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이와 서유럽(6)

2019년 1월 12일(6일째)-파리 시가지

by 오스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날 사온 냉동 피자를 돌리고 샐러드,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아내를 위한 아몬드 우유, 아이를 위한 오렌지 주스, 나를 위한 콜라까지 냉장고에서 꺼내 차리고 요거트도 준비해서 다들 파리에서 첫 아침을 셀프 조식으로 맞이했다. 내가 다녀본 유럽의 에어비앤비는 주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이렇게 요리하기에 편리했다.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유명한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매 끼니마다 사 먹게 되면 비용 부담이 되니 아침이나 저녁을 이렇게 해 먹을 수 있는 게 비용 절감이나 현지 마트 이용,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살짝이나마 현지인의 살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다들 비워진 배를 가득 채우고 어제 급하게 보았던 루브르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아 오전은 루브르 박물관 탐방을 다시 하기로 했다.

루브르에서 제일 좋아했던 유물

이제 문 잠그는 것도 익숙하고 한층 몸과 마음도 넉넉해진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향했다. 비도 내리지 않고 춥지 않은 날씨에 파리의 거리가 눈에 잘 들어왔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내가 사랑하게 된 도시의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아보았다. 시간이 이제 넉넉하니 한국어 가이드를 들고 함께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영국 런던에서 느꼈던 내셔널 갤러리의 감동이 다시 느껴지는 듯했다. 영국에서는 영국박물관보다는 아무래도 회화 쪽에 내가 관심이 많기에 내셔널 갤러리가 더 크게 감동적이고 인상 깊게 느껴졌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아무래도 일반 유물보다는 회화, 조각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되어 좋았다. 회화 외에 루브르에는 이집트, 서아시아, 발칸반도 등에서 가져온 유물들도 많이 있다. 회화 위주로 봤던 내셔널 갤러리와는 다르게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상과 작품들도 있어서 도감 속에서 봤던 조각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제 아내와 아이는 보지 못했던 밀로의 비너스를 감동적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유명 작품들이 내 눈 앞에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곳곳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어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었다. 또 어떤 분은 이젤과 그림 도구를 놓고 모사를 하고 있었다. 루브르에 있는 회화는 중세시대부터 1848년까지의 작품들로 약 6,000여 점이 있다고 한다. 1848년 이후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관, 전시하고 있어서 루브르와 더불어 파리 최고의 문화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회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성 요한과 성모 그리고 아기 예수', '성 안나' 등이 있고, 카라바조, 라파엘로,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등의 작품과 프랑스 화가 하면 가장 유명한 인물인 다비드의 작품들도 많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런 전시품 말고도 소설 다빈치 코드로도 많은 유명세를 떨쳤다. 루브르 박물관 관장인 자크 소니에르가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의 모습으로 죽어 있고 루브르에서 이를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이 소피 느뵈와 함께 진실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일인데 가톨릭과 회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은 소설이었다.

퐁네프 다리에서 센 강을 배경으로

루브르에서 우리 가족의 문화 예술 공부를 마치고 나와서 그 유명한 퐁네프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그 유명한 소매치기인 싸인(Sgin)단이 와서 길을 막더니 사인해달라고 했다. 파리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싸인단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길을 막고 기아 돕기나 난민 돕기 등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며 싸인을 부탁하고 이를 틈타 소매치기를 하는 수법이다. 나는 가는 길에 이미 싸인단을 보았고 그들이 접근하리라는 걸 알아서 그들이 다가오자 무시하고 바로 갔다. 아이는 이때 목마 타고 있어서 나는 아이 양 발을 손으로 잡고 후다닥 가고 아내도 옆에서 모른척하고 지나쳤다. 이들이 말을 거는데 그러면서 재빨랐던 게 나의 재킷 호주머니에 손을 대는 게 느껴졌다. 그 안에 지갑이 있었는데 마침 지퍼가 있는 호주머니여서 잠겨있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때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다. 그들을 지나친 다음에 보니 호주머니 1/3이 열려있었다. 다음부턴 더 조심해야겠다며 아내와 이야기했다. 이날 개선문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다고 해서 가는 곳곳 무장을 한 경찰 병력이 눈에 띄었다. 아이는 그걸 보고 경찰을 봤다며 좋아했다. 퐁네프 다리를 건넌 후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카페 레 뒤 마고에 갔다. 가는 길은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노천카페나 음식점에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길가에서는 악단이 실시간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영국과는 다른 식문화를 가진 곳이라는 기대감으로 앙트레부터 디저트까지 먹고 싶은 것을 시키니 나중에 영수증을 봤을 때 나와 아내는 15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땐 비용 생각하지 않고 파리에 온 만큼 미식의 나라를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맛을 즐겼다. 카페 레 뒤 마고는 문학가, 철학가들이 자주 찾고 토론하고 즐긴 파리의 명소이다. 그 감동에 벅차 종업원에게 굳이 이 가게에 정말 오고 싶었다고 불필요한 말까지 했다. 디저트를 시킬 때 종업원이 커다란 쟁반에 케이크, 타르트, 마카롱, 도넛, 에클레어, 밀푀유, 각종 베리 등을 잔뜩 가지고 와서 고르라고 했는데 아이는 다 자기에게 주는 건 줄 알고 손을 대려고 해서 제지하느라 약간 진땀이 흘렀다.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고 노트르담 성당을 향해 갔다.

파리의 오후는 바닥에 내딛는 우리의 발소리를 기분 좋게 나게끔 해주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시테 섬 동쪽에 있는 성당으로 랭스, 샤르트르 대성당과 더불어 고딕 양식의 최고봉에 있는 성당이다.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무대가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가톨릭의 자부심이자 파리 문화재의 자부심이기도 한 대성당은 최근 화재로 크게 불 타 보수 중에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그 전이라 온전히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성당 앞에는 걸스카우트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무리가 뭐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단체 동작을 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쳐다봤다. 성당 내부로 들어왔을 때 파리 최고의 관광명소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기도를 하려는 사람들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남겼지만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는 없었다. 아이는 촛불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했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종탑으로 가기 위해 옆으로 나와 줄을 섰다.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을 자동발권기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해서 우린 가장 가까운 시간을 체크하고 기다렸다.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올라가 볼 수 있었다. 탑 위로 올라가서 본 광경은 장관이었다. 여느 유럽 도시들이 대개 그렇지만 높지 않은 건물들이 대부분이고 예전에는 성당이 최고층이자 기준점이었기 때문에 노트르담 대성당 위에서 본 파리 시내는 방사형 도로가 완벽하게 보였다. 에펠탑은 물론이고 저 멀리 몽마르트르 언덕도 보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은 치안이 좋지 않고 아이가 있으면 쉽게 당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가지 않기로 했기에 그렇게 바라만 보았다. 우리 가족은 한 바퀴 돌면서 파리를 한눈에 천천히 담았다. 그리고 노르트담 성당은 탑에 있는 가고일 석상도 매우 유명해 그 모습들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노트르담 성당에서만 꼼꼼히 보느라 2시간 정도 구경을 했다.

나와서는 파리 팡테옹으로 갔다. 팡테옹은 판테온의 프랑스어 발음으로 프랑스의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이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국가 묘지로서 역할을 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건물의 정면은 로마 판테온을 따와 상당히 비슷하고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위에 둥근 돔이 인상적이라 영국의 세인트 폴 대성당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팡테옹의 돔은 전체가 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세인트 폴 대성당은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와 시공까지 모두 완성시켰지만 팡테옹은 설계했던 수플로가 도중 사망하면서 전체적으로 성당에서 묘지로 바뀌며 모습이 크게 변하게 되었다. 지하에는 볼테르, 에미 졸라, 빅토르 위고, 루소, 모네, 퀴리 부부 등 프랑스 위인들이 잠들어 있다. 팡테옹 앞에서 버스를 타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그 근처에 내렸는데 가려던 식당이 7시에 문을 열어 일단 아내가 가고 자 했던 약국에 가서 지인들 선물을 조금 사고 에펠탑 야경을 보러 갔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에펠탑 앞 공원에서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에펠탑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데 아이가 내 핸드폰을 잡고 실수로 놓쳐버려서 핸드폰 액정이 산산조작 났다. 그래도 터치하는데 불편함은 없어서 일단 쓰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수리하기로 했다. 에펠탑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샤요 궁전 쪽으로 가서 야경을 즐겼다. 에펠탑은 알다시피 에펠이 만든 거대한 철탑으로 1889년에 완공되어 1930년까지 미국 크라이슬러 빌딩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 이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 전시할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영국 박람회의 자랑이었던 수정궁을 의식해서 지어졌다. 본래 20년만 두고 철거하려 했고 모습이 너무 흉물스러워서 예술가들에게 항의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너무 높은 건물이라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시민들의 공포가 있었고 예술의 도시인 파리의 명성을 깎아먹는다는 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분리해서 놓고 보면 파리의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살아남아 이제는 파리와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오히려 예술과 미의 도시인 파리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물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석재로 지어진 건축물이 익숙한 상황에서 그 당시 철골로만 이루어진 모습이 이질적이고 흉물스러울 수 있는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모습이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샤요 궁전에 올라 바라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반짝거리는 그 빛이 파리 전역을 바라보듯이 빛나는 데 아이도 다른 건 기억 못 해도 이 에펠탑만은 기억해서 여행 갔을 때 이야기를 꺼내면 에펠탑 이야기를 했다. 파리를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보석 같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노리고 오는 호객꾼들도 있었다. 우리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도 걸고 하면서 아이에게 뭔가 쥐어주려고 해서 사전에 후다닥 우리들은 빠져나갔다. 저녁은 생각해 놓은 레스토랑에 갔는데 이유가 송아지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였다. 그래서 송아지 스테이크와 푸아그라를 주문하려 했는데 송아지 고기는 메뉴 교체로 인해 팔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메뉴를 골랐다. 아내는 못 먹어서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와인을 추천받아 시음도 하고 와인과 함께 오붓한 식사를 즐겼다. 아이는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 먹어본 푸아그라는 묵직한 크림 같으면서 와인과 잘 어울렸다. 점심과 저녁 모두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한 덕분에 식비는 굉장히 많이 나왔지만 입과 마음이 좋은 기억을 담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 숙소까지는 버스를 타고 파리의 밤거리를 구경했다.

카페 레 뒤 마고
노트르담 성당
팡테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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