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8)

2019년 1월 14일(8일째)-파리 시가지

by 오스칼

모두 아침 9시까지 꿀잠을 자고 아침 먹으러 가는 길에 빨래방에 들렀다. 이번 아침 식사는 근처 카페에서 즐겨보기로 해서 일단 빨랫감을 들고 빨래방에서 빨래를 한 다음 가기로 했다. 불어로 가득한 빨래방에서 난관을 뚫고 빨래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아내가 해석한 대로 동전을 교환하고 내가 세제 받는 기계의 번호를 돈 넣는 기계에 입력하니 띠-하는 소리와 함께 세제가 나와서 무사히 세제를 받았다. 하지만 세제 넣는 구멍을 몰라서 세제를 손으로 퍼서 옮기기도 했으나 다행히 제대로 넣은 거였다. 무사히 빨래하기를 완료하고 근처에 있는 카페로 식사하러 갔다. 크로와상, 커피, 과일주스, 오믈렛, 크레페로 완벽한 프렌치 아침을 먹었다. 아내는 크레페를 꼭 먹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크레페는 달걀의 촉촉함과 부드러움, 버터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춤추며 넘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빨래방에 다시 가서 건조기를 돌리고 마트에 다녀오니 빨래가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잘 말려있었다. 여행 중 이렇게 편하게 깨끗한 옷을 입게 되니 행복했다. 앞으로는 손빨래 안 하고 이렇게 빨랫감이 모이면 빨래방에서 세탁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펠탑 누르기

버스를 타고 에펠탑이 잘 보이는 샤요 궁전으로 갔다. 낮에는 와본 적이 없어서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그곳에 가서 우리 가족 모두 사진을 찍었다. 에펠탑을 손으로 드는 시늉도 하고 입을 맞춰보는 시늉도 하면서 여러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버스를 타고 개선문 근처에 내가 찾아 놓은 스테이크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무래도 걷는 여행을 하다 보니 열량 소비가 많아서 그런가 고기를 자주 찾게 된다. 레스토랑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운이 좋게 바로 자리를 얻어 테이블에 3명이 붙어 앉았다.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두 번에 나눠서 갖다 줘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고 양도 푸짐해서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른 것 없이 기본에만 충실한 맛이라 아이와 아내도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나 보다. 아침과 점심 모두 외식하게 되어 다들 배가 상당히 불렀다.

걸어가서 만난 개선문은 웅장하고 거대했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이 이 개선문을 따라 만들었다고 했는데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했다. 도로 한가운데 있어서 위험해 보였지만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었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지하보도를 통해 개선문 안으로도 들어갔다. 아이가 걷기 힘들어해서 목마를 태우고 200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박수 쳐주었다. 맨 위에 전망대에 오르니 이곳에서도 파리의 방사형 도로를 가까이 볼 수 있었는데 노트르담 성당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특히 샹젤리제 거리가 눈 앞에 확 들어와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개선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을 맞이하기 위해 세운 문으로 승리한 장군을 개선장군이라고 불렀다. 개선문 문화는 고대 로마제국에서 많이 이루어졌는데 황제들은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 위해서 개선문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영향의 총체가 이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이다. 나폴레옹이 만들었다고 하나 정작 살아 있을 때는 이 개선문을 지나지 못했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고 나서 그 유해를 파리로 옮기기 위해 지나갔던 1840년이라고 한다. 파리는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 별 모양의 도로가 퍼져있다. 그래서 에투알(etoile), 즉 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파리의 방사형 도로는 그 옛날 파리 재개발 당시 나폴레옹 3세가 시위를 효율적으로 진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개선문에서는 파리 신도시 지역인 라데팡스의 신 개선문을 바라볼 수 있어서 신구의 개선문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파리의 12개 도로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어느 쪽을 봐도 쭉 뻗은 도로들이 보였다.

못 누른 개선문

그렇게 구경을 한 후 내려와서 화려하고 많은 사람들이 걷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디즈니 상점도 있어서 물건은 사지는 않고 눈으로 구경만 하다가 나왔다. 명품 거리라 그런지 각종 유명 브랜드가 즐비했다. 이때는 마침 구름이 걷혀서 파란 하늘을 잠깐 볼 수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가 끝나고 화려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다리를 걷다가 가게 여종업원을 만나는 그 다리였다. 도도히 흐르는 센 강에 있는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다리이다. 다리의 유래는 러시아 알렉상드르 3세 이름에서 빌렸다. 영화의 여운을 느껴보며 다리를 건너려는데 크레페 노점이 있었다. 이걸 지나칠 아이가 아니었다. 누텔라 크레페 1개를 사서 먹으며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앵발리드로 가서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을 봤다. 앵발리드는 팡테옹과 더불어 파리의 묘지이다. 팡테옹이 위인들을 모신 곳이라면 앵발리드는 군인들을 모신 곳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나폴레옹 1세가 잠들어 있다. 원래 이곳은 추모 공간이 아니라 병원과 노병 및 퇴역군인들 위한 시설이었다. 그래서인지 본 건물 옆으로 가면 퇴역 군인들이 생활하는 건물이 나온다. 앵발리드 본관으로 가기 전에 박물관처럼 전시물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을 보는 것이었기에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본관 안에 들어가니 거대한 돔의 위용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밑으로 내려가니 매끄러운 곡선을 가진 나폴레옹의 관이 있었다. 이 관을 처음 본 건 어릴 적 집에 있던 위인전 시리즈 중 나폴레옹 전기에서였다. 맨 뒤에 몇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때 파도 모양의 곡선에 짙은 나무 색을 한 관을 보았던 그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앵발리드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초콜릿 크림 푸딩을 주문해 먹었다. 쉬는 동안 점차 노을이 어둠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개선문에서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왔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 장교 행세

가로등이 비쳐 더 멋진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니 맞은편 다리의 조명에 반사된 센 강이 너무 아름다웠다. 낮보다 더 화려하고 반짝이는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으로 걸어갔다. 아이가 가는 길에 내 어깨에서 잠이 들어 거리를 걸어가는 내내 자고 있는 아이를 어깨에 지고 걸었다. 한 가지 웃겼던 것은 자고 있는 아이를 어깨에 지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내 어깨에 얹혀있는 중에 알았다. 나와 아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어깨에 얹혀갔던 것이다. 여행 내내 내 어깨는 아이의 보금자리가 되어갔다. 개선문에 도착했는데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이 때문에 난감했다. 자고 있을 때는 무게가 더 나가는데 도저히 200개의 계단을 데리고 갈 힘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잠든 아이를 업은 우리를 본 개선문 직원들의 배려로 특별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손쉽게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러한 비밀 공간이 있었다니, 아이가 아니었으면 경험해보질 못한 순간이었다. 파리의 야경을 그렇게 둘러보고 내려올 때는 아이도 깨워 같이 계단으로 내려왔다. 아내는 에펠탑 야경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다시 한번 에펠탑 앞 샤요 궁전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 사진사인 나는 아내에게 에펠탑을 배경으로 여러 포즈를 주문했다. 남는 건 사진이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많이 찍었다.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에펠탑을 다들 마음에 담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제부터 송아지 스테이크를 아내가 먹고 싶어 했는데 우리의 검색 부족인지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못 만나서 숙소에서 직접 해 먹기 위해서였다. 마트에서 극적으로 송아지 고기를 찾고 숙소에 남아있는 바게트를 처리할 수프, 저렴한 화이트 와인, 아이를 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샀다. 집에 와서 바로 준비해 모두 맛있게 프렌치 가정식을 즐겼다. 와인잔으로 건배하며 파리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에투알 개선문
나폴레옹 1세 무덤
에펠탑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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