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에 미술관 예약이 있어서 아침은 먹지 않고 서둘러 짐을 챙겨 체크아웃과 동시에 호텔 데스크에 짐은 맡겨 놓고 나왔다. 밤 사이 비가 내린 피렌체 시내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더욱 선명한 색깔을 내었다. 서두른 이유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자리 잡고 있는 바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던 미켈란젤로에게 최고로 평가받는 다비드 조각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예약을 해서 그런지 의외로 한산해서 호젓하게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다비드 상 앞에서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말 그대로 교육기관으로 시작되어서 지금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을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비드 상이 원래 두오모에 설치하려고 했는데 운반 문제와 함께 걸작이라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시뇨리아 광장에 세워졌다가 산성비를 맞아 훼손이 생겨 1873년 토스카나 주정부가 손상을 막기 위해 이곳 미술관으로 옮겼다. 여리하고 어린 양치기 소년을 표현하는 대신 억새고 다부진 몸매와 그러면서 소년 같은 강렬한 눈빛을 가진 다비드 상은 르네상스 조각의 백미이고 조각의 천재로 불리는 미켈란젤로를 말하기 부족함이 없는 조각상이다. 5.17m의 거대한 크기로 제작된 대리석상은 골리앗을 물리친 성경 속 영웅 다윗, 즉 다비드의 모습은 대개 그전까지는 승리를 거둔 후의 모습이 많이 표현되었지만 미켈란젤로는 싸우기 전 결의에 찬 표정의 입매와 눈빛과 찡그린 눈썹, 그리고 손과 다리의 자세, 튀어나온 힘줄과 우람한 근육을 통해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는 의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손이 너무 크고 팔이 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은 작품이 원래는 두오모에 배치될 것을 감안해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모습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눈동자는 자세히 보면 하트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강렬하게 응시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천천히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맨 손으로 단단한 대리석을 깨며 그 모습을 생각하고 구현해 낸 천재 조각가에 경의를 표한다.
비너스의 탄생 앞에서
그다음으로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전에 먹지 못한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러서 크루아상,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빵, 초콜릿 크림 롤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아이를 위해 딸기 젤라토까지 완벽한 이탈리아의 아침 식사를 먹었다. 우피치 미술관을 가는 길은 화창한 날씨 덕분에 피렌체 시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시뇨리아 광장에서는 나귀들이 여물을 먹고 있어서 르네상스 시기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는 우리 셋이 같이 다녔는데 피렌체 패스가 없어도 대기 시간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표가 있다고 금방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인원을 들여보내기 때문에 성수기에 가면 오래 기다릴 수 있다. 피렌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모아놓은 우피치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보물들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으로서 루브르, 오르세나 영국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 조각, 작품만 놓고 보면 능가할 미술관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의 향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라파엘로의 '어린 요한과 함께 있는 예수와 성모', 카라바조의 '바쿠스' 등 보물 같은 작품들이 방마다 있어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화가들이 잔뜩 있는 전시실을 옮겨 다니는 게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메디치 가문의 초상화, 마르틴 루터 초상화나 라오콘 상 등이 있어서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회화 작품이 3층에 몰려 있기에 우린 바로 3층으로 올라가서 내려가는 식으로 보기로 했다. 불후의 명작을 눈에 담으려는 세계의 여러 관광객들과 함께 작품을 둘러보는데 아이는 역시 의자 찾아 삼만리였다. 관심이 도통 없으니 데리고 다니며 관람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고 이 그림 하면서 외치겠지만 아직은 그저 이름 모를 그림일 뿐이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아내와 아이
마지막 코스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라우렌치아 도서관에 갔는데 시간이 늦어서 입장하지는 못하고 잠시 그곳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죽 거리를 지나는데 아이가 고향 생각이 그리운지 국수와 김밥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나와 아내는 망설이다가 결국 아시아 음식점으로 갔다. 피렌체까지 와서 아시아 음식점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아이를 위해 들어가 실패가 없는 새우 볶음밥에 일본 라면 2개를 주문했다. 인스턴트 맛이 강하게 나는 음식들, 좋게 말하자면 입맛에 맞는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근처 젤라토 가게를 방문했다. 이탈리아에 와서 매일같이 젤라토를 먹는 듯했다. 그만큼 이탈리아 명물이고 가격도 저렴하며 맛있고 더위도 가시는 상큼함과 시원함이 입 안에 맴돌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와 아내는 커피를 주문하고 아이는 딸리 젤라토를 한 그릇 비웠다. 그리고 기차 타기 전에 마트에 들러 물과 간식을 조금 샀다. 우리는 피렌체 역으로 가서 로마 테르미니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짧았지만 이탈리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피렌체를 떠났다. 이번에는 자리 실수 없이 편하게 앉아서 우리를 데리고 간 기차는 오후 3시 38분에 출발해 노을이 지고 있는 5시 10분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유럽에서도 상당히 큰 역에 속하는 이 역은 예상대로 끝없는 플랫폼과 쏟아지는 인파로 가득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기에 유럽 안에서도 파리와 더불어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려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지갑은 안 주머니에 넣고 핸드폰은 꼭 쥐며 숙소로 향했다. 나는 아이를 어깨에 올리고 캐리어를 끌면서 어두운 밤거리를 아내와 걸어갔다. 살짝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니 우리도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숙소는 파리와 마찬가지로 숙박 공유 사이트로 골라 숙박 예약을 했다. 로마 시내에 있는 아파트 같은 시설이었는데 내부가 매우 넓고 좋아서 우리 3명이 지내기에는 넓어 보였다. 아내는 푹신한 침대, 나는 주방 기구를 보고 마음에 들어했다. 짐을 놓고 밀린 빨래를 하러 근처 빨래방에 갔다. 동전으로 교환을 해야 하는데 동전교환기는 보이지 않고 7유로 동전이 없어서 잔돈을 바꾸기 위해 근처 슈퍼에서 빵도 사고 초콜릿도 사야 했다. 그렇게 동전을 마련하고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돌리고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파스타를 종류별로 사고 물, 음료수, 향신료, 소시지, 햄 등을 사기 시작해 결국 6만 원 정도 장을 봤다. 두둑하게 3 봉지나 장을 봐서 그걸 안고 오느라 아이 손도 못 잡아 주었다. 그렇게 숙소에 장을 봐온 것을 넣고 다시 빨래방에 왔는데 주인아저씨가 와 있었다. 30분 동안 빨래가 돌아가는데 우리가 1시간 30분이나 나가 있어서 세탁기를 차지했다며 엄청 화를 내셨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빨래방을 자주 이용한 건 아니었지만 대개 눌러놓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겠으나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하는데 너무 늦게 왔다고 심하게 화를 내는 건 우리들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 룰을 잘 몰랐나 생각하고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늦게 왔다고 사과를 했다. 세탁기가 한 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대 있는 곳이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사실 납득은 잘 가지 않았다. 사과를 하니 주인아저씨도 조금 나아지셨는지 아까는 너무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건조기까지 마저 돌리고 빨래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준비한 요리는 토마토 라비올리 파스타와 샐러드, 저민 햄과 소시지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식비로 너무 많은 돈을 써서 이탈리아에서는 최대한 숙소에서 해 먹기로 했기에 특별히 실력 발휘를 해보았다.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이 건면 파스타였는데 이곳은 신선한 생면 파스타가 많이 있어서 여러 가지를 골라와서 요리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식자재였기에 여기서 구입해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아내는 예쁘고 맛있어 보인다고 칭찬을 했고 아이도 파스타가 맛있다며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와인 한 잔을 하려고 햄을 굽고 그 위에 치즈를 뿌려 안주로 내놓은 다음 둘이서 와인 잔에 이탈리아 와인을 담아 첫 날을 자축했다. 아이는 치즈를 뿌린 햄을 먹다가 치즈에서 오줌 맛이 난다며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온 초콜릿과 팝콘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다. 이렇게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로마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