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11)

2019년 1월 17일(11일째)-피렌체 시가지

by 오스칼

베네치아를 느끼기 위해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와 아내를 깨우고 다 같이 조식을 먹으러 갔다. 어젯밤에 끝나가는 베네치아가 아쉬워 호텔에 돌아온 다음 로비에서 아이랑 아내와 놀다가 들어가서 피곤함이 있었지만 크루아상과 커피로 피로를 날렸다. 기차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있어서 수상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표를 찍고 들어가는데 잘 안돼서 헤매긴 했지만 마침 온 배에 몸을 싣고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타서 배가 우리가 목적으로 한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긴 하는데 빙 둘러서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물어보니 시간이 30분이나 걸린다고 해서 과감히 포기하고 내려 다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광장까지 가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배를 탔다는 것에 만족하고 다리에서 마지막으로 사진 찍고 숙소에서 짐을 챙겨 역으로 갔다. 잠깐 시간이 나서 아이는 딸기와 초콜릿 젤라토를 먹었다. 11시 25분에 출발하는 피렌체 행 기차에 무사히 자리를 찾아서 앉아 출발하길 기다렸다. 이윽고 기차는 출발하고 한참 가는데 어떤 이탈리아 아저씨가 오시더니 우리 자리가 자기 자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우리 자리가 맞다고 확신했는데 역무원이 와서 살펴보니 우리 기차표는 2018년 9월 즉, 아내가 이 기차표를 예매했던 그때 그 날짜로 바로 끊은 표였다. 여행을 온 지금은 해가 바뀌어 1월이니 4개월 전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아내가 표를 잘못 예매한 것이다. 우리들이 표를 예매해 놓고 날짜를 확인 안 했으니 누구를 탓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차 안에서 표를 다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산 표는 무려 206유로로 우리 돈 27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원래 10만 원으로 산 티켓인데 3배 가까이 오른 가격에 미리 샀던 표 값까지 합하면 총 4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렇게 실수로 어이없이 큰돈을 쓰게 되다니 나와 아내 모두 속이 쓰리고 가슴이 아팠지만 즐거운 여행을 위해 겪는 좌충우돌이라 생각하며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여행을 다닐 때 더 유념하면서 준비하기로 했다. 비싼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허무함과 속 쓰림을 삭이며 피렌체로 도착했다.

호텔 방 앞 베란다

역에서 내려 이미 오후 1시 30분이 지나 점심을 먹어야 했지만 나와 아내 둘 다 오전의 충격으로 입맛이 없었다. 역 근처 중심가에 있는 호텔은 작았지만 안내하는 분도 매우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2층으로 배정된 우리 방은 길가에 있어서 창문을 여니 피렌체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화창하진 않았지만 다니기에는 적당한 온도의 날씨였다. 피렌체는 밀라노,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의 도시라고 생각된다. 토스카나 지방 최대의 도시로 이 토스카나 지역은 이탈리아 역사의 보고라서 이쪽만 도는 투어가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하니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서 피렌체의 역사, 건축, 예술은 굉장히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피렌체는 과거 메디치 가문의 보호 아래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해나갔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도나텔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에서 꼭 빠지지 않는 에이스들이 모인 곳이다.

피렌체 두오모를 배경으로

방에 짐을 풀고 두오모를 향해 길을 나섰다. 한국인들에게 두오모 하면 떠오르는 피렌체 두오모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성당이다. 정식 명칭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어딜 가도 볼 수 없었던 초록과 하양, 분홍 빛깔의 자태를 뽐내는 두오모가 나타났다. 피렌체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인 두오모는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돔으로도 유명하다. 색깔 있는 대리석과 더불어 유명한 이 돔은 벽돌을 쌓아서 올린 돔으로 공중 부벽을 쓰지 않고 로마 판테온보다 큰 돔을 지었기에 그 건축기술에 놀랄 수밖에 없다. 건물을 높게 짓는 당시 중세에서는 고딕 양식이 유행했었다. 알다시피 고딕 양식은 첨탑을 높이 세우는 것이 중요했기에 공중 부벽을 통해 지지대를 형성해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프랑스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지역 이탈리아 인들에게 있어서 프랑스나 다른 북쪽의 나라들은 로마 문명을 파괴한 야만인으로 그 양식을 모방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하기 위해서 고민을 했다. 그러기에 성당 돔을 건설할 수 있는 묘안이 나오지 않아 공사를 하다가 51년 동안 천장이 뚫린 채로 있게 된다. 그러다가 1418년 이 돔을 짓기 위해 공모전을 열었는데 그때 채택된 사람이 그 유명한 브루넬레스키였다. 그전까지는 금속 세공사로 일하며 건축 일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는데 이 돔 공사로 인해 이름이 남게 된 것이다. 이때 경쟁자가 기베르티였다.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기베르티 또한 대단한 예술가라 이 공사의 부책임자가 되어 브루넬레스키와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기베르티를 싫어한 브루넬레스키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결국 단독 책임자로 돔 공사를 마무리한다. 목재 틀 없이 벽돌을 쌓아서 완성하는 방법으로 1년에 걸쳐 공사가 마무리되고 브루넬레스키는 그 후 10년이 지나 사망하게 된다. 두오모 지하에 그의 무덤이 있다. 두오모 정면에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은 건물도 오래되었지만 무엇보다 천국의 문이 유명하다. 미켈란젤로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천국의 문은 세례당 대문인데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공모전에 참여했다가 당선된 기베르티가 1425년부터 만들어 27년간의 노력이 깃든 작품이다.

기절한 아이와 아내

두오모 주변에 사진을 찍으려는 많은 관광객들을 뒤로한 채 더 내려가니 시뇨리아 광장과 요새 같은 베키오 궁전이 나왔다. 시뇨리아 광장은 베키오 궁전, 우피치 미술관 사이에 있는 광장으로 7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용되는 광장이다. 이곳에는 많은 석상, 청동상이 있는데 특히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헤라클레스 상 복제품이 유명하다. 이 시뇨리아 광장을 지날 때부터 내 어깨 위에 목마 탄 아이는 자기 시작했다.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베키오 다리가 나타났는데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마법 같은 풍경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내 어깨를 짓누르는 아이의 무게에 도저히 그 풍경으로 빠져들지 못했다. 안아서 깨워봐도 깊이 잠든 아이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안고 다니는 것보다는 목마 태우고 재우는 것이 훨씬 나으니 아내와 나는 체념하고 사진을 찍으며 이 낭만적인 순간을 기억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피렌체의 전경을 보기 위해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미켈란젤로 광장은 1871년에 만들어졌고 중앙에는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청동으로 만든 다비드 복제품이 있다.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를 건너 광장으로 가는데 잠든 아이를 쌀가마 지듯이 어깨에 싣고 걷기를 시작했다.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등산하는 심정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데 신혼여행 촬영하는 커플이 눈에 보여 잠시나마 자유로운 그들이 부러웠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오렌지 빛으로 물든 피렌체와 그 중심에 솟아 있는 두오모의 둥근 돔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탁 트였다. 이때는 구름이 끼긴 했지만 하늘이 좋아 사진 찍기에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한참을 바라고 보고 있다가 아이도 깨워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근처에 두오모와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 있어 가서 둘러보았다. 피렌체의 색감이 들어있는 대리석은 따뜻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주었다.

다시 베키오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왔다. 베키오 다리는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다리로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보석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내가 한눈팔지 않게 빠르게 지나갔다. 미로 같은 피렌체 골목길을 지나서 예약해둔 식당에 도착했다. 피렌체는 소고기가 유명해서 티본스테이크와 리소토, 봉골레 파스타로 식사를 했다. 아이는 특히 봉골레 파스타가 맛있다고 조개를 야금야금 다 해치웠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밤이 되어 카페로 가는데 어둑하고 한적한 골목을 걸으니 피렌체의 속살을 보는 것 같았다. 시뇨리아 광장을 지날 땐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어서 그 장면을 영상으로 남겼는데 지금도 보면 그때의 감동이 살아난다. 작은 카페에서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으로 피렌체의 여운을 즐겼다.

천국의 문
피렌체 전경
베키오 다리와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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