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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an 26. 2024

바흐가 살고, 루터가 알렸다

2024년 1월 8일(월)(5일째)-아이제나흐

새벽 3시 반쯤에 깨어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어제 박물관에서 들었던 Nena의 '99 Luftballons'가 계속 떠올라 인터넷 동영상으로 돌려봤다. 음색이나 당시 복장,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만 특히나 노래 가사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에 노래가 주는 상징성이 컸다. 내 옆 침대에서 자는 아이가 자주 뒤척여 이불을 덮어주고 자세도 바르게 해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어보니 잘 때 추웠다고 했다.


아내가 철도 파업이 이번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는데 우리가 라이프치히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날은 화요일이라서 다행이었지만, 금요일이 베를린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4시간 기차를 타야 하는 날이라 운행을 안 하니 서둘러 버스표를 알아보았다. 철도 파업으로 인해 60유로가 넘는 기차푯값 중에서 10유로를 수수료로 떼고 돌려주었다. 왜 수수료가 있는지 이해 가질 않았는데 어쨌든 기차는 못 타게 되었고, 버스로 국경을 넘어가게 생겼다. 돌려준 것도 환불이 아니라 바우처여서 골치 아프게 했다. 그리스에서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환불 불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버스는 마침 오전 9시 출발하는 표가 있어서 그 시간에 넘어가는 게 최선일 듯해서 예매를 했다. 가격은 기차보다 더 비쌌고, 소요 시간은 비슷했다. 어쨌든 자유 여행의 변수였다.


아이제나흐로 출발


조식을 먹지 않고 나와서 역으로 간 다음 카페에서 프레첼, 치즈 프레첼, 카스텔라와 카푸치노, 라테 마키아토를 주문해서 먹고 아이제나흐로 가는 기차를 탔다. 플랫폼에서 기다리는데 아침 날씨가 영하 7도에다가 눈바람이 날려 춥게만 느껴졌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기차 안은 한적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아이제나흐(Eisenach)에 도착했다. 튀링겐 주에 위치한 인구 4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인 아이제나흐는 일반적인 독일 여행에서는 찾지 않는 곳이지만 위대한 클래식 음악가 바흐의 고향이기 때문에 독일에 온 만큼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피난 생활을 할 때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던 바르트부르크 성이 있어서 나름 독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시였다. 


아이제나흐 도착
눈이 날리는 아담한 도시


아담한 역 바깥으로 나오니 눈이 여전히 날리고 있었다. 작은  도시라서 우리가 보고 싶은 곳은 걸어 다닐 수 있었는데 추운 게 문제였다. 먼저 중세 모습을 간직한 니콜라이 문(Nikolaitor)을 지나서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로 갔는데 문을 닫아서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1170년쯤 니콜라이 교회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니콜라이 문은 도시 성벽을 이루던 다섯 개의 문 중에서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있는 문이었다. 중세 시대 프랑크푸르트에서 폴란드 크라카우까지 이어지는 무역로의 관문이어서 매우 중요했다고 전해졌다. 어쨌든 니콜라이 교회가 문이 닫혀있어서 잠시 몸을 녹이려는 우리 계획은 실패했다. 


니콜라이 교회와 붙어있는 니콜라이 문


마르틴 루터 동상을 지나서 다음 목적지인 게오르그 교회로 향했다. 정감 있는 거리를 지나서 나오니 넓은 시청 광장이 나왔다. 그리고 게오르그 교회가 딱 하니 보였다. 게오르그 교회(Georgenkirche)는 독일의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본래 천주교 성당이었지만 종교 개혁 이후 루터파 개신교 교회가 되었다. 바흐 역시 가족들과 이 교회에 출석했고, 1685년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문에 바흐가 이곳으로 세례 받기 위해 들어갔다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현재 건물은 1515년에 지어졌지만 문서에는 1196년에도 등장할 만큼 역사가 오래된 교회였다. 그런데 여기도 문이 닫혀 있어서 교회 예배당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게오르그 교회에서 또 만난 바흐
바흐가 세례를 받았다는 표지판


교회를 나와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독일의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마르틴 루터의 집이 나왔다. 루터 하우스(Lutherhaus)는 학창 시절 배우던 역사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가톨릭 신부 출신이자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태어난 곳은 아니고 어린 시절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어진 지 500년이 넘었으며 아이제나흐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기에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다. 루터는 우리에게 너무 유명한 독일의 인물로 1521년 교황의 면벌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통해 종교 개혁에 앞장섰으며 이는 개신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게오르그 교회 근처에 있는 루터 하우스


루터 하우스를 지나서 소박한 도심 거리를 걸으니 갑자기 나타난 제목 그대로 좁은 집(Schmales Haus von Eisenach)은 굉장히 좁은 목조 주택으로 14세기에 지어졌으며, 너비가 2.05m에 불과해 독일에서 가장 좁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상층에는 상점이 있고, 2층에는 주거 공간이 있다. 독일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짙은 갈색의 목재로 마감되어 있다. 주택의 앞면에는 창문과 문으로 둘러싸인 작은 발코니가 있다. 18세기에 한 번 재건되었으며, 현재는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다. 내가 독일에서 가장 좁은 집이라고 아내와 아이에게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눈바람이 날리는 와중에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바흐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오늘은 영업하지 않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걸 알고 보니 월요일에 영업하지 않는 곳이 많이 보였다. 일단 먼저 바흐 하우스부터 가기로 해서 맞은편에 있는 노란색의 바흐 하우스와 옆에 붙어 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독일판 미니멀리즘 주택


바흐 하우스(Bachhaus Eisenach)는 바흐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으로 음악가 집안인 바흐 집안의 악기와 악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바흐의 기념관 중 가장 먼저 세워진 곳으로 바흐 기념 사업회에서 건물을 사들여 1907년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 역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었지만 복원 작업을 거쳐 1947년 재개관했다. 우리가 마침 12시 전에 도착해서 12시와 16시에 하루 두 번 열리는 작은 연주회를 참석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쳄발로, 하프시코드와 작은 파이프 오르간 등을 설명해 주고 직접 연주해 주는데 그때 악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 그 연주를 듣는 게 너무나 좋았다. 날이 추워서인지 우리와 독일 가족 두 팀만 있어서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연주가가 예전에 BBC에서 제작했고 EBS에서 방영했던 음악기행 클래식에 나왔던 연주가로서 세월이 흘러 음악에도 깊이가 더 해진 것 같았다. 연주를 듣고 바흐 하우스를 천천히 구경하고 연결된 기념관으로 넘어가서는 이어폰으로 음악 감상을 했다. 어제에 이어 바흐가 생활했던 공간 속에서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리다니 감격스러웠다. 특히 라이프니치의 바흐 박물관보다 여기는 직접 그 당시 생활 모습이 많이 남겨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바흐 하우스에 온 기쁨
바흐 하우스 내부
EBS 음악기행 클래식에 출연했던 바로크 음악 연주가와 함께


바흐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라 기념관 안내 직원에게 근처 식당 중 맛있는 곳을 추천해 달래서 한 곳을 추천받아 갔다. 그곳은 독일 정통 요리를 파는 식당으로 내부는 꼭 스머프에 나오는 아늑한 느낌이었다. 소시지와 돼지 목살 스테이크, 연어 감자전을 주문했는데 감자와 양배추 절임까지 엄청 푸짐하게 나와서 다 먹으니 배가 상당히 불렀다. 나와 아이는 오렌지 환타, 아내는 라들러를 마셨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오니 바깥의 칼바람도 그리 춥지 않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트래킹 하는 일정이었다. 산 위에 성까지 걸어서 올라가는데 시내에서 40분 정도가 걸렸다. 꼭 우리나라 도시에 하나씩 있는 도심 야산 산책로 같은 느낌이었다. 올라가는 건 일이 아니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두 뺨은 울긋불긋해지고 얼얼했다. 아이는 힘든 내색하지 않고 조잘거리며 잘 올라왔다.


맛과 양을 다 잡은 식당


바르트부르크(Wartburg)성은 'Burg' 자체가 성이란 뜻이어서 조금 이상한 번역이지만, 우리도 불국사를 번역할 때 편의상 'Bulguksa Temple'로도 번역을 하기 때문에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닌 듯했다. 1067년에 축성되어 여러 중세 양식이 혼합된 채 이어져 오고 있는 성이며 옛이야기로는 루트비히 데어 슈프링어 백작이 성을 짓기 좋은 산이라 생각되어 자기 영토에서 흙을 가져와 뿌린 다음 성을 지었다고 했다. 루트비히 4세의 부인이었던 성녀 튀링겐의 엘리자베트의 삶을 표현한 모자이크도 있었으며, 1521년 교황에게 파문당한 마르틴 루터가 보름스 회의 이후 피난 생활 당시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근세 독일어의 기초를 쌓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음유 시인(Minnesänger) 사이에 유명한 경연 대회가 열렸던 음유 시인들의 홀이 있어서 이 대회는 바그너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곳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등장하는 입장 행진곡의 배경이기도 했다. 


아름다웠던 바르트부르크성


성에서 바라본 아이제나흐 시가지 풍경이 목가적이며 소박하게 느껴져 정감을 주었다.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그저 옛날 역사를 짚어보려고 가는 거지만 이 길을 올랐을 루터는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라 상상해 봤다. 성은 그리 크지 않아서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시 시내로 한참 내려와서 카페로 들어갔다. 길 찾으려고 손으로 핸드폰을 계속 하니 손가락이 굳어가는 듯했다. 나와 아내는 글뤼바인을 마시면서 몸을 녹였고, 아이는 딸기 파르페로 젊음을 과시했다. 잠깐 쉬고 기차 시간이 저녁 6시라서 5시쯤 나와서 역으로 갔다.


루터가 신약성서를 번역한 곳


역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소시지와 빵, 음료수를 사서 기차를 탔다. 역이 작아서 서점, 편의점, 카페, 피자가게 딱 이것만 있었다.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였는데 우리는 한 시간을 타서 라이프치히에서 내리면 됐다. 테이블 좌석에 앉아 간단한 저녁 요기를 하고 오늘 일정을 끝냈다. 어제와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바흐를 느끼기 위한 핵심 구간이었는데 만족스럽게 끝난 듯했다. 독일은 바흐, 괴테 그리고 루터였다. 내일 아침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으로 독일의 마지막 도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우리가 찾고자 한 주제라고 하면 평화이며 역설적이게도 인물로 꼽자면 히틀러로서 역사에 대한 반면교사가 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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