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 아침 7시에 힘들게 눈을 떴다. 무엇보다 밀라노에 온 목적은 이것 때문이었다.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6개월 전부터 홈페이지에 계속 접속해서 겨우 예약을 한 거라 어렵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예약을 하고 나서도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 볼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보러 가는 날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 자고 있는 아이를 안고 10분 만에 후다닥 조식을 먹고 바로 나와서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은 출근하는 밀라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인파에 섞여 떠나가듯이 지하철에서 내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까지 걸어갔다. 교회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호젓한 분위기를 풍겼다. 앙증맞은 이탈리아 경차들이 일렬로 주차되어 있는 도로 옆을 걷노라면 동화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교회에 도착해서 표를 바꾸고 대기했다. 예약제로 운영되어 우리 외에도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되어 백발에 나이가 지긋한 가이드를 따라서 벽화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지나 많이 흐려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복원되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린 걸 알기에 경이로운 마음이 가득 찼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앞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템페라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가 잡혀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식사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최후의 만찬을 소재로 한 그림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다빈치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림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는 다빈치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회반죽을 벽에 발라 그것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화가 일반적이었다. 프레스코화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그려오던 기법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최전성기를 보냈던 기법인데 다빈치는 벽에 달걀이나 벌꿀, 무화과나무 수액 등을 바르고 그 위에 유화를 그리는 템페라 기법을 활용했다. 화가들은 색이 있는 돌이나 식물에서 직접 채취해 안료를 만들고 이걸 달걀 등과 섞어서 물감으로 사용했다. 이 당시에는 달걀을 용매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단점은 프레스코 기법보다 부식이 쉽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템페라를 사용한 것은 천천히 그리며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을 전할 수 있는 그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빈치가 1495년부터 3년에 걸쳐 그린 그림인데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는 음모론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예수 옆에 있는 젊은 남성이 대개 사도 요한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사도 요한이 아닌 사실은 마리아이며 옆에 있는 베드로가 목을 치고 있는 듯한 그림으로 마리아의 운명을 나타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마리아 사이에 브이(V) 모양의 공간이 나오는 데 이게 성배를 상징한다고 하는 내용으로 음모론을 주제로 한 소설에 이야깃거리를 주는 그림임에 틀림없다. 인물 묘사 외에 원근법이 상당히 뛰어난 그림으로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1977년 복원되기 전에는 훼손이 워낙 심해 그림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려 22년에 걸쳐서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복원이 된 다음에 진짜 원본으로 복원을 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다. 하지만 무려 500년이 흐른 뒤에 복원이 된 그림이라 많이 훼손된 상황에서 완전히 원본의 모습을 찾아 복원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시는데 이곳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큰 폭격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무사히 성당 벽은 무너지지 않아서 그림은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기 핸드폰과 카메라로 그 순간을 담기에 바빴다. 나도 몇 장 찍었는데 다소 어두운 실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나오지는 않았다. 그 고고한 분위기를 남겨두고 나왔다.
성당에서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두오모로 갔다. 어제 노을 지고 있던 두오모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하얀 대리석이 반짝여 광장 전체를 밝혀주고 있는 듯했다. 광장에는 비둘기가 많아서 아이는 또 신나게 비둘기를 좇아 다녔다. 두오모 광장은 밀라노 시내의 중심으로 바로 옆에 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에 갔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이곳의 이름은 꽤 긴데 그 명칭은 사르데냐의 제2대 국왕이면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제1대 국왕 이름이다. 아내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데려갔는데 아내도 마음에 들어해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가장 큰 선물을 해줬다. 아이는 기웃거리면서 소파에 드러누워 오직 앉아있을 생각만 했다. 호텔로 돌아와 빠르게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했다. 어느새 터질 듯한 캐리어에 쇼핑백이 2개이다. 숙소 앞 첸트랄레 역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베네치아로 가는 유로 시티 기차를 탔다. 역에 있는 커피 바에서 나도 서서 이탈리아 사람처럼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설탕을 한 스푼 넣고 휘저은 다음 딱 세 모금으로 끝냈다. 기차 안은 테이블이 있어서 서로 마주 보며 갈 수 있었고 테이블이 있어서 간식도 먹고 아이도 장난감으로 놀 수도 었다. 가는 내내 아이를 한국에서 가져온 스티커 북 놀이, 역 매점에서 산 작은 레고와 클레이를 가지고 잘 놀다가 자기도 했다. 2시간 30분이 걸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릴 때는 몰랐는데 베네치아 역 앞으로 나오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살면서 그런 장면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는 바닷물이지만 강물 같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거미줄처럼 물줄기가 있는 도시 베네치아에 온 것을 실감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 앞
베네치아, 영어로는 베니스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물의 도시가 아닌가 싶다. 현재 구시가지는 오로지 배로만 이동이 가능하고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운행은 불가능하다. 물길로만 다니니 당연히 배로 다니는 것이고 도심이 크지 않아 충분히 도보로 다 둘러볼 수 있다. 걷지 않고 이동을 하려면 곤돌라나 작은 페리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데 좁은 길은 곤돌라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작은 페리는 정류장처럼 선착장이 곳곳에 있어서 순서대로 이동을 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때는 5세기경 게르만 족의 침입을 피해 로마인들이 석호 지대로 넘어가 정착을 했던 것이 시초로 동로마 제국 밑에서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침입을 해오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동로마 제국이 개입하고 결국에는 동로마 제국 산하에 남게 된다. 그리고 지금과는 다르게 각 섬들이 산재하고 있어서 이를 조금씩 간척해 나갔고 도시가 성장할수록 막대한 북부 이탈리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도시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때가 르네상스기의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그 이후 시련이 많았던 도시였다. 나폴레옹에 점령당하기도 하고,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기도 하다가 나중에 이탈리아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프로이센 편에 서서 베네치아를 넘겨받게 된다. 이 물의 도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3에 초반부 단서를 얻는 중요한 도시로 나오고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의 무대도 이 베네치아이다.
젤라토를 손에 들고
물길 위를 오가는 수상 버스와 곤돌라,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도시에서 다소 짠 바닷바람을 마셔보았다. 역 근처에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들어가 오래된 호텔에 체크 인을 했다. 방 안은 우리가 묵기에 넓었고 오래된 시설이라 안 좋은 것이 아니고 클래식한 감성이 묻어나는 호텔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방에 짐을 풀고 나와 산 마르코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좁고 굽이진 골목길과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모든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진정 세계 유일 물의 도시다웠다. 생각보다 하얗고 심플하지만 거대했던 리알토 다리를 지나 화려한 상가와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서 산 마르코 광장에 금방 도착했다. 광장에는 비수기이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던 이곳은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등이 자리 잡고 있는 넓은 광장으로 그 이름이 된 산 마르코는 신약성경 마태복음을 지은 마르코의 유해가 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피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되어 있던 것을 828년 옮겨와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면서 비롯되었다. 이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지은 성당이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성당 앞으로 장식하고 있는 멋진 청동 말 4마리는 십자군 전쟁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한 전리품으로 부식 문제로 인해 밖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종탑에 올라서 그 광장을 보고 싶었는데 수리 중이라서 올라갈 수는 없었다. 하늘도 파랗고 노을이 져가고 있어서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 사진을 찍는데 다들 아름답게 나왔다. 광장의 또 다른 명물은 시계탑이다. 로마자로 24시간이 표시되어 있는데 12 궁도와 달, 태양이 표현된 천동설 시계로 굉장히 정밀하게 잘 만들어졌다. 광장에서 두칼레 궁전 쪽 해안가로 오면 그 유명한 탄식의 다리가 보인다. 그 이름이 붙인 이유는 중범죄자에 대해서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을 하고 무죄 판결을 받으면 정문으로 나오지만 유죄가 되면 다리를 건너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마지막 베네치아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그 다리를 건너며 탄식을 했기에 이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탄식의 다리를 건너 수감되고 탈옥했다고 하는데 그건 루머에 불과한 이야기다.
저녁식사로는 여행자들의 추천을 받은 식당으로 갔다. 구시가지에 있는 식당이라 가격은 조금 있지만 내일이면 또 떠날 곳이라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해물 모둠, 먹물 파스타, 랍스터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아내는 먹으면서 계속 감탄을 연발했다. 야들야들한 면에 싱싱한 해산물은 짜지 않고 담백해 살아있는 맛이라고 칭송했다. 나와 아내, 아이는 신나게 음식을 먹었다. 아내는 와인, 나는 콜라를 곁들이고 후식으로 티라미수와 레몬 소르베까지 풀 코스로 먹었다. 가격은 조금 있었지만 상쇄할 정도로 맛이 좋아서 나갈 때 주인아저씨와 사진도 찍었다.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한 베네치아 거리를 가로등에 의지해 돌아가는데 이 곳에서 걷다가 길을 잃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별이 반짝거리는 베네치아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