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아침이 밝았다. 첫 아침이지만 계속되는 여행으로 아이는 피곤한지 늦잠을 자고 있었고 아내도 더 자고 싶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이들을 깨우기 위해 나는 어제 사온 크루아상, 시폰 케이크와 함께 갓 내린 에스프레소, 오렌지 주스로 유혹을 했다. 다들 부스스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쯤 구름이 잔뜩 내려 다소 무거워 보이는 로마 거리로 나섰다. 로마는 세계사에 관심이 없어도 수백 번은 들었을 이름일 것이다. 고대 아시아 문명을 대표한다면 중국의 시안, 이란의 페르세폴리스가 있다면 유럽은 그리스의 아테네와 더불어 이곳 로마이다. 지금도 이탈리아의 수도로서 명성을 떨치고 로마 제국의 심장이었기에 세계의 머리, 영원한 도시라고 불린다. 서양사에서 로마라는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비잔티움)로 천도를 했을 때에도 명칭이 새로운 로마였고, 모스크바 대공국이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한 것은 이 문명사회에서 로마가 가지는 위치를 잘 대변해준다. 그리고 유럽에서 황제는 오직 로마 황제로서 로마의 적통을 이어받아야만 황제를 칭할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다음 비록 동로마 황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프랑크 왕국이 교황에게 서로마 황제의 관을 받았고,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우리가 제국주의 시대에 익히 아는 대영제국의 제국은 로마 제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인도 무굴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제국의 위상을 가져온 것이다.
로마는 테베레 강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해 왕국, 공화국 시절을 거쳐 로마 제국 시대에 최정점을 찍다가 5 현제 이후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해 동서 분열 이후 서로마제국은 게르만 족에게 멸망 당해 잠시 게르만 족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동로마 제국의 유스니티아누스 황제의 명을 받은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로마를 정복함에 따라 다시 동로마에 복귀했다가 다시 게르만 족의 침입이 반복된다. 그 후 프랑크 왕국과 교황의 협상으로 인해 로마는 교황령으로 존속된다. 르네상스기에는 문화의 중심지로 교황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불러 로마에서는 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는데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침략을 받는 사코 디 로마 사건으로 로마가 철저히 파괴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로마는 르네상스 시대 건물은 찾기 어렵고 그 이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도시 미관을 완성하게 되니 후폭풍이 엄청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교황을 목숨 걸고 지켰던 스위스 근위대에 감명받아 영원히 교황청 근위대로 스위스 근위대를 쓸 것을 약속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이후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군이 쳐들어와 이들에게 점령당하기도 하고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의 직할령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워털루 전투 패해 후 다시 교황령으로 복귀되었다. 최종적으로 이탈리아 안으로 로마가 들어온 것은 이탈리아 통일 전쟁 중이었다. 1870년 교황령까지 이탈리아로 복귀시킨 다음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로마의 바티칸 구역이 바티칸 시국으로 나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 세워진 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콜로세움 앞에서 아이와 아내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니 웅장한 콜로세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서서 2,000년 전에 지어진 장엄한 유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표를 예매해야 해서 줄이 늘어진 매표소에서 기다리는데 먹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고 모자를 쓰고 비를 맞으며 표를 사고 이윽고 입장했다. 로마 패스를 사지 않아 표를 사는 데에는 조금 대기가 있었지만 들어갈 때에는 그래도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으로 베스파시우스 황제부터 시작해 아들 티투스 황제가 다스리던 서기 80년에 지어진 경기장이다. 대학 1학년 미술사 시간에 콜로세움은 1층부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원주가 층마다 다르게 있어서 미술 건축사적으로 봤을 때 좋은 공부가 된다고 배운 기억이 났다. 흔히 글레디에이터 영화로 많이 대중매체에 알려져 있는데 검투 경기만이 아니라 크리스트교를 박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고 시민들을 위한 오락 시설로 맹수 경기, 서커스 공연 같은 것도 했고 심지어는 경기장에 물을 채워 가상 해전까지 벌였다고 한다. 해전은 비용 문제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로마 시민의 인기를 얻기 위한 황제들의 노력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트교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었던 곳이라 희생된 교인들을 추모하는 공간도 있었다.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콜로세움은 매우 효율적으로 이어져 입퇴장을 할 때에 붐비지 않고 오갈 수 있는 게이트가 따로 있어 현대 경기장 못지않은 시설을 자랑한다. 햇볕이 뜨거운 날이면 최상층의 나무 기둥으로 가림막을 설치해 마치 지금의 돔구장처럼 모습이 변해 그때 당시로서는 놀라운 지금도 불가사의한 건물이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바라보는 콜로세움 안은 이제 폐허로 변해 있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이 곳에서 울려 퍼졌을 함성과 탄식, 죽어갔던 사람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 건물 안을 수많은 사람들과 지금 걷고 있는 기분이 신기했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환호하고 또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한 곳에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그저 대단한 건축물이 아닌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그들이 있었다는 공간으로 나에게 다시 기억되었다.
멀리 보이는 콜로세움으로 나와 아이
날이 개고 콜로세움을 나와서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나 바로 옆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팔라티노 언덕에서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건국 시조인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가 나라를 세운 곳이라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독재자였던 무솔리니로 인해 파괴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보존되어 우리의 눈에 담겨 주었다. 흐렸던 날씨에서 구름이 개고 밝은 햇살이 등장해 걷는 내내 화창한 기운을 얻고 반짝이는 유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겨울철이지만 날이 좋아져 따뜻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늘이 없어서 여름에는 오후에 절대 다니지 말라고 하는 구역이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며 다닐 수 있었다. 티투스 황제 개선문, 바실리카, 베스타 신전, 원로원, 카이사르가 화장되었던 곳 등 수많은 유적이 즐비한 곳이 포로 로마노라서 이곳에만 서 있어서도 오래전 로마 공화국과 제국의 번성했던 시절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각 건물을 찾아보고 이름을 확인하면서 이런 폐허 유적은 손바닥을 대면 그때 모습을 들려주는 듯하여 그 옛날의 영화를 반추해보기 좋았다.
포로 로마노에서 아내와 아이
어느덧 오후 2시가 넘어가 허기가 져서 근처 식당을 찾아갔다. 마르게리타와 풍기 피자, 치킨 샐러드를 주문 해 먹었다. 무작정 보이는 곳이라 찾아갔는데 관광지라 그런지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얇고 먹기 좋은 피자와 담백한 샐러드를 먹고 나와서 후식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젤라토 가게에서 저렴하고 양도 많은 딸기, 누텔라 젤라토를 먹었다. 그 뒤 라테라노 성당으로 걸어갔는데 가는 길에 길에서 거대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날리는 사람, 행위 예술을 하거나 락카로 콜로세움을 그리는 사람들 등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어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해 구경하면서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은 돌들이 다닥다닥 붙여 있는 보도를 한참 걸으며 평화로운 로마의 가정집들을 지나 라테라노 성당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는 가톨릭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주교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꼭 와보고 싶은 성당이었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은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바실리카(Basilica)라고 불리는 급이 가장 높은 4개 성당 중 하나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가장 유명하지만 이 성당은 로마 주교인 교황이 거주하는 곳이라 가톨릭 세계에서는 어머니 성당으로 중심이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안의 넓은 예배당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앉아 엄숙한 미사를 보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로 보였다. 아내와 아이는 의자에 앉아 쉬고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성당 밖을 나오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들어 안고 가는데 팔이 너무 아파서 근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잠시 쉬기로 했다. 나와 아내는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휴식을 가졌는데 아내는 핸드폰 데이터가 없어서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예전에 결혼하기 전 배낭여행을 할 때 지도만 보고 다녀서 이렇게 알지 못하는 가게에 들어와서 먹어보는 것도 경험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를 깨우고 비도 그쳤길래 콜로세움 야경을 보기 위해 나갔다. 커피 값은 테이블에 두고 나왔는데 여행 다니면서 우리나라와 달라서 어색했던 점은 카운터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종업원이 와서 영수증을 주면 테이블에 놓고 종업원이 가져가는 식이거나 이렇게 테이블에 두고 바로 나오는 건데 익숙하지 않아서 두고 나올 때에도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콜로세움 야경은 낮에 봤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수많은 조명으로 인해 황금색 빛이 나는 콜로세움은 21세기인 지금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으로 느껴졌다. 어두운 밤인데 자꾸 우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 긴장되기도 해서 애써 무시했다. 멋진 사진을 여러 장 남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아이 간식을 샀다. 오는 길에 아이가 갑자기 앞에 가는 사람에 대한 외모를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다. 나이가 어려서 생각한 대로 바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겠지만 이걸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고 실례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실례되는 말을 하지 않도록 교육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저녁 식사로 바질 페스토 파스타, 햄과 버섯볶음, 샐러드를 차려 냈다. 다들 맛있게 먹고 아내는 와인을 마시며 분위기를 내보았다. 후식으로 다 같이 요거트와 팝콘을 먹으며 오래 걷느라 고생한 두 다리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