, 음성인식/합성은 곧 AI플랫폼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모든 목소리를 완벽하게 인식하고 사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더 성능이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가은 님(AI 자연어처리파트)

대화처리시스템 내 자연언어이해(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 NLU)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NLU는 사용자 발화의 의도를 인식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보면, “오늘 우산 챙길까?"라고 말했을 때 발화자의 의도는 ‘오늘 비올 확률’을 묻는 것이다. 이렇듯 발화자의 언어 속에 숨은 의미까지 파악하는 것을 NLU로 이해하면 된다. 학부 시절 자연어처리 연구실에서 오피니언 마이닝(opinion mining) 분야를 접하게 되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자연어 처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실무 경력은 5년이다. 자연어 처리 분야는 검색, 추천, 대화 등 쓰임도 많고,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됐다. 자연어 처리가 발달하면 연쇄적으로 많은 분야들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애림 님(AI 자연어처리파트) 

한국어를 자동으로 분석, 처리하는 데 필요한 언어학적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사전과 규칙 기반의 데이터 구축과 시스템 성능을 높이기 위한 언어 분석이 주 업무다. 자연어처리는 형태소 분석뿐만 아니라 통사(구조) 분석, 의미 분석, 담화 분석 등 다양한 레벨에서 기술이 축적되어야 한다. 각 기술별로 필요한 언어분석과 데이터 구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적용 가능한 응용언어학 이론을 꾸준히 연구, 개발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전산언어학을 공부하며 배운 지식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이 분야 개발일을 시작하게 됐다. 자연어처리 실무 경력은 만 5년. 자연어처리는 서비스의 뒷단에 있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AI의 기반 기술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한 데이터가 적용된 모듈이 전반적인 시스템 성능 향상에 기여를 하는 과정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글 들어가기에 앞서: 좌담회에 참가한 여성 AI 개발자들은 각자의 이름을 발언별로 표기했습니다. 사회자 질문은 Q로 표기했습니다. 



Q. 최일선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개발 업무를 하고 계신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AI 개념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서가은 : AI에 대한 개념은 현재 그려지고 있는 단계라고 본다. AI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AI가 가진 개념의 외연을 크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좁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인공지능은 나중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액션 자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거나, 사람의 말을 인식한 뒤 답을 해주는 기술이 인공지능으로 간주되지만, 향후에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만한 기술들이 인공지능의 범주 안에 속하게 될 것이다. 


안애림 : 언어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언어학적 지식이 컴퓨터 공학과 접목하여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AI를 생각해보게 된다.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사람의 요구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인간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 중에 언어를 듣고 이해하는 게, 기계가 사람다워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에서 AI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 


서가은 : 음성인식, 즉 말을 인지하는 것만을 AI라고 하는 것은 매우 미시적인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 이외에 여러 가지 행동으로 생각을 표현한다. 말하면서 취하는 제스처, 상대를 바라보는 태도 등 이런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AI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 AI라고 볼 수 있다. 


김소윤 : 음성 인식의 경우, 신경망(neural network)을 적용시키기 전과 후의 성능 차이를 비교해보면, 신경망의 적용 이후 음성 인식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이와 관련된 용어로 AI라는 용어가 부상했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AI의 개념이 모호해진 것은 AI의 적용 범위에 대한 고민이 확장되면서부터이다.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는 시점에서 AI의 개념은 더욱 모호해질 것 같다. 현재 AI에 대한 연구나 개발은 ‘과연 이게 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후 한 곳에서 관련 유의성이 확인되면, 다른 분야에서 AI 적용 가능성을 고민하는 그런 단계이다. 


김미훈 : AI의 폭이 넓어졌다기보다는, AI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AI 연구를 한다고 포괄적으로 말하지만, 예전에는 음성 인식, 컴퓨터 시각(computer vision) 등 구체적인 범위를 특정해 자신의 연구 분야를 설명했다. 지금 논문을 보면 20~30년 전에 이미 공개된 알고리듬들이 지금 빛을 보는 경우가 많다. 역설적인 것은 그 알고리듬을 10여 년 전 어떤 과제(task)에 적용해 보니 성능이 가장 낮게 나오기도 했다. 이전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까닭은 데이터와 컴퓨터 능력(computing power) 때문이다. 여러 여건들이 맞물려 성능이 좋게 나오면서 AI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엄청 넓어졌다. 사회적 주목도가 높아지고, 관련된 일을 조금이라도 된다면 너도 나도 AI라고 하면서 AI 개념의 외연이 넓어졌지 AI, 그 자체 범주가 넓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Q. AI의 발전은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하나? 그리고 향후 AI 발전의 관건은 무엇인가? 


김소윤 : 개인적으로는 음식인식이 어느 정도 성능까지 올라가게 되면, 더 이상 성능을 향상시킬 수 없는 한계점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개발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 같다. 


안애림 : 딥러닝이나 학습기반의 자동화로 가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성능에 다다랐을 때 언어 공학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만이 갖고 있는 정교함을 AI에 녹여내는 것이 향후 AI 발전의 관건이다. 


김은화 : 비서형 AI는 제공되는 정보량에 따라 충분히 만족하는 단계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지만, 더 진화하여 감정 소통까지 하는 AI 발전까지는 갈 길이 멀다.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김미훈 : 신경정보처리시스템 학회(NIPS)[2]는 예전에는 변두리 학회였다. 예전에는 (주요 연구진의 소재지인) 캐나다에서만 개최되었는데, 작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했고 가장 주목받는 학회가 됐다. NIPS의 성장에는 자기 분야에 확신을 가지고 경주한 연구자들의 공도 크지만 캐나다 정부의 지원 및 투자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 화두가 되는 딥러닝에서 제일 유명한 세 교수 중 두 명이 캐나다에서 연구를 했는데, 모두가 신경망 연구가 죽었다고 평가했을 때, 캐나다 정부는 10년간 이상 투자를 해줬다. 


서가은 : AI의 미래상을 정확하게 전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AI가 예전의 ‘빅데이터’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빅데이터는 마치 적용을 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되는듯한 이미지가 있었다. 지금 AI가 우리 사회에서 그런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관건은 AI에 내재된 가치가 꾸준히 발현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 잘할 수 있도록 회사든, 국가든 그 가치를 알고 투자해주고, 기다려주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Q. AI 연구 및 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안애림 : AI 분야는 아직 미지의 세계인 것 같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 수 없고, 아직 아무도 도달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기대치도 높다. 요즘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개발한 AI 서비스가 대중들에게 소개되는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컴퓨터 공학적 기술은 이러한 기업을 쫓아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영어’와 ‘한국어’가 가지는 언어 분석의 난이도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어 분석이 훨씬 까다롭다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욱이 말뭉치인 코퍼스(corpus) 등과 같은 언어 자원의 양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어 AI 연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성과를 바라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할 거 같다. 


서가은 : 정해진 답이 없다. 이 부분이 제일 어렵다. 인공지능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어디까지 상상하고, 기대하고 있는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다. 다른 개발 분야와는 달리 뚜렷한 정답이 없다. 그래서 너무 어렵다. 


김은화 : 상황에 따른 문맥을 파악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같은 문장이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의도로 해석되어야 하기도 하는데, 사람끼리의 대화 간에도 파악하기 어려운 일이라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이다.
 

김소윤 : 대학원의 경험이 없어서인지 처음에 논문을 보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욕심을 버리고 한번 보고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언젠가는 이해가 되겠지 하는 편한 마음으로 논문을 마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시도해 보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 때가 가장 힘들다. 내가 지금 구현하는 이 방법이 맞는 과정인지 혼자서는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힘들다. 실험해보지 않으면 이 시도가 맞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AI 연구는 많은 경험치가 능력을 만드는 그런 분야라고 생각한다. 



Q. 개발자로 일하면서 사회자 본인은 여성 차별을 느낀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차별 없는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가은 : IT 직종이 차별이 더 적은 것 같기는 하다. 학부 때 연구실에 한 2년 정도 있었는데, 선배들이 여자라고 봐주는 거 없다 하더니 정말 같이 밤새고 눈곱 뗄 시간도 안 주고 남자처럼 대했다. 회사에서도 여성 차별적인 요소들이 없다. 오히려 연구실에 있을 때보다 남자 동료들이 더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종 업계에 다니는 친구들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의견이 묵살되고 주요 논의 자리에 배제되는 사례를 전해 들었는데, 카카오에서는 그런 차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경우에도 의견이 참신하고 보다 큰 능력을 갖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학력,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하게 이뤄진다. 카카오만의 특징일 수 있다. 


김소윤 :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 IT 업계 외에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개발자는 성별, 나이 상관없이 개인 역량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라고 본다. 여성 개발자분들이 빨리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후배들 얘기를 들어 보면 여학생들이 과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고 들었다. 곧 현업에서도 여성 개발자가 더 많아질 거라고 본다. 



Q. AI를 분석하고 공부하는 데 있어 남성들에 비해 여성이 조금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은 무엇인가? 


김미훈 : 아이를 키우면서, AI 연구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기와 아기를 키우는 시기가 겹쳤다. 아이가 자라며 이것저것을 터득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기는 어떻게 배우지?’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것을 기술에 어떻게 적용할 지도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기술이 인간을 닮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기계와 사람이 배우는 방식은 다르다. 자연어처리를 예로 들어 보면 자연어처리는 동사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아이는 명사 중심으로 말을 배운다. 차가 지나갈 때, 아이는 “차가 지나간다"라고 말을 하지 않고, “차" 이렇게 명사만을 말한다. 아이에게는 본질(entity)이 중요한 것이다. 이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를 자연어 처리 시스템을 만들 때 고민하곤 한다. 


안애림 : AI 연구 내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현재 연구하는 분야(자연어처리)는 여성들이 경쟁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한다. 현재 내가 개발하는 분야는 많은 양의 언어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는 일이 주 업무이다. 일반적인 규칙에 적용 가능한 언어 현상들 외에 예외적인 언어 현상들을 기계가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깊이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이 분야에서 여성 연구자가 다양한 관점으로 데이터를 세심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경쟁력을 더욱 잘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소윤 : 굉장히 거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작업이다 보니 개발을 하면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몇 시간부터 최대 며칠째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분야를 깊게 공부해야 해서 끈기도 필요하다. 조금 더 세심하게 데이터 관리를 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는 여성들이 조금 더 능력이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김은화: AI 연구를 위해 행동이나 언어 패턴을 분석함에 있어서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것 같다. 하지만, 여성이라서기 보다는 개인의 성격과 성향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섬세한 성격의 남성 언어학자도 있다. 



Q. 이번엔 사회자로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졌을 때는 중학교 1학년 과학시간 때 이슬점 배우는 공식이 잘 이해가 됐을 때였다. 공학 분야에 종사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영향도 공대를 택하게 된 주요 요인이 됐다. 다른 분들의 경우, 공대 혹은 공학과 관련된 진로를 택하게 된 이유 또는 계기가 무엇이었는가? 


서가은 : 7살 위인 둘째 언니가 컴퓨터 공학 전공이었는데, 그런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언니가 코딩(coding)을 하는 모습이 꽤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나도 그럼 컴퓨터 할래”라고 진로를 결정했다. 언니의 꾐에 넘어간 면도 있다. 언니는 “컴퓨터는 계속 쓰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을 거야"라고 조언했다. 


안애림 : 인문계를 졸업해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언어학은 말을 잘하고 싶어서였다. 아나운서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대학 4년을 보낸 어느 날, '배운 걸 어디에 써먹지?'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학부 수업 중에 컴퓨터 공학과 언어지식을 접목해서 결과물을 내는 수업을 수강하게 됐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내가 배운 것과 알고 있는 지식을 엮어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대학원에서 전산언어학을 전공했고, 전산 지식과 언어가 합쳐지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지금 개발 직군에서 다른 개발자들과 협업을 하며 기여할 수 있는 것에 굉장히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김은화 :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사실 수학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졸업 후 전산학과 자연어처리 연구실에서 교수님 연구 자료를 관리하다가 언어처리 국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연어처리 연구 분야를 접하게 됐다. 수학적인 것은 서툴지만, 언어학적인 자연어 처리를 위해 문장 구조, 문맥, 동의어 관계 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진 장점이 시너지를 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컴퓨터 공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언어학적 접근으로 AI가 발달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김소윤 : 정보컴퓨터공학부로 대학에 입학했다. 산업공학자의 길을 택할 생각이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컴퓨터공학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전공이 어려워서 3학년 때까지 헤맸다. 3학년 때 연합개발동아리에서 디자이너, 기획자, 개발자와 같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발의 재미를 알게 됐다. 어떤 값을 입력했을 때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구조가 매력적이었다. 


김미훈 :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탁구 공의 둘레에 있는 점이랑 지구 적도에 있는 점의 개수가 어떤 게 더 많은 지를 질문하셨다. 탁구공은 작고 지구는 큰 데 어떻게 점의 개수 차이를 물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도 학교에서도 며칠째 그 문제를 고민하고 찾고 하면서 처음으로 맵핑(mapping)이라는 개념을 이해했다. 그때부터 수학이란 걸 좋아하게 됐고, 대학 전공을 수학과로 정했다. 처음에 상상했던 전공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수학이란 학문 그 자체로 좋았다. 졸업 후, 우연히 자연어 처리 프로젝트를 하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대학원 전공을 자연어 처리 분야로 하게 됐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기를 키우면서 진짜 지능이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게 됐고 그래서 더욱 흥미를 갖고 연구를 계속하며 여기까지 오게 됐다. 지금 딥러닝을 연구 중인데 관련 논문에 나오는 전문지식들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통찰력을 배우는 그 자체가 너무 재밌다. 



Q. 참가자들이 AI 분야를 택하게 된 계기를 들어보니, 노출된 주변 환경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후배 여성들에게 AI 개발(연구)을 추천해주고 싶은지, 아울러 AI 개발(연구)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어떤 역량을 가지게 되면 좋을 지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 


서가은 : 일단 개발을 하려면 개발이 재미있어야 한다. 일명 ‘개발 덕심'이 있어야 한다. 성적에 맞춰서 전공을 택한 친구들은 필기시험은 잘 보는데, 코딩 공부를 할 생각은 없는 사례들이 많았다. 학문적으로는 선형대수학을 AI 개발자가 갖춰야 할 지식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덕목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흥미와 욕심이 있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길 바란다. 생소한 것 같지만 실생활과 굉장히 밀접하고 재밌는 일들이 많다. 


김소윤 : 학부 1학년 때까지 개발에 흥미를 못 가지다가 이후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개발에) 흥미를 가졌다. 1학년 때 개발이 재미없다고 해도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학교 과제가 아닌 흥미로운 프로젝트 하나만 해봐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김은화 : AI는 결국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다양하고 굉장히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분석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품질이 좋아지는 만큼 반복적으로 하는 일에 대한 끈기가 중요하다. 


김미훈 : 일단은 자신의 일을 좋아해야 최고의 창조물이 나온다. 지금 딥러닝 연구의 진입장벽은 낮은 편이지만 뭔가 깊이 하고 싶다면 전문가들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코딩 실력이다. 남성 개발자들은 코딩에 필요한 툴(tool)을 잘 찾아서 쓰는 편인 반면 여성 개발자들은 그런 부분들이 좀 약하다. 두 번째는 수학 실력이다. 공업수학, 통계, 그리고 미적분은 기본이고, 선형 대수는 최소한 알아야 한다. 또한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 최적화(optimization) 이런 것까지 알면 대부분의 딥러닝 연구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도메인 지식이다. 여러 도메인, 자연어처리, 음성인식 등 여러 도메인에 쓰는 알고리듬들은 모두 유사하다. 하지만 타겟팅하는 결과는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를 잘 이해하는데 도메인 지식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현업에서 경험하게 된다.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뇌과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알파고 개발 회사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도 뇌과학(인지신경과학) 전공자이다. 


안애림 : 물론 다양한 학문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사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아울러 자신의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사회적인 트렌드와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AI 개발자가 되어야지’가 아닌,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에서 성실하게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으면 한다. 




[1] 설명 | 김연지 님은 카카오 임팩트 북클럽의 리더로서 이번 호 'information' 파트에 실린 ‘AI 그리고 미래사회를 위한 책들’을 쓴 필자이기도 합니다. 

[2] 설명 |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의 각 영문 글자 앞자를 따서 만든 말. NIPS는 AI연구 분야에서 기계학습 국제컨퍼런스(International Conference on Machine Learning, ICML)과 더불어 AI 연구 결과가 발표되는 대표적인 학회로 꼽힌다. 2017년 5월에 발행된 카카오 AI 리포트 3호에는 2005년부터 2016년 사이 두 학회를 통해 발표된 논문 6,163건에 대한 메타 분석 결과가 담겨 있다(https://brunch.co.kr/@kakao-it/63). 




[ 카카오 AI 리포트 Vol. 4 목차 ] 


[1] Review - AI와 여성: Women in AI

01. 정수헌 : 페이페이 리의 꿈과 도전, ‘모두를 위한 AI’

02. 김대원 : 여성 AI 개발자들이 말하는 ‘AI와 나’ (이번글)


[2] Industry - AI 알고리듬의 비밀

03. 전상혁, 김광섭 : 내 손안의 AI 비서, 콘텐츠 추천 알고리듬

04. 최성준, 이경재 : 알파고를 탄생시킨 강화학습의 비밀


[3] Information

05. 김연지 : 카카오 북클럽 추천 AI 도서 모음

매거진의 이전글 [카카오AI리포트]내 손안의 AI 비서, 추천 알고리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