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가까이 되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깨어나 준비를 하고 마지막 남은 누룽지와 컵라면, 김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나왔다. 짐은 일단 호텔에 맡기고 택시를 타고 나왔다. 벤츠 택시라서 그런가 아니면 암스테르담 택시라서 그런가 미터기가 쭉쭉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가는 길에 암스테르담에 몇 없는 옛 풍차가 보였다. 네덜란드가 풍차의 나라라고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 풍차를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암스테르담의 자전거 우선 정책으로 인해 택시는 운하가 있는 시가지로 못 들어가기 때문에 빙빙 외곽을 돌아서 미술관과 박물관이 밀집해 있는 거리로 왔다. 예전 운하 쪽에 상인이나 부르주아들이 집을 지으면서 창문 3개, 5층 초과는 세금을 높게 매겨서 그런지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붙어있는 집들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집 윗부분에 있는 고리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안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고리를 이용해 짐을 날랐다는데 보면 고개를 숙이듯 집이 기우뚱해 있는 것이 있어서 특이했다.
고흐 화풍으로 표현한 캐릭터들
첫 번째 목적지는 네덜란드가 낳은 또 하나의 위대한 화가 반 고흐 미술관이었다.인상파 미술의 대표자이면서 일생에서는 빈곤하게 살다가 사후 빛을 보게 된 인물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보러 전 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아침부터 북적였다. 사물함에 짐을 넣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흐의 작품만 있는 줄 알았는데 폴 고갱, 에밀 베르나르 등 동시대 살았던 예술가들의 작품도 있었다. 700여 점에 달하는 고흐의 유명한 유화, 드로잉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고흐의 방, 노란 집, 꽃피는 아몬드 나무, 아이리스, 감자 먹는 사람들 등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중간에 확대경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도 있어서 그의 붓터치를 볼 수도 있었다.
고흐가 썼던 팔레트와 물감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
근처가 박물관, 미술관이 많았는데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을 지나서 하이네켄 양조장 박물관으로 갔다. 맥주라고 하면 독일, 벨기에, 체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이 유명한 나라인데 그중 네덜란드 하면 단연 하이네켄이었다. 1873년에 시작된 하이네켄의 역사와 브랜드, 맥주 제조 과정을 볼 수 있고 시음도 할 수 있었다. 예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기네스 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났다. 하이네켄은 보리, 물, 홉, 효모 등으로 만든 정통 유럽의 라거 맥주로 단연 톱을 달리는 브랜드이다. 시원한 황금빛 맥주에 하얀 거품이 목으로 넘겨질 때 맛이란 최고라 칭할 수 있다.
미술관 근처에 설치된 야외 스케이트장
하이네켄 양조장 박물관
하이네켄 맥주
널찍한 팬케이크 3장
박물관을 지나서 근처 아내가 찾은 팬케이크 맛집을 찾았다. 출출해서 다들 커다란 팬케이크 하나씩 취향에 맞게 주문해서 먹는데 아내는 여기 온 기념으로 하이네켄 생맥주를 시켜 마셨다. 아이는 주스를 여행기간 동안에 너무 많이 마셔서 물을 시켜 마셨다. 식사를 하고 나서 암스테르담의 한 때를 기억하려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구시가지 중심부 운하를 따라 정처 없이 걸어보면서 장면을 남겼다. 1490년에 세워져 암스테르담의 방어 벽 일부였지만 화재로 인해 벽이 소실된 이후 종탑이 되고 동전 만드는 곳이 되어 네덜란드어로 화폐 주조라는 뜻의 문트라는 이름을 갖게 된 문토렌이 눈에 띄었다. 아내는 문토렌 옆으로 쭉 늘어선 화훼 노점 시장에 관심을 보였다.
홀로 서있는 문토렌
아내가 관심 가진 화훼시장
문토렌을 지나 구교회를 갔다가 담 광장으로 나오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여행 다니는 중에 지구 다른 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세계 곳곳에서 위험이 있고, 위기가 있다면 우리처럼 여행자들은 낯선 곳으로의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전쟁은 일상에 대한 크나큰 위협이다. 그제 봤었던 근처 하링 샌드위치 파는 노점이 있어서 갔는데 열지 않아서 먹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링은 청어를 절인 것인데 한국인 입맛에 제법 어울린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다. 광장이나 길가에 핫도그 노점은 정말 많아서 시기를 타는 듯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반대 시위
운하를 따라 이곳저곳을 가보는데 네덜란드의 열린 성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어서 나와 아내는 아이에게 모자를 푹 눌러쓰게 하고 걸었다. 암스테르담 홍등가는 17세기 선원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2001년에 매춘이 합법화되면서 이곳은 은밀하고 퇴폐적인 곳보다는 솔직하면서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하면서 일면 유쾌하게 접근하려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알싸한 대마초 냄새가 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맡아졌는데 암스테르담은 대마초를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관용과 자유 정책을 세계에서 먼저 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범죄화된다면 미리 개방하고 정부가 관리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태, 동성 결혼, 안락사 등 우리나라에서 현재 이슈 되는 것들이 이미 합법이었다.
암스테르담 홍등가 지나가기
대마초 냄새가 흘러 다니는 큰 거리로 나와서 치즈 판매 가게에서 여러 치즈를 구경하고 시식을 해봤는데 7개월 숙성한 치즈는 맛있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맛이었고, 36개월 숙성한 치즈는 쿰쿰하면서 고소하고 퍼석한 맛이었는데 감칠맛이 있어서 계속 생각났다. 아이는 종류별로 한 번씩 다 먹어보면서 맛을 즐겼다. 근처 쇼핑몰을 우연히 들어갔는데 옷이 너무 저렴해서 나와 아내는 옷을 보다가 아이 옷만 몇 벌 샀다. 걷다 보니 다리가 쉬어가는 게 필요해 보여 또 다른 팬케이크 카페에 가서 커다란 팬케이크와 와플을 주문해서 먹었다. 팬케이크는 한 번이나 먹을까 했는데 벌써 암스테르담에서만 3번을 먹게 되었다. 아이는 이것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여러 번 먹게 된 팬케이크
잠시 쉬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활기찬 일요일의 거리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이 도시에서 겪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구근을 파는 화훼시장을 보며 감탄하고 튤립이 있을 줄 몰랐는데 튤립이 참 많아서 경탄했다. 아내에겐 튤립의 나라, 나에겐 고흐의 나라, 아이에겐 팬케이크의 나라였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이 될 낯선 거리를 두 눈에 담아 보았다. 짐을 찾기 전에 호텔 근처에 있는 OBA 공공 도서관으로 와서 편하게 쉼표를 찍으며 공항 가기 전까지 여유를 즐겼다. 암스테르담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았다. 호텔에 가서 캐리어를 챙기고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 걸어가 공항 가는 티켓을 끊었다. 바로 공항 가는 기차가 있어서 서둘러 플랫폼으로 가서 탔다. 칸마다 공항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캐리어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는 큰 캐리어 위에 앉아서 갔다. 덜컹거리며 10여 분을 가서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데려다 줄 암스테르담 스히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