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사과처럼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아 냉장고 구석에 밀쳐놓고 예쁘고 성한 것으로만 부러 골라 먹는다. 먼저 먹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러다 속까지 썩어 문드러진 걸 발견하고 그 옆에 있던 멀쩡한 사과까지 썩어버린 걸 발견하게 된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천만 돌파 기념으로 박보검이 추천한 만화 중 세 편을 보면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을 준다고 해서 본 '김비서가 왜 그럴까.' 4회까지 봤는데 4화에 나오는 박사장의 멍든 사과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냉장고 신선실에 멍든 사과 하나가 눈에 보여. 그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면 되지만, 귀찮고 께름칙해서 구석으로 밀어놓고는 괜찮은 과일을 먼저 먹지. 그렇게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사과를 어느 날 꺼내 보면...그땐 도려내고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속까지 썩어있는 거야."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 중인 웹툰 <김 비서가 왜 그럴까>, 4화 중에서. 원작 정경윤, 웹툰 김명미
그래, 좀 상태 안 좋거나 무른 사과는 먼저 먹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밀쳐놓고 먹지 않게 된다. 예쁜 것부터 먼저 먹고. 내가 최근에 그랬었다. 먼저 먹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먹기 싫음. 밀쳐놓고 밀쳐놓다 보면 썩어서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림. 그걸 남녀 관계에서 찾아오는 권태기에 비유한 대사였는데 최근에 썩은 사과를 보며 "무른 걸 먼저 먹어야 했는데 사람 마음이 예쁜 것부터 먹고 싶지"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문제를 덮어두기만 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손대기 싫다고, 겁이 난다고 밀쳐두면 나중엔 손 쓸 수 없이 커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든 사과처럼 문제 풀이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