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3)

2019년 1월 9일(3일째)-런던 시가지

by 오스칼

어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내 어깨 위에서 잠든 아이는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어려워 옷을 갈아 입히고 침대에 뉘어 재웠다. 그런 아이가 새벽 3시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깼다. "창문 보고 싶어." 하면서 울더니 홀로 잠에서 깨버렸다. 그래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보여주고 잠에서 완전히 깼길래 TV를 틀어주었다. TV도 침대 벽에 바로 매달려 있어서 그걸 보면서 곤히 자는 나와 아내 틈에서 6시까지 혼자 깨어 있었다. 그리고 오줌이 마려웠는지 혼자 가서 오줌 싸고 손 씻고 물도 내렸다. 그렇게 잔 듯 안 잔듯한 아침이 밝았다. 두 번째 조식은 어제보단 주문을 능숙하게 해서 먹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갔다. 20분 정도 걸어서 갔는데 날씨가 어제보다 한층 쌀쌀해서 옷을 조금은 따뜻하게 여며야 했다. 그래도 시원한 공기가 가득 입 안에 맴돌아 상쾌한 기분이었다. 템스강변을 따라 걷는데 아이가 걷기 힘들다고 투덜거리다가 비둘기가 있길래 그걸 좇을 때만 살아남아서 신나 했다. 가는 길에 공사 중인 빅벤을 지나쳤는데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공사 중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봤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한 컷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얼핏 보면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만큼 영국 왕과 위인들이 잠든 영국인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이다. 수도원 중의 수도원이라는 의미로 The Abbey라고 불리기도 한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을 비롯해 최근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렸고 또 이곳을 본인들의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다. 대개 성당 지하에 묘지가 있거나 뜰을 두어서 그곳을 묘지로 쓰는데 여기는 상당 안에 유해를 관에 넣어 안치했다. 국왕들 이외에 영국 총리들, 뉴턴, 셰익스피어, 헨델 등과 같은 위인들의 무덤과 기념비도 이곳에 있다. 안에 들어가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성스러운 장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런 듯했다. 본래 가톨릭 소속의 성당이었으나 세인트 폴 성당과 마찬가지로 종교개혁 당시 성공회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성당, 사원이라고 하는 명칭에 대해 교회는 개신교, 성당은 정교회나 가톨릭, 사원은 이슬람이나 불교와 같이 종교에 따라 나뉘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고 하면 크리스트교 계통인지 아닌지 헷갈릴 수도 있고 성당이라고 도매금 쳐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로 번역을 하면 애매해진다. 수도원은 abbey이고 대성당은 cathedral로 번역되는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는 근처에 가톨릭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혹시 길을 물을 때 수도원을 뜻하는 abbey라고 말을 해야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이때 cathedral이라고 하면 엉뚱한 가톨릭 성당으로 데려다준다. 처음 들여다보는 영국의 사원, 그것도 영국 왕실과 위인들이 잠든 곳이기에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져다주었다. 아이는 역시 지루해하면서 심심한 내색이 역력했는데 판판한 관 뚜껑을 보면 벤치인 줄 알고 누우려고 해서 제지하느라 진땀이 흘렀다. 조용히 손을 잡고 빠르게 걸어가니 이내 같이 잘 따라다녔다.

이어서 버킹엄 궁전으로 갔다. 런던 하면 떠오르는 게 빅벤과 타워 브리지이지만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버킹엄 궁전이다. 근위병 교대식에 맞춰서 갔기 때문에 이를 보려고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겨울이고 비성수기라서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미 궁전 앞 보도블록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우리도 그 일원에 껴서 함께 구경했다. 버킹엄 궁전은 1761년 조지 3세가 버킹엄 공작의 저택을 구입하여 왕실 건물이 되었는데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이후 국왕들이 거주하는 궁전이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공습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내부 개방하는 때가 아니라서 겉모습과 근위병 교대식만 볼 수 있었다. 여왕이 궁전에 있는지는 깃발로 확인할 수 있는데 왕실 깃발인 로열 스탠더드 깃발이 게양되어 있으면 여왕이 궁전에 있다는 뜻이고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있으면 그날은 여왕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간 날에는 유니언 잭이 걸려 있었다. 근위병 숙소에서 궁전까지 근위대가 연주하며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궁전 안으로 들어가 교대식을 했는데 다들 사진 찍거나 영상 찍기에 바빴다. 나와 아내는 키가 작은 아이를 위해 목마를 태우고 구경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제대로 구경한 것은 많은 인파였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놀라웠다. 내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때는 생각해서 안내원에게 여쭤보니 개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잠깐 다리를 쉬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2층 투어 버스를 타고 함께

런던 패스에 속한 버스투어로 런던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붕이 없는 2층 버스에 앉아서 많이 추웠지만 모자를 쓰고 웅크린 다음 지나가는 런던의 풍경을 구경했다. 런던의 명소를 손에 잡을 듯 구경하면서 가니 이 또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2층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자유로이 사진 찍고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내린 지역은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곳이었다. 일단 점심이라 근처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영국 사람들처럼 따뜻한 티도 주문해 마셨다. 동양인이라서 그랬나 우리가 영어를 능숙하게 못해서 그랬나 종업원이 설명도 대충하고 다른 테이블에는 주는 케첩도 갖다 주지 않아서 기분은 그저 그랬는데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두툼한 스테이크를 먹어서 좋았다.

광장에 그린 1파운드 꽃 하나

내셔널 갤러리 앞에 있는 트라팔가 광장으로 왔다. 1841년에 완성된 광장은 알다시피 영국의 이순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넬슨 제독이 프랑스 나폴레옹 해군을 무찌른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광장이다. 중앙에는 약 50m의 넬슨 동상 탑이 있다. 아이는 광장 끝에 있는 사자상에 관심이 있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는 광장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이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 주위에 구경하면서 기웃거리자 그 사람이 아이에게 웃으며 말도 걸고 분필을 내밀자 아이는 냉큼 받아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곧 지워질 꽃을 위해 1파운드를 기부할 수밖에 없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국립 미술관으로 이곳에 와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서울 예술의 전당이나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에 몇 번 가보았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회랑이 있는 공간은 처음이었고 이런 어마어마한 작가들의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중세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2,3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에이크, 티치아노, 보티첼리, 홀바인,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모네, 터너, 고흐, 세잔 등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작품이 끊임없이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감으로만 봤던 그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 전율이 일었다. 작품을 사진 찍고 아이와 아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빠져들어 봤던 것 같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아내는 아이를 챙기며 전시실에 있는 벤치에서 앉아 있거나 천천히 아이와 감상했다. 사실 아이는 그림이 뭔지 모르는 나이이기에 그런 아이 챙기는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아이는 그림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의자만 찾아다니면서 샀던 장난감만 만지작거렸다. 이후에 여러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을 가보았지만 처음 보았던 내셔널 갤러리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셜록 홈즈가 살았던 베어커 가에 가기 위해 오렌지 투어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는데 추위를 참으며 20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버스가 와서 기쁜 마음으로 셜록 홈즈의 무대, 베이커 스트리트로 갔다. 베어커 지하철 역에는 셜록 홈즈의 동상이 있어서 같이 한 컷 찍었다. 셜록 홈즈는 말이 필요 없는 학창 시절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교본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렸을 때 읽었던 셜록 홈즈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서 지금도 좋아하는 캐릭터이기에 꼭 와보고 싶었다. 셜록 홈즈가 살았던 베이커 가 221B는 몇 명의 관광객들이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2층은 셜록 홈즈가 살았던 방을 재현해 놓았고 1층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을 지키는 경관 복장을 한 사람이 있어서 탐정 모자를 쓰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소설 작가인 사촌 동생에게 줄 선물과 배지 등을 사고 아이는 작은 오르골을 샀다. 그리고 나와서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가서 나와 아내는 커피, 아이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는 호텔 근처에 내려 영국의 펍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나 싶었는데 갈 수 있어서 영국의 펍 문화를 느껴보았다. 나와 아내는 맥주 종류가 다르게 시켜서 맛보고 피시 앤 칩스와 컬리플라워 요리도 시켜서 먹었다. 시끌벅쩍한 영국 펍 문화는 우리에겐 낯설었지만 즐거운 경험을 안고 밤을 마무리했다.

버킹엄 궁전
트라팔가 광장
내셔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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