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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an 27. 2024

Brandenburg Concerto

2024년 1월 11일(목)(8일째)-포츠담&브란덴부르크

찌뿌둥하게 생긴 풍경을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딸기잼 바른 식빵, 삶은 달걀과 소시지, 우유를 끓어서 넣은 커피와 코코아로 하고 나서 포츠담 일정을 살펴보았다. 상수시 궁전 말고 임시 휴업하는 곳이 많아서 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어서 가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포츠담 가는 기차가 있어서 가기로 했다. 철도 파업으로 인해 내일 가는 체코 프라하행 열차가 취소되었는데 포츠담 가는 건 철도청이랑 상관없는 열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광역 전철인 듯싶었다. 포츠담 직행 버스가 없어서 택시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잘 되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포츠담 가는 티켓을 끊고 무사히 20분을 달려 포츠담에 도착했다.


베를린 포즈


베를린은 눈발이 살짝 날리고 있었는데 포츠담 역시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서리가 내려앉은 앙상한 나무들이 운치를 자아냈다. 포츠담(Potsdam)은 브란덴부르크 주의 주도이지만 인구는 약 18만 명으로 소도시로서 베를린 남서쪽으로 25km 떨어진 근교이기에 그리 멀지 않고 상수시 궁전 때문에 방문하고 싶었다. 우리에겐 1945년 소련, 영국, 미국 등이 참여해서 전후 질서를 논의한 포츠담 회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프로이센 왕실 호엔촐레른 가문의 피서지이기도 해서 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의 폭격 피해를 많이 받지 않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편이었다.                                                               

겨울 왕국 같은 설경


역에서 나와 상수시 궁전으로 가기 위해 도심을 걷는데 하얗게 내린 서리로 인해 다른 세상이 온 듯했다. 멀리 보이는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잡힐 듯 말듯하다가 가까이 보이니 도시 규모에 맞지 않게 정말 거대해 보였다. 성 니콜라스 교회(St. Nikolaikirche)는 현재 루터 교회로서 성 니콜라스에게 헌정되었다. 1837년에 완공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공습과 소련의 포격으로 인해 상당 부분 파괴되었고, 재건되어 1981년 다시 복구되었다. 교회를 거쳐서 조금 더 걸으니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 Potsdam)이 나왔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 크게 밀리지만, 브란덴부르크주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지금은 정통성을 더 가지는 것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루이제 광장으로 들어갔다. 루이제 광장(Luisenplatz)은 1805년에 루이제 왕비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루이제 왕비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 빌헬름 3세의 왕비로, 프로이센의 국민 영웅으로 여겨졌다. 중심에는 루이제 왕비의 동상이 있다. 동상은 1851년에 베를린의 조각가 에두아르드 폰 렌틀이 제작했다. 광장의 주변에는 다양한 건물이 있는데 대표적인 건물로는 프로이센의 국립극장, 루이제 왕비 기념관, 프로이센의 궁전 등이 있다. 브란덴부르크문은 파리 에투알 개선문을 닮았지만 규모는 훨씬 아담했다.


아련히 보이는 성 니콜라스 교회
브란덴부르크주의 브란덴부르크문


궁전 구역 안으로 들어가도 꽤 걸어가야 해서 오들오들 떨면서 드넓은 정원을 지나 드디어 내가 어린 시절 백과사전에서 봤던 상수시 궁전이 눈에 들어왔다.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은 프로이센 홀엔촐레른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1747년에 세워졌다. 당시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우리에게 절대왕정을 세웠던 왕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 문화에 심취해 볼테르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상수시 궁전은 프랑스어로 '근심 없는 궁전'이라는 뜻이며 파리 근교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브로 해서 건설되었다. 내부는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일과 프로이센이 자랑하는 궁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베르사유 궁전과 더불어 유럽의 궁전으로 소개를 본 적이 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궁전만큼 유명한 것이 포도나무 테라스라는 정원인데 겨울이라 그런지 제대로 본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정수


위엄 있는 바로크 양식을 넘어 로코코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듯 섬세하고 세련되게 묘사된 모든 것들이 감탄을 자아냈으며, 특히 마지막 과일, 꽃, 동물로 묘사된 침실에서는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들었다. 궁전 자체는 크지 않아도 그 안에 모든 기교가 다 들어가 있는 듯했다. 상수시 궁전 외에 다른 곳들은 공사 중이라 휴업하는 곳이 많아서 아쉽긴 했지만, 포츠담을 온 이유의 전부였던 상수시 궁전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예전 파리의 루브르를 봤을 때의 감동처럼 상수시를 봤을 때의 감동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이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나에게 오히려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궁전을 나와서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모든 기교가 응축된 궁전 내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베드로와 바울 교회까지 뻗어있는 브란덴부르크 거리를 걸어갔다. 복잡하지 않고 정감 있는 거리는 걷는 즐거움이 있었고 아내가 좋아한 거리였다. 그 끝에 위치한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St. Peter und Paul-Kirche)는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으로 1662년부터 1688년 사이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명에 따라 지어졌다. 첨탑의 높이는 106m로, 포츠담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다. 평소 같았으면 안에 들어가서 구경했을 테지만 성당을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하는 우리로서는 겉만 보고 넘어갔다.


브란덴부르크 거리 끝에 위치한 교회


바로 근처 나우너문(Nauener Tor)은 더치 쿼터(Dutch Quarter)에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만남의 장소로 현재 알려져 있다. 포츠담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젊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에 띄는 더치 쿼터(Dutch Quarter)는 포츠담의 동네로 네덜란드 벽돌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명령에 따라 1733년부터 1740년에 조성되었다. 거리를 보았을 때 붉은 벽돌 느낌이 미국 보스턴을 연상시키고 건물 양식은 네덜란드 스타일이었다. 여기에 있는 네덜란드 팬케이크 가게에 가서 잠시 몸을 녹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포츠담 중앙역으로 간 다음에 갑작스럽게 정해진 브란덴부르크로 우리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차가 다니는 나우너문
미국 보스턴 느낌의 더치 쿼터


원래 오늘 계획은 포츠담만 보는 것이었으나, 상수시 궁전 외에 다른 궁전 시설들은 보수 공사가 많아서 입장이 어려웠기에 시간이 남을 듯하여 다른 도시를 더 방문해도 될 듯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근처에 있는 브란덴부르크였다. 정식 이름은 브란덴부르크 안 데어 하펠(Brandenburg an der Havel)로서 수도권이라 할 수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에 있으며 하펠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도시였다. 이곳은 슬라브족 거주지였다가 게르만족이 와서 살게 된 곳으로써 12세기에 설립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수도였, 15세기에는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 하지만 도시는 1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에다가 외국에 알려진 유명한 장소도 딱히 없어서 전철에서 내린 외국인은 우리뿐인 듯했다.


포츠담에서 브란덴부르크


음악적으로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유명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바흐가 작곡한 6개의 협주곡으로, 1718년부터 1721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당시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변경백이었던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에게 헌정된 이 음악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협주곡 형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바흐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기법을  활용했다. 각 협주곡은 독특한 악기 편성과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위법과 화성법의 뛰어난 사용으로 인해 음악적으로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포츠담보다 더 진눈깨비가 내리는 브란덴부르크의 첫 시작은 공용 화장실이었다. 나와 아내는 화장실이 급했는데 유럽은 무료 화장실이 없어서 아이가 갖고 있는 동전으로 해결했다. 아이의 준비성 덕분에 지옥을 경험하지 않고 지옥 문턱에서 돌아왔다. 거리에는 사람들도 얼마 없어서 한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하는 곳마다 문이 잠겨서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특히 브란덴부르크의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St. Peter und Paul-Kirche)은 이곳에서 가장 큰 중세 교회로서 1165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벽돌 고딕양식이 멋진 성당인데 힘겹게 거기까지 갔지만,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었다. 날은 춥고 눈발이 날리는데 느껴지는 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뿐이라 어디라도 들어가야 이 도시를 기억할 듯했다. 그래서 아직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우리는 맛집 식당을 찾아서 식사하러 들어갔다.


아담한 브란덴부르크역
정말 아담한 브란덴부르크 시내
많이 보이던 앙증맞은 개 동상
우리에게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몸과 마음까지 녹여줄 식당에서 독일에서 유래한 햄버거와 슈니첼, 로컬 맥주와 독일 콜라인 프리츠 콜라(Fritz-Kola)까지 주문해서 배 부른 식사를 즐겼다. 오늘이 독일의 마지막 밤이어서 아내는 맥주를 파울라너 헤레스와 둥켈레스 두 잔이나 주문했다. 아이가 주문한 햄버거는 두툼하고 양이 엄청나서 먹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프랑스 사람이 느끼기에 독일 요리는 감자 요리라더니 이 식당도 감자가 푸짐하게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밤공기로 바뀐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다시 브란덴부르크역으로 왔다. 8.50유로 티켓 3장을 사서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50여 분을 가니 마지막 밤을 보낼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왔다.


브란덴부르크 맛집에서 식사
안녕, 브란덴부르크


건축 디자인이 멋졌던 베를린 중앙역을 나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한동안 안 왔는지 많은 사람이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41번 버스를 타고 우리 숙소가 있는 빌리 브란트 하우스 정류장에서 내려 마트에 잠깐 들렀다. 물과 초콜릿을 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짐 정리도 하고, 마지막 만찬으로 그제 마트에서 산 일본 라면과 소시지로 부대찌개 라을 해 먹었다. 한국 라면을 팔면 좋겠지만 아예 팔 질 않아서 아쉬운 대로 양배추 절임을 잔뜩 넣고 만들었더니 김치 라면과 비슷한 맛이 났다. 다들 땀 흘리며 싹싹 마무리했다. 이렇게 바흐, 괴테, 루터의 나라를 떠나서 내일 얀 후스의 나라로 가기 위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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