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단팥인생 이야기

귀기울인다는 것

by 기록 생활자

이것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일어난 사건이었다

도리야키 가게에 진 빚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도리야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청년 앞에 한 할머니가 나타난다. 자신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해달라고 하는 할머니. 어딘가 몸도 불편해 보이고 그 할머니의 굽은 손가락도 신경이 쓰여 거절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음날 다시 그 청년을 찾아와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팥이 담긴 통을 내민다. 엉겁결에 받아들고 무심코 맛 보게 되는 청년은 할머니에게 부탁한다. 도리야키에 넣을 팥을 만들어 달라고.

그리고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고,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할머니는 곧 가게를 떠나게 된다. 할머니가 한센병(나병)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완쾌된 몸이지만 할머니는 그 사실이 알려진 후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스스로 가게를 그만둔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앙-단팥 인생 이야기>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할머니는 도리야키 가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기쁨을 누리지만 이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소금이 인생의 맛이라면 소금의 짠맛 속에 숨어 소금과 만나 단맛을 배가시키는 설탕은 행복은 아닐까. 소금은 설탕의 단맛을 배가시킨다. 어린시절에는 슬플 때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앙-단팥 인생 이야기는 인생에 단팥과 같은 단맛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단맛처럼 인생을 위로해주는 단팥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단팥빵이 먹고 싶어졌다. 책을 읽다 보면 두고 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만나게 되는데 이 책이 내게 그랬다.


영화 <앙-단팥 인생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고 읽었음에도 할머니의 사연에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났던 것은 우리나라에도 소록도에 모여 사는 한센인들이 있고, 그들이 아이를 낙태해야 했던 아픈 상처를 안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언론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모습 위에 소록도 한센인들의 삶이 오버랩됐다.

오래도록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최근에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읽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단지 숨이 붙어있기에 살아야 하는 삶에 관하여. 누구의 인생에나 단맛을 느끼며 슬픔을 떨쳐버리고 싶은 날, 잠깐이라도 행복을 찾고 싶은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인생에 단팥과 같은 단맛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오늘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날이라면 한 번 만나보면 좋을 것이다.


내가 팥을 삶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은 종종 물었죠. 팥에 얼굴을 대고 있는 나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고 말입니다. 나는 그저 듣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해도 사장님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에 그냥 애매하게 흘려버렸지요. 팥의 안색을 살피는 것, 팥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건 팥이 겪어온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어떤 바람을 맞으며 컸는지 그 여행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160쪽)

밖을 걸을 수 있는 기쁨. 그게 크면 클수록 잃어버린 시간,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인생이 고통으로 엄습해왔습니다. 이 기분, 이해할까요? 여기 있는 모두가 어딘가에 나가면 지친 얼굴로 돌아옵니다. 육체적으로 피로해서가 아니라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 고통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과자를 만들었습니다. 달콤한 과자를 만들어서 눈물 짓는 사람에게 건넸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나도 살 수 있었습니다. (229쪽)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두리안 스케가와 장편소설/ 이수미 옮김/은행나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각을 확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