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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r 04. 2021

서민, 진중권과 초6 권기범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시사 이슈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중권 씨와 서민 교수의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니까, 반문의 아군은 현 야당인 셈이다, 뭐 그런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조국 이슈'가 그들의 노선 변경의 시작이었고, 그들에 대한 친문의 공격은 어떤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평소 말을 독하게 했던 사람들 답게, 적의 적이 되었지만 독설은 여전하다. 똑같이 비아냥대도 타격이 더 크다.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다. 84년생 권기범의 13살 시절을 생각해보니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매주 수요일이었나, 6개 조로 나눠 학급회의를 했다. 6개 조는 나름의 이름이 있었다. 미화부, 체육부, 학예부(?) 등등…. 나는 아마 체육부였다. 체육은 못하지만 체육부 자리가 내 자리와 제일 가까웠다.


그런데 학급회의 답지 않게 격론이 벌어질 때가 있었다. 학급 운영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리곤 했다. 예를 들면 '체육복을 갈아 입을 때 여자들만 화장실에 가서 갈아입고 남자들은 교실에서 당당히 갈아입는다. 불평등하다' 같은 의제다.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건설적인 회의였다. 그래도 나는 내 자리와 가까운 체육부였다.


체육부장, 이라고 쓰고 당시 가장 힘이 셌던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반대다." 다른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부는 다 남자애들이었다. 남녀는 불평등해야 한다는 사악한 생각보다는 화장실 가서 갈아입기 귀찮다는 본능에 따른 의사결정이었다. 아이가 또 말했다. "기범아, 니가 발표해라."


나는 고민이 됐, 아니 고민하지 않았다. 반대할 이유를 만들자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누구도 너희에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 적이 없다.' '차라리 남자들이 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 되지 않느냐.' 초등학생의 머릿 속에는 온갖 논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려한(내 기억에는 유려한) 발표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체육복 갈아입는 게 귀찮았다. 하지만 논리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만약 여학생들을 옹호하라고 했어도 수많은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꽤 깊은 고민을 했다. 논리란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영혼 없이 논리란 어디에다가도 붙일 수 있는 것이었던가.


어제 만난 한 경찰 부는 말했다. "실체적 진실이라는 게 대체 있기는 하냐." 사람들을 '0에서 0할 의도로 00을 들고 00해 00하였다'는 몇 줄로 요약해 형사 처벌의 길로 보냈을 테지만 그리 말했다. 누구보다 논리와 이성, 합리성이 중요한 일을 하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허물 수 없는 진리란 무엇인가.


그래서 서민 교수의 칼럼을 보니 문득 그때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칼럼을 비판하는 한겨레의 또 다른 칼럼을 보며 그 때 생각이 났다. 언제든 나에게 맞는 유려한 논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때. 그 심리적 매커니즘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물론, 언제나 아전인수는 참 쉽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02/27/Q6BO5GU7SFGETBUHEZCKVOEQIA/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52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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