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빨래하느라 늦게 자고 새벽에 일어나 윙윙 소리가 나는 드라이기로 빨래를 말리고 있을 때 아내와 아이가 일어났다. 내 덕분인지 아닌지 어쨌든 조금은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옷을 입고 다들 뷔페 조식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이곳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먹어 본 호텔 조식 중 최고라고 생각되었다. 일반적으로 나오는 것들 외에 건강한 음식으로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는 음식이라 1끼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적당히 먹고 끝냈다. 그래서 여행 중에 가끔 그 조식 생각이 났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데 전자 키를 넣어도 문이 열리지 않자 당황스러웠다. 아내가 해보기도 하고 나도 해봤는데 안돼서 몇 번 해보는 와중에 아이가 재빨리 복도를 청소하던 호텔 직원분에게 "더 도어 이즈 낫 오프닝!"이라고 소리를 쳤다. 영어 배우기에 불이 붙어서 ABC송을 열심히 불렀는데 아이 스스로도 대견한지 으쓱해 보였다. 나와 아이는 서로 쳐다보며 놀랄 뿐이었다. 짐을 챙기고 다소 젖어있는 옷들은 빨래 봉투에 넣어 캐리어에 담았다.
이곳을 오래 보고 싶은데 하루만, 엄밀히 따지면 한나절만 보고 가는 거라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더블린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님에게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봤다. 물론 통역은 우리 가족 공식 통역사인 아내가 중간에서 해주었다. 아내는 더블린 인구가 50만인데 250만이라고 말하는 등 구멍이 조금 있었지만 기사님에게 게일어, 관광 명소 이야기, 진정한 아일랜드를 느끼고 싶으면 시골 여행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비슷하게 이웃나라에게 핍박을 받은 역사가 있어서 그 정서에 대한 이해와 나라에 정이 갔다.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오후 2시 10분에 파리 보베 공항에 도착했다. 파리 공항이어도 파리 시내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서 시내로 들어갔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 나와 아내는 뭔가 뿌듯하고 기대감에 찼으며 또한 소매치기에 대한 불안감도 샘솟았다. 이때는 파리 시위가 격해지고 있을 때라 어머니는 불안해하셨기 때문에 수시로 괜찮다는 연락을 드렸다. 우리도 걱정은 되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안전하게 즐기고 느끼려고 노력해야겠다.
파리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도보로 다닐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위치여서 아주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예전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다르게 주인이 나와있지 않아서 우리가 SNS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1층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좁은 계단이 나왔다.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계단은 사람들의 오고 간 발걸음에 많이 닳아 있어서 그 흔적이 세월을 보여주었다. 숙소인 3층까지 올라서 문을 여는데 정작 꿈쩍도 했다. 열쇠를 넣고 이리저리 돌려봐도 꿈쩍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 열쇠에 마음이 답답했다. 아내가 해봐도 안되고 보다 못한 아이도 자신이 해보겠다며 해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10분을 넘게 허비해서 안 되겠다 싶어 숙소 주인에게 SNS로 물어보았다. 주인은 친절하게 이렇게 해보라 저렇게 해보라 알려줬는데 안되었다. 숙소 후기를 읽어봤는데 간혹 열쇠가 잘 안된다라는 글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걸 우리가 당하니 실감이 났다. 결국 도저히 안돼서 주인 남편분이 오셔서 열어주기로 했다. 우린 거리로 나가 우두커니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있는 카페, 레스토랑의 불빛들과 건물들이 파리에 왔다는 걸 알려줬지만 아직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결과 주인 남편분이 오셔서 열어 주었다. 참 쉽게 열려서 매우 허탈하고 그분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분도 속으로 이건 뭐지라고 생각했을 거란 생각에 낯이 좀 뜨겁기도 했다. 오신 김에 그분에 열쇠 잘 여는 법도 배우고, 파리 시위 상황에 대한 것도 물어봤다. 시위는 현재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서울처럼 안전할 거라고 염려 말라고 덧붙여주었다.
문이 안 열려 기다리는 중
짐을 풀고 저녁 6시 30분쯤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는데 너무 넓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 점심도 굶은 탓에 제대로 된 관람을 하기 힘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갔는데 아내는 소고기 타르타르를 시켰지만 식감 때문에 잘 먹지 못해서 먹다가 남기고, 에스카르고, 소고기 스테이크 등 다른 음식들은 늦게 나와서 초조해졌다.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음식을 빨리 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고 나오자마자 서둘러 먹고는 8시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다. 루브르 박물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였을 것이다. 거기에 등장한 커다랗고 아름다운 궁전과 붉은 꽃들이 생각난다. 꼭 봐야 한다는 박물관이라서 어릴 때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야간 조명으로 보이는 박물관 외관은 그 크기에 압도당하기 충분했다. 영국박물관보다 더 커 보이는 외관이었다. 입장하는 곳에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된 거대 유리 피라미드가 있었다. 이 피라미드는 신구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이날은 늦게까지 개관을 해서 시간이 조금 있을 줄 알았는데 보고 싶은 작품을 찾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이때 나와 아내는 열쇠 사건부터 해서 쌓인 피로에 다소 예민해져 있을 때라 특단의 조치로 아내는 아이와 함께 보고, 나는 혼자서 관람을 하기로 했다. 아이도 시간이 없는 상황을 인지했는지 아내를 잘 따라다니며 모나리자, 날개 달린 니케, 메두사 그림 등을 보았다고 아내가 말해주었다. 나도 후다닥 관람을 해가면서 사진을 찍고 폐장 시간이 다 되어 로비에서 만났다.
마트에서 장보기
루브르 궁전은 프랑스 왕실이 후원하는 예술의 중심지로 프랑스혁명 이후 미술관으로 개장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던 중에 나폴레옹이 집권하고 황제에 올라 프랑스 제국이 되자 루브르 박물관에 자신이 수집, 약탈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보내온 선물을 전시, 보관하면서 확대가 되었다. 박물관은 3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쉴리 관, 드농 관, 리슐리외 관이다. 1개의 관도 크고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서 다니는데 너무 복잡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영국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대만의 고궁박물관 모두 가보았는데 여기가 나에게는 가장 다니기 어려운 관람 루트였다. 그래서 한국어 가이드 지도를 보고 다녀도 어떻게 다녀야 하는 건지 길을 잘못 든 경우도 있었다. 이날은 가뜩이나 시간도 별로 없는데 서둘러 유명한 작품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과 길까지 찾기가 복잡해서 내 마음이 더 복잡해진 듯했다. 우리는 파리 패스가 있어서 루브르를 오늘 방문해도 다음날 방문하는 게 문제 되지 않았기에 다시 와도 된다는 생각으로 관람을 하니 그나마 마음 편히 볼 수 있었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그렇겠지만 대만 고궁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자국 문화재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이야 역사가 짧은 나라이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거대한 박물관은 약소국이나 식민지 약탈로 이루어진 박물관인데 이러한 보물들을 선진국에서 안전하게 보관하니 오히려 낫다고 봐야 하는 건지 그래도 그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봐야 하는 건지 논란이 있지만 당연히 그 나라 유물은 그 나라에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보관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서구 우월주의의 시각이라고 본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숙소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다. 루브르 박물관과 숙소는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고 오는 게 편했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와 가끔 저녁도 해먹을 생각이어서 물과 음식들을 잔뜩 사서 양 손 무겁게 들고 왔다. 그리고 다들 씻고 어수선했던 파리의 첫날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