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15)

2019년 1월 21일(15일째)-바티칸

by 오스칼

다시 영원한 도시 로마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나와 아내가 기대한 바티칸에 가기 위해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언제나 파운드케이크, 치아바타, 커피와 에스프레소, 우유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과일로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테르미니 역에서 A선을 타고 옥타비아 역으로 가는데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전철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역에서 나와 가는데 바티칸 미술관 표 예약시간이 10시라서 늦을까 봐 빠르게 걷다가 나중에는 뛰다시피 가서 미술관 입구를 찾아 바우처를 표로 바꾸고 한숨 돌렸다. 입장은 대기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화살표로 안내가 되어 있어서 쉽게 방향을 따라 관람할 수 있었다.

바티칸 미술관 복도에서

바티칸 미술관은 성 베드로 성당과 가까운 곳에 있는 미술관으로 단독 건물로 있는 것은 아니고 시스티나 경당을 비롯한 바티칸 여러 갤러리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1773년인 클레멘스 14세 때 개방되었다고 전해진다. 역대 로마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과 선물 받은 작품, 고문서와 자료 등으로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등 화가들이 그린 작품이 유명해 꼭 와야 하는 장소이다. 이 미술관이 있는 바티칸은 알다시피 로마 안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가톨릭의 중심이자 교황청이 있는 곳이고 교황을 국가원수로 하는 소위 말하자면 신정국가로서 교황이 전권을 가지고 있어 전제군주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세습되지 않는 전제군주라는 것이다. 크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보다 조금 큰 정도이고 창덕궁보다는 약간 작은 정말 몇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그 면적에 대비해 세계사에 끼친 영향과 남아 있는 유물, 유적은 어마 무시하다. 인구는 추기경 포함해 800명 정도라고 하는데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로마에 둘러싸여 있지만 엄연히 독립국으로 우표를 따로 발행한다. 그래서 우표수집가들에게 바티칸 우표는 인기가 높다. 바티칸(Vatican)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있는 바티칸 언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가톨릭 추기경이 되면 자동적으로 바티칸 시민권을 얻게 되니 신기한 점이라면 신기하다.

여러 작품들 중 몇 가지를 꼽자면 먼저 라오콘 조각상이 있다. 복제품을 우피치 미술관에서도 봤는데 높이가 2m가 넘는 거대한 조각상은 라오콘과 그 두 아들을 표현하고 있다. 트로이의 제관이었던 라오콘은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의 트로이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포세이돈이 보낸 큰 뱀에게 아들과 함께 살해당한다. 그 고통이 표현된 조각상으로 유명한데 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가 20대 젊은 시절 사도 궁전 내부의 방들 중에서 서명의 방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이다. 이 방은 지금 라파엘로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에는 철학, 신학, 법, 예술을 테마로 한 그림들이 있는데 그중 철학을 주제로 한 그림이 '아테네 학당'이다. 벽 위쪽에 그려진 그림인데 모두 54명의 철학자가 표현되어 있고 찾아보면 라파엘로도 등장한다. 고대 철학자들을 모아놓은 상상화로서 유심히 보면 철학자들의 사상과 특성을 알 수 있는 포즈로 그려져 있기에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중앙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있고 디오게네스, 소크라테스, 유클리드, 에피쿠로스, 제논, 피타고라스, 히파티아 등 유수의 지식인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잘 모를 '성체의 논의'도 이 방에 있었는데 신학을 주제로 한 이 그림은 성경의 인물들이 표현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다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로 천재 조각가로 알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회화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난 작품이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아 만든 천장화는 천지창조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4년에 걸쳐 제작이 되었는데 천장이기 때문에 누워서 떨어지는 물감을 맞아가며 그렸다고 한다. 팔과 목, 허리가 뒤틀리는 고통이 있었고 그로 인해 병도 얻었지만 오로지 혼자서 이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와서 고개를 들면 이 광경에 말이 안 나온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뿐 신과 인간의 위대한 작품에 대해 무언가 덧붙일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담을 창조하는 그림과 아담과 이브를 추방하는 그림인데 창세기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림이라 성경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심히 본다면 그 스토리를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있다. 1533년 클레멘스 7세로부터 명을 받았는데 사코 디 로마 이후 폐허가 된 로마를 살리기 위한 작품으로 1541년 완성되었다. 총 391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위 중앙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국에서 지옥까지 표현한 그림이다. 처음에는 다 나체로 그려져서 직접 본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켈란제로의 작품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1564년 공의회에서 인간의 모습을 가려야 한다고 하여 생식기 부분은 덧칠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덧칠은 미켈란젤로가 하지 않았고 그의 제자였던 볼테라가 했다. 작업 당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에 딴지를 걸던 추기경이 못마땅해 지옥에 있는 수문장에 그 얼굴을 그려버린다. 교황은 천사로 표현되었고 미켈란젤로 본인은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사람 가죽의 얼굴로 표현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도배되어 있는 시스티나 성당은 언론에도 자주 알려진 성당으로 교황이 서거한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기간 동안 시스티나 성당은 외부와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폐쇄하여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추기경들은 투표를 진행한다. 천사가 그린 듯한 하늘의 작품에 수많은 사람들이 천장과 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잠깐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잠시 쉼표를 찍고 다시 미술관 구경을 한참 하고 난 뒤 우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역시 빠질 수 없이 딸기, 크랜베리, 커피 젤라토를 사서 먹으며 걸었다. 다소 빗줄기가 가늘게 내렸다 멈추었다를 반복했는데 TV 화면으로만 보던 오벨리스크와 거대한 기둥들이 서있는 광장이 나오며 산 피에트로 대성당, 우리에게는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불리는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바티칸 자체를 상징하는 이 대성당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겨울이라 그런지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검문검색을 통과한 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알려진 거대한 돔은 성스러운 신의 자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 가톨릭에 있어서 로마 교구의 주교좌성당은 전에 갔던 라테라노 대성당이지만 교황의 주요한 업무나 미사, 의식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이 성당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명칭의 주인공인 베드로는 예수의 12 사도 중 으뜸을 차지하는 제자로 예수에게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건네받은 자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칭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드로의 상징은 열쇠가 되어 성화를 보았을 때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십중팔구 베드로이다. 성경에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기에 베드로는 예수의 으뜸 제자이면서 초대 교황으로 추대한 근거가 된다. 물론 개신교에서는 이와 해석이 다르다. 교황이라는 명칭 자체가 초기 크리스트교 즉 동서 로마 분리로 인해 주요 5개 교구 중 서로마에 로마 총대주교만 있을 당시 서유럽을 관장하는 대주교로서 그 명칭을 부른 가톨릭이기에 후대에 나온 개신교는 해석이 달랐다. 예수가 체포되었을 때 자신을 부정할 거라 예수는 예언을 하였고 정확히 베드로는 그렇게 3번 예수를 부정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 외 인간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부분이 여럿 등장하지만 끝내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로마에서 십자가 형으로 사형당하게 된다. 그때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 하여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한다. 화려하고 장엄한 내부에는 성 베드로의 의자가 있는데 이는 베르니니가 제작한 작품으로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광장을 설계한 인물이다. 광장은 열쇠 모양으로 만들어 그의 천재성을 부각했다.

이 거대한 성전을 짓기 위해 120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를 거쳐간 교황은 21명이나 된다. 세계사나 종교사에 중요한 사건이 이로 인해 일어나는데 바로 종교개혁이다. 감당할 수 없는 대성당 건축 비용으로 인해 교황은 면벌부를 돈을 받고 남발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갈라지고 가톨릭도 역시 자체 개혁을 통해 쇄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거쳐간 감독관들이 많았는데 브라만테, 파엘로도 거쳐갔으며 설계 수정도 많이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최대의 건축물에 대한 완성은 미켈란젤로가 방점을 찍는다. 이미 나이가 70세를 넘겨 고령이었던 미켈란젤로는 돔을 비롯한 주요 부분을 진행시키고 17년이나 일하다가 사망한다. 그 후 미켈란젤로의 설계를 기본으로 한 채 진행되는데 그 마무리를 한 사람이 베르니니로서 그는 성 베드로 광장을 닦으며 기둥 284개와 역대 교황과 성인들의 성상 140개로 완벽하게 완성한다.

정신없이 구경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아이와 아내와 떨어져 버렸다.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가 만났는데 성탄절을 맞아 세워 놓은 요셉, 마리아, 아기 예수와 동방 박사들 모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바티칸 정상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자고 해서 다 함께 쿠폴라(돔)에 올라가기로 했다. 너무 높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고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우리의 체력 보강을 위해서였는지 좁디좁은 계단 길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무사히 돔 밖으로 나가니 바티칸과 로마 시내 전경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한눈에 들어오는 그 광경을 눈에 담고 내려와 산탄젤로 성을 거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산탄젤로 성 앞에서

산탄젤로 성은 본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만든 자신의 영묘이지만 후에 교황의 성채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로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교황은 산탄젤로 성에 피신해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마르게리타 피자와 엔초비 피자를 주문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사과 주스를 주문해서 맛보았다. 친절한 종업원의 응대에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나보나 광장을 지나 판테온으로 갔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신전으로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판테온은 아우구스투스의 참모이자 친구로 알려진 아그리파가 본래 만들었으나 후에 하드리아누스가 신축한 건물이다. 그래서 아그리파를 기리고자 앞에 아그리파가 세웠었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 로마에게 가장 오래되고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이면서 가장 돔 건축의 원형을 오롯이 보여주는 고대 로마 건축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밖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안에 들어가니 그저 공간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여 감탄을 자아냈다. 중앙에 뚫린 원이 있었지만 그때 가늘게 흩날리던 비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이러한 돔 건축은 로마 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고 로마 건축을 대표하는 양식이 된다. 후대 많은 건축물에 영향을 주는데 이 기술을 따라잡고 싶었던 후대 유럽인들은 판테온의 건축 기술은 물론 콘크리트 배합도 알지 못해 악마가 만들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실전된 로마제국의 기술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다. 이 만신전은 나중에 성당으로 변해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었는데 지금은 판테온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로마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제 해가 완전히 져서 가로등 불 빛만이 로마의 거리를 밝히는 가운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마지막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를 지나서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이 원주는 아우렐리우스를 기리는 탑으로 본래 황제의 청동상이 기둥 꼭대기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도 바울로 바뀌었다 한다. 1762년에 완공된 트레비 분수는 비까지 내리는 밤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로마에 다시 오기를 빌었다. 바로크 양식의 분수로 로마에서 가장 큰 분수는 로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유적 중에 하나이다.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바다의 신 넵튠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는데 이 분수가 유명한 것은 첫 번째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 번째 동전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올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분수 안에는 작은 동전들이 바닥에서 무수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이도 동전 하나를 들고 다시 오기를 소망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잠을 자고 싶어 하는 아이를 목마 태우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우리들은 마지막 밤을 위해 마트에서 로제 와인 1병과 이탈리아 선물을 많이 샀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남은 식재료를 모두 털어서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고 로제 와인을 기울이며 로마의 밤을 기념했다.

바티칸 전경
성 베드로 대성당
판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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