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1)
2019년 1월 7일(1일째)-히드로 공항
새해가 되었다. 그전에 우리 부부는 서유럽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나와 아내 모두 런던, 파리, 로마와 같은 유럽 하면 떠오르는 도시를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멀리 떠나는 해외여행 하면 서유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갈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16일의 일정으로 잡아서 그 기간 안에 서유럽을 한 번 쭉 훑어야 하기 때문에 극동에 사는 우리로서 이것저것 집어넣게 되었고 결국 초보 여행자. 티를 내듯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평범한 루트로 정해지게 되었다. 먼저 서유럽에서 어딜 가는 것부터 정해야 했는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에서 무게 중심을 어느 쪽에 두느냐에 일정이 조정되었다. 처음 영국에서는 런던, 리버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까지 가고 싶었고, 프랑스는 파리와 몽생미셸, 이탈리아는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바티칸, 나폴리를 가고 싶었다. 둘이서 쭉 적어보니 이탈리아에 무게 중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역사적인 도시가 많고 문화의 보고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길게 잡게 되니 영국과 프랑스는 축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런던 외에 리버풀은 비틀스의 고향이기에 선택했고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기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 도시만 갈 수 있어서 런던만 가기로 했다. 그 대신 옆에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을 추가했다. 아일랜드만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날 수 없으니 영국을 가는 김에 아일랜드를 들리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는 어차피 파리만 생각하고 몽생미셸은 당일 투어로 조금 빡빡하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아이도 피곤할 것 같고 파리 안에 있는 시간을 늘리고자 몽생미셸도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코스인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살짝 비틀어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를 가게 되었다. 스위스는 다음에 가는 것으로 하고 이 네 나라 여행 계획을 본격적으로 짰다. 런던에서 3박, 더블린 1박, 파리 4박,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는 각 1박, 로마 4박으로 하고 로마에서 당일치기로 나폴리를 다녀오기로 했다. 바티칸이야 로마 안에 있으니 하루 잡아서 다녀오는 일정으로 해서 15박 16일이 계획되었다. 비행기에서 하루를 보내니 총 17일 일정으로 짰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발 전아이는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6살이었지만 아직 만 4살이라 입장권이나 교통권이나 거의 내지 않아 비용면에서 절약이 조금 되었다. 유치원에 미리 말씀을 드리고, 소아과에 가서 여행 전 처방을 받아 해열제, 감기약, 소화제, 연고 등을 구비했다. 여행을 떠나는 데 아이 스스로 자신의 것을 준비하거나 생각을 하진 않으나 부모 입장에서는 아프지 말고 잘 다녀오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제 몸무게도 제법 나가서 안거나 목마 태우고 다니는 것에 살짝 버거워서 걱정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에서는 어머니가 함께 하시질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친구분들과 유럽 일주를 하고 오셨기에 우리 부부와 아이까지 총 3명이 함께 가는 첫 장거리 해외여행이 되었다. 나와 아내는 현지에 가서 길 찾아갈 때, 관람하거나 식사할 때 아이를 같이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역할 분배가 확실히 되어야 했다. 그래서 밖에서 다닐 때에는 내가 항상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호텔에 들어와서는 같이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아이가 걷기 힘들 때 안거나 목마 태우고 다니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는 길을 찾거나 발권 및 결제를 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짐은 현지에서 빨래를 하며 다닐 거기 때문에 속옷은 5일 정도 입을 것, 겉옷은 2개 정도만 챙겨서 짐을 꾸리기로 했다.
게임을 알아버렸다여행 당일 아침이 되자 자고 있는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안고 나가려고 했는데 여행이 시작되는 중요한 날인걸 느꼈는지 집에서 나가는 6시 50분에 깼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7시 20분에 리무진 버스를 타고 출발해 다들 버스 안에서 자면서 가니 10시가 조금 넘어서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오후 2시 30분 이륙이라서 시간적으로 아주 여유가 있었다. 출국 수속을 받고 점심도 먹으면서 기다렸다가 비행기에 탔다. 아이는 타자마자 화면을 켜더니 뽀로로를 보고 집에서 아내가 챙겨 온 스티커북, 클레이 놀이를 했다가 다 가지고 놀더니 심심하다고 화면에 있는 게임을 시켜달라고 했다. 캐릭터가 달리면서 에너지를 먹고 적을 점프해 밟는 기본적인 게임이었는데 당연히 하지 못했다. 엄청 못해서 자꾸 죽으면서도 신나서 재미있어했다. 한참을 하다가 죽고 살고를 반복하면서 힘들다고 시무룩해져서는 안 한다고 했다가 1분 뒤에 다시 한다고 켜는 중독 아닌 중독 같은 자세를 보였다. 그러다 출발한 지 5시간이 지나서야 앉아서 잠이 들었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잤다가 깨서 영화를 보고, 아내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행기 탄지 9시간이 넘어가자 다리도 붓고, 머리도 아픈 것 같더니 조금 견디기 힘들어졌다. 3시간은 더 가야 도착이니 버틴다는 심정으로 견뎌냈다. 창문 밖으로 반짝반짝 거리는 불빛과 흐린 구름으로 뒤덮인 런던이 나타나며 비행기는 히드로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히드로 공항 하면 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떠오른다. 소년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같은 반 여자 친구를 찾아서 간 그 공항인데 영화 속에서 본 그 공항을 직접 왔다는 감동이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길고 고단했던 비행이 끝났다.
지하철 기다리는 중영국에서는 입국할 때 까다롭다는 말이 들어서 살짝 긴장했는데 가족끼리 와서 그런지 입국심사도 정말 간단하게 끝나고 지하철 카드도 만들어서 금방 탔다. 런던 지하철은 1863년에 운행을 시작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말할 때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혹은 튜브(Tube)라고 하는데 언더그라운드가 정식 명칭이고 튜브는 둥근 튜브처럼 생긴 모양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다들 서브웨이(Subway)나 메트로(Metro)라고 부르니 원조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도 색다르다. 튜브라는 말이 걸맞게 지하철 내부는 둥근 모양으로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좁아 보였다. 그래도 그 시간에는 타는 사람이 몇 없었는지 자리는 여유 있어서 편히 앉아갈 수 있었다. 작지만 그래도 앉아 갔던 지하철에서 1시간 동안 달려 호텔로 이동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아침 7시가 돼가고 있었다. 다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격이라 조금 예민했지만 어서 역에 도착해 내리길 기다렸다.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차가운 밤공기가 확 느껴졌다. 진짜 런던의 밤거리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좁은 2차선 도로변에서 공기를 마셔보았다. 그리고 호텔을 향해 걸어갔는데 가는 길에 마트에서 물과 먹을거리를 사기로 했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 호텔에서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갔는데 나와 아내는 오 마이 갓을 외쳤다. 방이 반지하에 고시원처럼 침대, 샤워실, 그리고 사람 1명 지나갈 공간이 전부였다. 런던의 살인적인 집 값을 체험할 수 있는 구조였다. 캐리어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좁은 공간이어서 참 애매하다 싶었다. 다들 피곤했기에 어서 짐을 놓은 다음 몸을 누이고 자고 싶을 뿐이었다. 사사삭 다들 얼른 씻고 배가 고파서 컵라면을 후다닥 끓여서 나눠 먹었다. 그리고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깊은 꿈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호텔 안에서 사이렌 소리가 엄청 크게 울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20분이었다. 런던 첫날밤부터 작은 악재가 있었지만 어서 다시 잠들려고 노력했다. 런던에 온 게 참 신나고 좋았지만 굉장히 피곤했던 하루였다.
영국 히드로 공항
런던 지하철
런던의 첫날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