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9)

2019년 1월 15일(9일째)-말펜사 공항, 밀라노 시가지

by 오스칼

일어나자마자 아침 식사로 저번에 한인 마트에서 사 온 컵라면 2개에 누룽지를 끓이고 남은 김치에 먹었다. 그리고 기차역으로 서둘러 갈 준비를 했다. 아이는 영국에서 샀던 작은 장난감을 잃어버려서 계속 찾다가 결국에는 못 찾고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설거지, 이불 정리도 다 하고 분리수거까지 하고 나오느라 다소 바빴지만 무사히 기차를 타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아이는 잃어버린 장난감 때문에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4일 밤을 잤던 정들었던 파리와도 안녕이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지만 단순히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파리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떠난다. 다음에는 햇살이 화사하고 빛이 산개하여 걸을 때 다소 땀이 나는 날씨, 차가운 얼음이 들어있는 음료를 찾는 계절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친 후 간단하게 빵과 커피로 점심을 해결하고 비행기를 탔다. 오후 1시 25분 출발하여 2시 55분에 이탈리아 밀라노로 도착하는 비행기인데 안에는 거의 이탈리아 사람들로 보였다. 1시간 30분 후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새파란 하늘에 한 번 놀라고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맥에 한 번 놀랐다. 파리에서는 매일 다소 흐린 날씨였는데 여기는 화창하다 못해 투명한 하늘 그 자체가 있는 듯했다. 멀리 보이는 알프스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경이로웠다. 공항 나올 때에는 같은 EU라서 그런가 검문검색도 없고 같은 나라 이동하는 것처럼 바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을 달려 밀라노 시내에 도착했다.

노을 지는 두오모를 배경으로 아내와 아이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도시로 롬바르디아 지역의 대표 도시이다. 북부 최대 도시이자 소득 수준이 굉장히 높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처럼 반도 국가인데 남과 북의 소득격차가 상당히 크다. 로마를 기점으로 북쪽 지역은 산업화가 잘 이루어져서 공업 시설도 많고 일자리도 많아 잘 사는데 비해 남부는 산업 발달이 크지 않아 경제 소득이 낮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지역감정도 심하다. 밀라노 인구는 130만 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 정도 되는 인구이다. 여러 기업, 은행의 본사가 있고 증권 거래소가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섬유, 의약, 자동차, 기계 등 관련 제조업의 많은 공장들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그러면서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라서 프라다,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등 유명 이탈리아 브랜드가 포진해있다. 파리, 런던, 뉴욕과 더불어 세계 4대 패션쇼를 책임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 멸망 뒤에 근대 국민 국가가 되기 전까지 유럽 안에서 별다른 이름 없이 힘을 쓰지 못했는데 에스파냐,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유럽을 주름잡을 때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와 독일은 그저 변방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래서 두 나라의 근대 국민 국가 통일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 멸망 뒤 봉건사회였던 프랑크 제국과 그 이후 분열을 거치며 지방 정권으로 산산조각 난 나라였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지방색이 매우 강하다. 알프스 이남 교통의 요지이기도 한 밀라노는 한때 프랑스 영토가 되기도 했었고 밀라노 공국으로 독립된 적도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으며 다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서 이탈리아 왕국으로 편입이 될 때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젤라토는 소중하다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더블린에서 묵었던 호텔에 버금가게 좋았다. 체크인을 하고 두오모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두오모는 피렌체 두오모를 많이 연상하지만 대성당을 의미하는 뜻으로 밀라노 대성당 역시 두오모로 불리며 가톨릭 성당에서 매우 유명한 성당이다. 노을이 져가는 이곳 광장에는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아내는 두오모에 올라가자 했지만 나는 밀라노 시내를 둘러보며 천천히 즐기고 싶어 광장과 이 주변을 걸어보자고 했다.

밀라노 대성당은 500년이 넘는 공사기간이 걸려 완공되었다고 한다. 1386년에 착공되어 1965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비견될 정도이다. 밀라노 대성당은 고딕 양식 성당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성당이고 이탈리아 안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성당은 주로 로마네스크 양식이 많아서 고딕 양식이 유명한 프랑스보다 상대적으로 고딕 건물이 없다. 그러기에 고딕 양식을 대표하면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밀라노 대성당은 밀라노에 온다면 반드시 찾아야 할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랭스나 쾰른, 샤르트르 대성당 같은 고딕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과는 많이 달라 처음 보면 이게 고딕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긴 공사 기간 동안 이것저것 덧붙여지고 하면서 양식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오른 첨탑들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닿고자 소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와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 라 스칼라를 지나 걷는 길에 유명한 이탈리아 젤라토를 사 먹었다. 아이는 딸기, 우리는 커피 맛으로 주문해 아이는 컵으로 받았고 우리는 콘으로 받아 거리를 걸으며 맛을 봤다. 쫀득하기보다는 뭔가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맛이었다. 가는 도중에 비스트로가 보여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피자와 파스타를 시켰다. 피자는 위에 밀라노 스타일 살라미가 올라간 피자였고 파스타는 라구 소스와 탈리아텔레로 만든 파스타였다. 나는 맛있었는데 아내 입맛에는 상당히 짜다고 해서 먹고 나서는 속이 조금 안 좋다고 했다. 밖을 걸으며 바람을 쐬니 나아졌다. 아내가 바람을 쐴 동안 나와 아이는 근처 레고 가게에 들어가서 레고 구경을 실컷 했다. 아이는 레고를 사주는 줄 알고 엄청 기분이 업 되었는데 결국 열쇠고리 레고 2개를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밤의 두오모 앞에서

돌아가는 길에 밀라노 두오모의 야경을 즐기고 새로 생긴 스타벅스 매장에 가보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사랑은 각별하다. 좌석에 앉지 않고 바에 서서 단돈 1유로로 빠르게 내린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고 바로 나가는 이탈리아 커피 문화를 보여주듯이 커피는 삶의 일부분이다. 미국처럼 큰 컵에 에스프레소에 물을 잔뜩 탄 아메리카노가 없다. 유럽은 아메리카노 문화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문화이다. 차가운 커피도 없는데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는 관광지는 아메리카노며 아이스커피를 팔지만 일반적으로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 물에 탄 커피는 필터 커피라고 부르며 일반적으로 마시지는 않는다. 그 문화가 가장 짙은 곳이 이탈리아고 그러기에 전 세계 곳곳에 침투한 스타벅스가 이탈리아에는 좀처럼 진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상징적인 에스프레소 문화의 심장에 진출하려고 노력했고 그러한 스타벅스가 문을 새롭게 연 곳이 밀라노여서 한 번 구경 가기로 했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고 커피가 일반적인 기호 식품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운용되는 이탈리아이기에 스타벅스 같은 거대 체인점에 대해 별로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짜 깊은 맛을 보려면 전통 있는 식당에 가지 일반적인 체인점에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에는 소규모로 카페들이 굉장히 많기에 대형 커피 체인이 발 붙이기 힘든데 밀라노에 스타벅스 로스터리 매장이 열었기에 호기심 삼아 방문해봤다. 외관은 상당히 고풍스러운 건물이었고 들어가면 큰 로스터리 기계가 있고 내부도 상당히 넓어서 꽤나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나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가격은 우리나라보다는 약간 저렴해 보였다. 에스프레소를 그냥 마시면 원두의 향이 확 느껴지는데 거기에 설탕을 첨가하면 달콤하면서도 커피의 진한 맛이 더 잘 느껴진다고 해서 대개 설탕을 한 스푼 넣고 저어서 홀짝 마신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밀라노의 밤을 함께 보냈다.

밀라노 대성당
이탈리아의 첫 끼
밀라노 스타벅스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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