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2)

2019년 1월 8일(2일째)-런던 시가지

by 오스칼

런던 여행은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다. 바뀐 시차 때문인지 좁은 침대에 3명이 서로 웅크리며 잔 것 때문인지 모두 5시에 한 번, 6시에 한 번씩 일어났다. 7시가 되어 겨우 침대에서 나와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다. 호텔 안에 있는 식당은 아니고 호텔 옆에 카페테리아가 있는데 거기에서 사 먹는 구조였다. 고르는 게 많아서 주문을 하는 아내는 조금 긴장했지만 그래도 메뉴 선정에는 성공했다. 영국식 아침 식사로 식빵, 스크램블, 소시지, 베이크드 빈, 베이컨, 크로와상, 오렌지주스, 커피 등이 푸짐하게 나와 배불리 먹었다. 실제로 이렇게 식사를 하니 너무 많아서 잘 챙겨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런던

방에 들어가서 외출 준비를 끝내고 8시에 출근하느라 바쁜 사람들 틈을 지나 처음으로 간 곳은 세인트 폴 성당이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거대한 성당에 압도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은 가톨릭 성당이지만 이 성당은 영국 성공회의 성당이다. 본래 가톨릭 성당이었는데 영국 종교개혁 시기에 성공회 성당으로 변했고 현재까지 성공회 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밑에는 고딕 양식으로 돔은 바로크 양식으로 절충되어 지어진 건물은 높으면서 둥글게 솟아 올라간 돔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소실되었는데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설계대로 재건축했다고 한다. 둥근 돔은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하는데 그 모습이 얼핏 미국 워싱턴의 국회 의사당과 닮았다. 크리스토퍼 렌의 설계와 시공 전부가 담겨 있는 이 성당은 불탄 후 재건하기 위해 설계를 크리스토퍼 렌이 했는데 당시 왕이었던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 그리고 성공회의 입김으로 여러 차례 설계가 바뀌었지만 책임자였던 크리스토퍼 렌이 장수한 덕분에 끝까지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다. 영국 성공회 본산이기도 하지만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런던 공습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것이 알려져 그러한 상징이 되었다. 내부 지하에는 무덤과 기념비가 많이 있는데 성당을 만든 크리스토퍼 렌 이외에도 넬슨, 아서 웰즐리, 처칠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치러졌다. 또한 예전 영국 수상으로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도 거행된 곳이다. 그리고 찰스 왕세자와 고인이 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돔 위로 올라갈 수 있어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보기로 했다. 500개가 넘는 미로 같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이가 헥헥 거려 과감히 목마 태워서 올라갔다. 내 어깨의 살신성인으로 무사히 돔까지 올라가서 푸른 하늘로 뒤덮인 런던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런던은 날씨가 흐리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걱정했는데 산업혁명이 시작된 도시 명성에 맞지 않게 맑은 공기를 자랑했다. 그렇게 런던의 모습을 충분히 감상한 후 내려오는 길은 아이가 스릴을 재미 삼아 스스로 내려와서 모두 런던에서 기분 좋은 시작을 했다.

생애 첫 2층 버스

세인트 폴 성당 앞에 있는 밀레니엄 브리지를 거너서 다음 목적지인 타워 브리지를 향해 갔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런던이 배경인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도 등장한 런던의 명물이다. 그곳을 직접 걸어보니 영화 속 인물들이 떠올라 한참 걸으면서도 설렌 기분이었다. 걸어가는데 아이가 너무 걷기 싫어해서 내가 목마 태우고 다녔다. 안고 다니기보다는 차라리 목마 태우고 다니는 게 훨씬 편해서 가까운 포인트는 걸어서 이동하고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우리 여행 스타일에서 이렇게 다니는 것이 기동성이 있어서 몸이 조금 힘들어도 차라리 나았다. 그렇게 가는데 아이의 노랑 모자를 쳐다보고는 "포켓몬, 피카추"를 연신 외쳐댔다. 이번에 여행 간다고 하니 동생이 선물이라고 여행 다니면서 쓰라고 아이 모자를 선물해줬는데 귀가 움직이는 피카추 모자였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좋아하니 뭔가 우리도 친근감을 준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타워 브리지를 가려다가 우연찮게 먼저 런던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런던탑은 정치범 수용소로 유명하고 헨리 8세의 부인이었던 앤 불린이 여기서 처형당하기도 한 곳이다. 탑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 성채라고 봐야 한다. 본래는 런던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노르만 왕조는 정복 왕조였기에 영국 본토인들에 대해서도 방어가 필요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르만 왕조의 궁전으로도 쓰여서 단순히 교도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탑 안에는 박물관처럼 꾸며져 당시 갑옷, 무기를 비롯해 이 곳을 거친 유명인들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런던탑에서 나와 빅벤과 더불어 런던의 상징인 타워 브리지를 향해 갔다. 빅벤은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있는데 그래도 런던의 상징물 타워 브리지는 공사를 하지 않아 다행이란 심정으로 보러 갔다. 타워에 들어가서는 연결하는 다리도 건너갔다. 템즈강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로 밑바닥이 된 다리를 아이는 신기해하면서 무서워하지 않고 재미있어했다. 다리를 건너니 안내원이 기념 스티커를 하나씩 주었다. 내려가서는 타워 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템즈강은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하천이라 여길 정도로 폭이 긴 강이 아니라 건너는 데에는 금방 건널 수 있었다. 날이 청명해 사진이 다들 잘 나왔다.

점심은 그다음 갈 곳인 대영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영국박물관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런던의 명물인 2층 빨간 버스를 타고 영국박물관으로 갔다. 흔들거리는 버스 2층 맨 앞자리에 주르륵 앉아 지나가는 런던 거리를 감상했다. 박물관 근처에 내려 점심으로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영국 음식인 피시 앤 칩스와 치킨 티카 마살라를 먹으러 펍에 갔다. 영국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게 이게 전부라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 음식이라 가장 무난한 피시 앤 칩스와 인도 식민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치킨 티카 마살라를 주문해서 먹었다. 피시 앤 칩스의 맛은 정말 아는 맛 그대로였고, 치킨 티카 마살라는 냉동을 데워서 내놓은 것 같은 맛이 있었다. 어쨌든 식사를 마치고 나와 맞은편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가서 아이가 작은 2층 버스 미니어처를 사고 싶어 해서 사줬다.

타워 브리지를 배경으로 한 컷

영국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으로 무료입장을 실시하는데 일설에는 자국의 것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약탈한 문화재가 전부라서 돈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긴 자국 외 유물을 뺀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박물관은 세계 각 문명을 총망라하여 800만 점 이상의 유물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우리나라 전시실도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다. 유명한 유물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래도 들어본 것은 1801년 프랑스가 이집트 원정 당시 발견해 영국이 가져온 로제타스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 이집트 미라 등이 있다. 규모가 어마하게 컸지만 아이를 안고 있고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는 핵심 작품 위주로 해서 간단하게 보고 넘어갔다. 관람을 끝낸 후 아내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 박물관 중앙 위층에 있는 카페에 데려갔다. 시차 때문에 졸리고 어지럽고 기운 빠진 아내를 위해 티 세트를 주문해 먹었다. 애프터눈 티 세트로 영국인들처럼 티 브레이크 타임을 즐겼다. 샌드위치부터 해서 달콤한 디저트까지 있어서 먹고 기운 차리기에 충분했다. 나왔을 때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타지 못하고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 6시 30분이었지만 한밤 중처럼 깜깜한 런던 시내를 걸어 나는 내 어깨 위에 잠든 아이, 아내와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몸은 피곤해도 화창한 날씨에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날이었다.

세인트 폴 성당
런던탑
영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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