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으로 향긋한 프랑스 빵을 먹어보기로 해서 갓 구운 빵을 사기 위해 아내는 아침에 근처 빵집으로 가서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사 와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바게트는 겉이 약간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했고 크로와상은 고소한 풍미가 씹으면 입 안에 가득히 퍼졌다. 아침을 이렇게 먹으니 현지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늘은 문화 경험을 쌓는 날이기 때문에 얼른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아쉽지만 날이 여전히 흐려서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없었지만 비가 안 오는 게 어딘가 싶어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몸을 맡겨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약간 생소하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모네의 '수련' 그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미술관에도 모네 그림이 많이 있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모네가 자신의 수련 그림을 기증하기로 하면서 미술관은 그에 맞게 공간 설계를 하게 되었고 리모델링을 거친 후 200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이 미술관에는 정말 유명한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세잔,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도 있지만 그보다 더 한 것은 1층에 있는 모네의 수련 8점이다. 작품은 굴곡진 캔버스를 온전히 걸을 수 있도록 전시실 자체가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과 여자 친구, 다른 친구들과 방문해서 나온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그 정숙한 분위기에 모네의 그림이 촤르르 펼쳐져 있는데 순간 공원에 나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관람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한 자리에서 유심히 볼 수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기우뚱해서 하마터면 작품에 손을 댈 뻔한 식은땀 나는 상황이 연출했다. 가드도 주의하라고 눈짓을 주었다. 모네의 수련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하고 강 건너 오르세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역시 회화 작품이 방대하여 루브르에서 썼던 작전을 활용해 따로 보기 작전으로 각자의 작품을 감상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말 그대로 박물관이라면 여기는 회화의 보물 창고였다. 신고전주의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대거 있는 곳이라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흥미도가 떨어지는 우리 부부에게는 최고의 장소였다. 쿠르베, 밀레, 마네, 르누아르 등 유명한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도 많았고 뭉크, 고갱,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들도 있었다. 원래는 오르세 역이었는데 철도 발전에 따라 수용이 부족해져 폐역이 된 것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서 개장했다고 한다. 처음 들어간 곳에서 충격을 받았던 작품은 밀레의 '이삭 줍기'였다. 이 작품이 여기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두 눈으로 보았을 때의 감동은 남달랐다. 그 작품 외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을 보았을 때에도 그 붓놀림을 보기 위해 경이로움으로 작품을 계속 바라봤다. 밀레의 '이삭 줍기'와 '만종', 마네의 '풀 밭 위의 점심'과 '피리 부는 소년',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드가의 '발레리나', 르누아르의 '햇빛 속의 누드',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남자들',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 앵그르의 '샘' 등 수많은 작품들이 나의 눈을 호화롭게 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루브르와 비교하자면 오르세 미술관이 작품들 면에서 더 나았다. 중세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르네상스 회화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정도였기에 19세기 화가들이 작품이 가득한 이 곳에서는 눈을 돌릴 때마다 좋은 작품들이 있어서 보는 내내 흥분과 즐거움이 있었다. 아내도 밀레, 고흐, 르누아르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며 오길 정말 잘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머릿속에 소시지 생각밖에 없어!" 하면서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소시지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나름의 향수병인 듯했다.
베르사유 궁전 도착
오르세에서 나와 근처 앵발리드 기차역으로 향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가기 위해서였다. 프랑스는 파업이 자주 일어나서 철도 파업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못 간 사람들이 있다 해서 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발권도 잘 되고 기차도 제시간에 바로 출발해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아이는 잠이 들어 내가 안고 기차에서 내려 근처 식당으로 갔다. 베르사유 궁전 근처 식당이라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식당일 텐데 외국인인 우리가 보았을 때는 보통 레스토랑과 똑같아 보였다.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니 미국인들이 많은 듯했다. 전체로 연어 타르타르, 에스카르고를 주문하고 메인으로 농어 구이와 오리 다리 구이를 주문해 먹었다. 일단 나와 아내는 맛있게 먹고 깊이 잠든 아이를 깨워 먹인 다음 베르사유 궁전으로 갔다. 아이가 에스카르고를 좋아해서 프랑스 음식 하면 떠올리는 게 이 달팽이 요리이다.
거울의 방에서 한 컷
멀리서도 금빛으로 반짝이는 베르사유 궁전이 보였다. 겨울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금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0대 이상이면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마리 앙트와네트와 오스칼이 등장하는 프랑스혁명 시기를 다룬 만화 영화는 초등학생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는데 그때 베르사유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베르사유는 거대한 궁전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태양왕이라고 불린 루이 14세의 궁전으로도 유명한데 궁전 못지않게 정원도 유명하다. 이곳 역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왔었다. 영화 속에서는 색감이 따뜻하면서 뚜렷하게 나왔는데 날이 흐려서인지 사진에 담긴 베르사유 궁전은 생각보다 빛나 보이진 않았다. 이곳은 루이 14세부터 16세까지 왕조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이곳에서 큰 사건 2가지가 일어난다. 첫 번째가 독일제국의 황제인 빌헬름 1세가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을 승리로 이끌면서 이곳 거울의 방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그리고 거기에 설욕하듯 1919년에 거울의 방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강화 회의가 열려 베르사유 체제가 성립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중세시대부터 왕권은 약하고 제후들의 입김은 강했으며 왕은 그저 제후들 중 조금 더 강했던 존재였을 뿐이지만 중세를 지나면서 상비군과 관료제를 기반으로 왕을 중심으로 한 절대왕정이 형성된다. 그때 루이 14세는 귀족들의 입김이 없는 새로운 곳을 찾아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된 것이고 이러한 왕권을 보여주고자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여 사람들은 왕이 식사하는 모습, 왕비가 출산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곳인 거울의 방은 양 옆이 창문과 거울로 이어져 있었다. 이 방의 모습을 남긴 유명한 그림이 독일 제2제국 선포식과 베르사유 조약 서명의 순간이다. 이 두 그림을 통해 독일제국의 흥망을 볼 수 있으니 그것도 참 애잔한 역사의 모습이다. 궁전 뒤편으로 나와서는 정원으로 나갔는데 겨울이라 꽃도 없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궁전을 배경 삼아 단정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모습을 보니 아름다웠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어서 정원에서 볼일을 봤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다. 로마시대보다 못한 위생 시설로 인해 각 방에 요강 같은 걸 두어서 볼일을 보거나 했는데 그걸 하인들이 버릴 곳이 없어 정원 아무 곳이나 버렸기에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지금은 당연히 공용 화장실이 있어서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만찬을 즐기는 아이
궁전을 나와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가 편하게 기차를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소시지를 외친 아이를 위해 향수병을 잊게 하고자 한국 마트를 찾아갔다. 한국 음식도 많이 팔고 일본, 중국 음식도 간간이 파는 마트였는데 한국인들도 제법 있으려니와 프랑스인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봉지라면, 소시지, 김치, 김밥을 샀다. 숙소까지 두 봉지 넉넉하게 들고 와서 저녁을 준비했다. 담백하면서 짭짤한 라면과 아삭한 김치, 삶은 소시지, 상추가 들어간 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아이는 이 식사가 여행 중에 먹었던 모든 밥 중에 제일 맛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김치도 먹고 싶다고 얼른 씻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아이지만 이제 한식이 소울푸드인가 보다. 어느덧 여행 중반이라 쉼표라 생각하고 만찬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