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동안 우리는 한 팀

by 오스칼

여행에 대한 소감을 물어봤을 때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는 우리 까불이 팀의 첫 여행에 100%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에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여기 사람들은 다 여행 온 사람들이냐, 아니면 여기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말을 했을 때 솔직히 속으로 놀랐다. 아이가 첫날 아내와 헤어질 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버스에 탔고 내심 나와 단둘이 있어야 하는 것을 걱정했을 텐데 말이다.

비행기 창 밖을 바라보는 아이

이번 여행은 계획한 것 이상으로 운이 좋게 다 잘 맞아주어서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특히 날씨가 계속 화창하고 따사롭고 바람도 시원하고 좋았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리와 같은 뚜벅이들이 여행하기에 최적이었고 아이도 이제는 많이 커서 잘 걷고 또 힘들다 해도 짜증 내지 않고 말 잘 들었기에 언제나 웃으면서 장난치며 잘 다닐 수 있었다. 또 힘들어하면 내가 바로 목마 태워서 다니고 했으니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여행을 가면 아이에게 항상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여행의 절반은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은 청명하고 파랗고 우리가 바라보기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햇빛 또한 그 푸른빛을 가르고 우리들을 비춰주기에 충분했다. 연해주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걷느라 지친 우리들에게 이따금 시원한 손짓으로 어루만져주었다. 노을이 진 후 밤이 되었을 때에도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자는 내내 우리를 지켜주는 듯했다.


우리 둘 뿐이었기에 서로 의지했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호기롭게 아이와 여행을 가겠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나이로 6살밖에 안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그것도 해외로 단둘이 자유 여행으로 가려니 막상 준비하는 과정에서 걱정된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가는 곳의 치안, 음식, 기후 등 전반적으로 아이와 맞아야 했고 내가 보호자로 책임감이 더 크니 능숙하게 대처해야만 했다. 러시아는 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러시아어는 젬병이었기에 의사소통에서도 걱정이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여행 전날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래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서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 교육 덕분인지 아이가 인사를 너무 잘해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미소를 아이에게 날려 주었다. 여행은 낯선 이와 만남의 연속이다. 스치는 사람도 같이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람도 다 처음 보는 이들이었기에 이러한 만남이 여행의 색깔을 더 다채롭게 해 주었다. 아이와 함께 다녀서 그런지 러시아 사람들도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미소를 많이 남겨주었다. 또한 생각보다 러시아 음식도 입에 맞았다. 유명한 식당은 영어로 된 메뉴판이나 그림들이 함께 있어서 고르는 데 부족하지 않았다. 이런 덕분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이렇게 둘만의 여행을 언제 갈지 모르겠지만 이때의 기억이 자양분이 되어 가끔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고 나중에 더 깊이 있고 멋진 여행을 만들어갈 때 그 시작이 되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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