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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Oct 20. 2021

이 책을 다 읽고도 기자 하고 싶을까

10년 차 기자가 추천하는 기자 관련 소설 5선

모든 '업계'는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보는 기자의 세계는 '정의로운 언론인'과 '기레기'라는 스펙트럼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안에서 지켜본 기자의 세계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언제 보람을 느끼고, 언제 회의를 느끼는지, 어떤 상황을 선호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는 그 업계 사람들만이 경험적이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짧은 10년의 기자 생활을 거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많은 '언론인'에 대한 책과 글을 보았다. 어떤 것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아픈 내용이어서 보기가 싫었고, 어떤 것은 심각한 수박 겉핥기 수준이어서 보기에 민망했다. 기자의 루틴 한 취재를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내용을 볼 때면 '아이고 이 정도는 아닌데' 싶었고, 온갖 우울하고 부정적인 내용만 모아놓은 것을 볼 때도 '아이고 이 정도는 아닌데' 했다.


그러다 우연히 1, 2년 전부터 기자들이 쓴 언론계에 대한 소설을 몇 권 접하게 됐다. '이 정도면 실체에 가깝다' 하는 생각이 든 책들이 몇 권 있었다. 혹시나 언론인을 꿈꾸는 분들이 계실까 봐 감히 최근에 읽어본 언론 관련 소설을 다섯 권 정도 추천해보려 한다. 추천하는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책을 보면서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눈살이 지나치게 찌푸려지지 않을 것. 두 번째, 너무 적나라해 고통스럽기보다는 적당히 소설의 재미를 갖추고 있을 것. 아,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공통점. 저자가 모두 기자 출신.


※ 혹시 또 다른 소설을 추천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히 읽어보겠습니다.

※ 추천은 순위가 아니라 가나다 순입니다.




1.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송경화 저)

자신의 취재담을 적당히 픽션화해 정리했다. 수습기자부터 시작해 아직 연차가 낮았던 시절의 고민과 즐거움, 곤란했던 기억들, 열정 넘치는 주니어에서 조금씩 기자의 모습을 갖춰가는데서 느껴지는 번민을 잘 정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챕터가 재미있었다. 취재원들과의 밀당(?) 스토리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들이라 아는 선후배와 술 한잔 하는 기분으로 호로록 읽었다. 기자 입장에서 사실 남의 취재 후기를 듣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은 항상 다른 뛰어난 기자들을 보면서 '와 저걸 어떻게 취재했지' '와 저걸 어떻게 생각해냈지'하며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2. 미드나잇 저널 (혼조 마사토 저)

한국의 취재 문화 중 많은 부분이 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 기자사회의 그것을 답습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본의 기자 소재 소설은 한국과도 비슷한 면이 많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법조팀에서 한참 고생하던  동기가 재미있다며 추천해줘 읽게 됐다. '한 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과 질문-응답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들, 취재원과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곰 같은 여우처럼 노력하는 주인공과 조연들의 모습에서 그 동기가 크게 공감한 것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취재 현장에서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의 답변을 좌우한다는 것을 최근 들어 특히 자주 느끼고 있어서 더 기억이 자주 나는 책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자는 받아 적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이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중요한 취재와 단독 기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단어를 기사에 쓰기 위해 무던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알아도 못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말의 무게를 다시금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3.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진동 저)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에 추천한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에 대한 취재 후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데스크로서 기사를 준비하고, 판단하고, 지시하고, 검증하고, 쓰고, 대응하는 그 과정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언론 보도가 이뤄지는데 기자들이 하는 고민의 실체와 사고의 흐름이 잘 드러나 있었다. 사실 최근에는 읽은 적 없는데, 다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덧으로, 현직 의원이신 모 언론사 기자와의 일화가 나오는 대목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기자들은 굴욕으로 여기는 '기자 취재'를 그분은 잘하셨던 듯하다.(설마 이마저도 마타도어?)




4. 침묵주의보 (정진영 저)

드라마는 보지 마라. 두 번 말한다. 드라마는 보지 마라. 다른 책들이 기자들의 '취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잘 담고 있다면, 이 소설은 '회사원으로서의' 기자를 잘 담고 있다. 기자들이 처해야 하는 다소의 부조리한 상황들, 그러나 크게 문제 제기하기도 애매한 그 상황들을 적절히 소설의 전개 속에 담아두었다. 몇몇 대목은 기자들이라면 알만한 일화나 소문이 적당히 각색된 형태로 반영돼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다른 소설들이 주로 사회부 기자들의 일에 가까운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면, 이 소설은 경제산업부 쪽에서 접했을 법한 내용도 많이 담겨 있어 결이 조금 다르다는 점도 다른 책에 비해 특장점인 듯하다.




5.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저)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를 배경으로 '총괄 데스크'로 지정된 주인공의 번민과 사내에서의 투쟁을 다루고 있다.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세월호 참사 때와 유사한 상황 설정, 현장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이나 어떠한 인식의 상황과 유사한 묘사나 전개가 많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잠도 못 자고 번민에 시달리며 지면을 만들고, 그것이 좌절되고, 가족과는 소원하고, 인생이 조져지는 그 과정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었다. 특히 책 중간의 '확인이 애매하게 된 기사를 1면에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라는 주제의 챕터는 기자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부분이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어우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사실 기자를 소재로 한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 듯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기자들의 일도 투입과 결과물이 절대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 같은 엔딩은 없다. 하루 종일 굴러도 허무한 날이 있고, 전화 한두 번으로 그럴싸한 단독이 나오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소설과 드라마는 항상 뭔가 결실과 결말이 있다. 취재와 '1등 지면'을 만드는데 실패하더라도, 주인공의 상황과 그 미래는 항상 멋지고 그럴듯하게 의미가 있는 것처럼 포장돼 있더라. 그래서 읽을 때면 위안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참, 제목에 답을 해야한다. 이 책을 추천받은 기자 지망생 여러분들은, 과연 이 책을 다 읽고도 기자가 하고 싶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열혈 기자'의 공통점은 '가끔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고, 새벽이고 밤이고 뛰쳐나간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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