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14)
2019년 1월 20일(14일째)-나폴리
로마에서 맞이하는 이튿날 아침이다. 10시 기차를 타기 위해 먼저 일어난 나는 치아바타, 요거트 파운드와 에스프레소, 오렌지 주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다 같이 먹은 다음 테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이제는 기차 타는 것이 익숙해서 바로 기차가 대기하고 있는 플랫폼에 가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눈을 좀 붙이고 아이는 뽀로로를 보면서 나폴리로 갔다. 진정한 이탈리아 피자를 맛보기 위해 피자의 고향 나폴리에서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남북의 경제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당장 수도인 로마도 로마 제국의 유산과 바티칸으로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명성을 갖고 있긴 하나 북부 이탈리아의 밀라노보다 경제 규모는 한참 밑이다. 더군다나 로마 밑으로 남쪽에 있는 도시들은 그 문제가 커서 북부에 비해 소득 수준도 낮고 소매치기도 많아 나폴리 역에 도착해 거리로 나왔을 때부터 아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마피아가 유명하다고 해서 나폴리의 대로를 걸었을 때보다 골목길을 걸었을 때 그러한 긴장감 때문에 아이를 더 챙겼는데 운이 좋았던 건지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진짜 이탈리아를 만나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폴리 시내에서는 폼페이를 멸망시킨 그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는데 우리는 폼페이를 가려던 것이 아니고 나폴리 피자가 주목적이었기에 우리가 생각해 놓은 식당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나폴리라는 지명은 그리스 식민국가 네아폴리스에서 왔다는데 이견이 조금 있다. 그리스 식민도시로 알려졌지만 에트루리아에 속한 도시가 되었고 이후 로마 왕국의 일원으로, 이어진 로마 공화국과 제국에서도 로마의 일원으로 있었다. 그러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난 다음 동로마 제국의 영역이 된다. 그 후 시칠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고 프랑스에 점령이 되는 등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처럼 복잡한 시기를 보내다가 가리발디에 점령당해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나폴리로 가기 전 테르미니 역좁은 골목길에 걸린 빨래들을 구경하면서 몇 블록을 지나 찾아놨던 디 마테오 피자 가게에 도착했는데 영업을 안 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음식 중에 국수와 더불어 피자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아쉬웠다. 이런 음식 스타일을 아는 아내도 나를 보며 같이 아쉬워했다. 나폴리에 온 것 자체가 사랑하는 피자를 맛보기 위해서였는데 어디를 갈지 하고 생각하다가 길게 줄이 선 가게를 발견하곤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가게가 만석이라 기다리는데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하려 처마 밑에서 웅크리고 있길 30분이 지나 드디어 자리가 나서 안내받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도 이미 온 손님들 때문에 피자가 나오기까지는 30분을 더 기다렸다. 나폴리의 화덕 피자를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피자는 마르게리타, 디아볼로, 4가지 맛 피자를 주문해서 총 3판이 나왔다. 나폴리 피자는 피자의 본고장으로 그 명성을 보존하고자 피자의 크기, 화덕의 종류와 열기, 토마토 및 도우 등 여러 규정이 있어서 이에 부합되어야 나폴리 피자라는 보증서를 정부가 발급해준다. 이탈리아 정부 지침에 따르면 피자 도우는 쫄깃하고 부드러우며 쉽게 접혀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장작 화덕으로만 구워야 하고 온도는 485도이고 형태는 둥근 원의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한다. 반죽은 손으로만 해야 하고 크러스트 두께는 2cm 이하로 만들어져야 한다. 또 피자 가운데의 두께가 0.3cm를 넘어서는 안되고 토핑은 오로지 토마토소스와 치즈만을 사용해야 한다. 주문한 마르게리타 피자는 나폴리 피자 중 가장 대표적인 피자로 1889년 나폴리를 방문했던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인 마르게리타 왕비에게서 이름이 나왔다. 토핑이 이탈리아 국기의 3가지 색을 상징하는 녹색, 흰색, 붉은색을 상징하는 바질,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소스로 사용하기에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도 환영하며 심플하면서 신선한 이 피자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인생 피자마르게리타 피자를 한 조각씩 맛 본 나와 아내는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한 입 먹고 놀라워 다시 한 입을 먹고 이내 한 조각을 금세 먹어치웠다. 분명 단순한 도우와 토마토, 치즈의 맛인데 토마토가 삼삼하면서 신선한 풍미를 가득 담고 있어서 잘 어우러졌고 치즈도 고소하고 특유의 쫄깃한 맛을 담고 있었으며 바질의 알싸한 맛이 피자의 식감을 극대화해주었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디아볼라 피자도 신선한 도우, 치즈와 함께 입 안을 감도는 매운맛이 기분 좋은 강렬함을 가져다주었고, 아이를 위해 주문한 4가지 맛 피자도 버섯, 햄 등이 풍부하게 들어가 또 다른 즐거운 식감을 가져다주었다.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오리지널의 참 맛에 배가 불렀지만 피자들을 싹 비워냈다.
아름다웠던 나폴리 항만족스러워 팁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와 스파카 나폴리 거리로 나왔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우산이 없던 우리로서는 걸을 때 나폴리의 정취를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 사이로 널린 빨래, 로마시대부터 있었던 도무스들을 바라보며 나폴리 사람들의 정취를 느껴보고 바다를 향해 걸었다. 익숙한 항구의 풍경 앞에는 카스텔 누오보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성은 앙주의 샤를 1세가 시칠리아 왕이 된 후에 지어진 성으로 1282년에 완공되었다. 중세 왕가의 공간이자 요새로서 역할을 했던 이 성을 관람하고 싶었지만 마침 휴관이라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 세계적인 미항이라고 알려진 나폴리 항구에 대해 더 접근하고 싶어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목마 태우고 걸어보기로 했다. 골목을 돌아 산카를로 극장, 나폴리 왕궁과 광장을 돌아 항구로 나갔다. 산 카를로 극장은 지금도 공연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극장으로 1737년 완성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이다.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 유명 오페라 작가들이 이곳에 작품을 올렸다. 계속 걸어 나가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흐리게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과 마을들, 방파제와 흔들리는 파도가 아름다운 산타루치아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폴리의 민요를 귓가에 담아보며 잠시 그 순간을 즐겼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나폴리 역으로 돌아왔다. 짧았던 나폴리 기행을 마치고 1시간을 달려 5시 30분이 지나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아이는 이미 잠에 깊이 잠들어 안고 오다가 팔이 너무 저려 자고 있는 채로 목마 태워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를 깨워 씻기고는 저녁으로 버섯과 베이컨으로 간을 한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아이는 맛있는지 끝까지 한 접시를 다 비워냈다.
나폴리 거리
나폴리 피자
카스텔 누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