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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an 29. 2024

예술의 향연

2024년 1월 18일(목)(15일째)-빈

빈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날이어서 여행 온 이후 처음으로 푹 자고 여유롭게 일어났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채도가 높아진 거리로 나왔다. 밤 사이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리는 더욱 짙은 색감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주된 일정을 소화할 미술사 박물관을 향해서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현장학습 나왔는지 단체로 다니는 빈 아이들이 눈에 보여서 정겨웠다. 맨 앞에 선생님이 가고 왁자지껄한 아이들이 뒤따라 가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똑 닮았다. 가는 길에 보인 모차르트 벽화가 정겨웠다. 숙소에서부터 한 30분 걸어서 반나절 일정을 꽉 채워줄 미술사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채도 높은 빈의 아침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은 1891년 개관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미술사 박물관으로 이곳이 음악의 수도뿐만 아니라 미술의 수도까지 넘본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16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왕조와 17세기 중반 레오폴트 빌헬름이 수집한 예술품을 기반으로 해서 수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이 있으며 유명한 화가로는 루벤스, 뒤러, 벨라스케스, 틴토레토, 푸생, 카라바조, 렘브란트, 반 다이크, 안토니오 다 코레조, 주세페 아르침볼 및 내가 좋아하는 브뤼헐의 대표작 '바벨 탑', '농민의 춤', '눈 속의 사냥꾼', '아이들의 놀이',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등이 있었다.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은 네덜란드 화가로 서민과 농민들의 그림을 많이 그려 농민 브뤼헐이라는 별명이 있다.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작품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려 유명한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에서 영향을 받아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신화 작품에 걸맞았다. 아이는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과일 및 동식물로 그린 환상화를 좋아했다.


빈 미술사 박물관 도착


모는 굉장히 크다고 들어서 루브르나 메트로폴리탄 급인가 싶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아서 보는데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작품 인지도나 규모 면에서 루브르, 메트로폴리탄, 내셔널 갤러리, 프라도 미술관 다음인 것 같았다. 그래도 건물 자체는 다른 박물관보다 아름다워서 궁전 같았고 중앙에 있는 카페 자체도 우아하고 멋졌으며, 건물 안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박물관을 하려고 이런 멋진 건물을 지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감수성에 감동했다. 중앙 로비에는 클림트가 그린 벽화가 있어서 흔한 벽면조차도 예술품인 곳이었다. 비수기라서 그랬겠지만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붐비지 않고 굉장히 여유롭게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었다. 가장 붐빈 것이 그림 그리러 온 할머니들 모임이었다. 프라도에서 감동을 주었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등장한 마르가리타 공주의 성장하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어서 감명 깊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역이 이렇게 넓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왕가는 알다시피 혼인 정책으로 영토가 넓어졌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자 근친혼을 한 나머지 각종 합병증이 많았다. 마르가리타 공주 역시 15살이 된 1666년에 외숙부 레오폴트 1세와 결혼했고 4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2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자녀들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 그림들은 마르가리타 공주의 성장을 사진처럼 후에 남편이 되는 레오폴트 1세에게 보내지기 위해 그린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가 보낸 선물들이 그림 속에 남겨있다.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병이 생기고, 요절하는 왕족들이 참 많았는데, 화려해 보여도 속은 허물로 가득 찬 욕망이라니 참 씁쓸했다. 


중앙 로비 역시 예술품
브뤼헐의 작품들
작품 감상하는 모자
스페인의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작품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작품
인상 깊었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왕궁보다 더 화려한 박물관 내부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시시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정식 이름이 엘리자베트 아말리에 오이게니 폰 비텔스바흐(Elisabeth Amalie Eugenie von Wittelsbach)인 시시(Sisi)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로서 1837년 12월 24일에 바이에른에서의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바이에른의 공주 루도비카의 차녀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으로 바이에른 왕가에 속했지만 엘리자베트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놀며 자랐다. 1853년 엘리자베트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했는데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유일한 자녀인 슈테판 황태자와 엘리자베트 황태녀를 낳았다. 1889년, 엘리자베트의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연인 마리 베체라와 함께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1898년 9월 10일, 60세의 엘리자베트는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에서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에게 암살되었다. 


당대 최고의 미녀로 불릴 만큼 뛰어난 외모를 지녔으며, 자유분방한 성격과 낭만주의적 감성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그녀의 초상화를 보고 싶어서 안내 가이드에게 물어봤는데 그건 시시 박물관에만 있다고 해서 매우 아쉬웠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있지도 않은 시시 굿즈를 잔뜩 팔고 있어서 상술의 힘을 느꼈다. 아이만 이집트 전시실에서 본 하마 유물 모형을 하나 샀다. 그 하마 모형은 빈 미술사 박물관을 가기 전에 인터넷 동영상으로 아이가 공부했는데 당시 이집트에서는 하마가 농작물을 없애는 위험한 동물이라 파라오의 일 중에서 하마를 막는 것이 있어서 그와 관련해 만든 유물 모형이었다.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시시 굿즈


빈에는 클래식 음악가 하이든과 슈베르트 생가가 있어서 보러 갈까 생각했지만, 저녁 식사를 위해 우리는 들리지 않고 카페에 가서 하루를 일찍 마무리하고자 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이는 106곡의 교향곡을 만든 인물이자  제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완성시킨 인물로서 클래식 음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음악 외에 특이한 일화가 있는데 사망한 이후 그의 무덤이 파헤쳐져 하이든의 머리가 도굴된 사건이었다. 그의 천재성을 알고 싶어 뇌를 연구하고 싶던 어떤 귀족이 그의 무덤을 파헤쳐 가져간 것이었다. 이리저리 옮겨가서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려 145년이 지난 1954년 6월에 하이든의 머리는 유럽을 떠돌다가 오스트리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특히 가곡의 왕으로 유명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으며 11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1812년에는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일생 동안 약 600곡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의 가곡은 아름다운 선율과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가곡으로는 '마왕', '들장미', '송어', '겨울 나그네' 등이 있는데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해서 안타까운 작곡가였다.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Maria-Theresien-Platz)은 1888년에 완공되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광장은 링슈트라세(Ringstraße)와 옛 황실 마구간에 위치한 현대 미술 박물관을 연결하는데, 광장의 중앙에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청동 기마상이 있었다.


미술사와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 있는 광장


거리로 나와서 트램이 지나가는 도로 옆을 쭉 걷는데 먼저 보이는 거대한 오스트리아 의회의사당(Parlament Österreich)은 1874년부터 1883년에 그리스 부흥 양식으로 지어졌다. 링슈트라세(Ringstraße)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의 중앙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승리의 여신 니케의 동상이 있다. 부르크 극장을 마주 보고 있는 라트하우스 광장(Rathausplatz)은 1873년에 완공되었으며, 빈의 대표적인 광장 중 하나였다. 중앙에는 빈 시청(Rathaus)이 있으며, 높이 98m, 넓이 100m의 거대한 규모인 이 시청은 1872년부터 1883년 사이에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스링크장이 설치되고 뭔가 공사 중인지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카페가는 길에 보인 의회의사당과 라트하우스광장


우리의 빈에서 마지막 외부 행사는 카페 란트만 방문이었다. 카페 란트만(Café Landtmann)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1873년에 설립된 유명한 카페였다. 입장하자마자 외투를 맡기는 것이 원칙이어서 외투 보관하는 곳에 가서 종업원이 외투를 받아주었다. 이런 카페는 처음이어서 왠지 슈트를 입고 왔어야 했나 싶었다. 카페 내부는 화려한 금빛 장식과 웅장한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은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도 유명했는데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힐러리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 등 세계적인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지개 횡단보도


안쪽으로 안내된 우리는 오스트리아에서 즐길 수 있는 멜란지(Wiener Melange), 하펠커피(Haferlkaffee), 모차르트 쇼콜라테(Mozart Schokolade), 구겔호프(Guglhupf) 주문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겼다. 전에 갔던 카페 자허와 카페 첸트랄과는 다르게 한국인이 없어서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진 카페 명소 같았다. 격식 있게 즐기는 현지인 카페로는 여기가 더 느낌 있었다.


카페 란트만 내부
오스트리아 커피 감성


멜란지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커피 음료로, 에스프레소와 우유, 우유 거품을 섞어 만든 커피였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과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으로 그 역사는 1830년대까지 올라가는데, 그 당시 빈은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곳이었. 멜란지는 이러한 문화적 교류의 산물로, 에스프레소와 우유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피였다. 하펠커피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커피로써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를 부어 만든 커피인데, 일반적으로 하펠커피는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1:1 비율로 사용하지만, 취향에 따라 우유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하펠커피는 19세기 중반에 빈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구겔호프(Gugelhupf)는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헝가리 등 중부 유럽에서 즐겨 먹는 케이크로써 둥근 모양의 케이크틀에 구워내며, 겉면에는 슈가파우더나 코코아가루를 뿌려다. 그 기원은 17세기 스위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스위스에서는 빵을 발효시켜 구운 케이크가 인기 있었다. 그게 원조로 18세기말 버터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버터의 풍미가 더해진 구겔호프는 더욱 인기를 얻었고,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이 카페에서 자랑하는 디저트여서 우리도 맛보았다.


빈의 밤거리


카페에서 해 질 때까지 있다가 어둑해진 거리를 따라서 빈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아내와 아이가 원하는 갈릭쉬림프를 하기 위해 냉동 새우 2팩과 마늘은 샀다. 숙소에 와서 이번 여행 마지막 요리인 소고기 등심과 안심 스테이크, 갈릭쉬림프, 양송이버섯과 돼지고기 구이를 했다. 레드 와인과 사과 사이다를 곁들이며 만찬을 즐겼다. 아이는 여행이 끝나가는 것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했고 그런 표현을 많이 했다. 식사 후에는 디저트로 독일에서 사 와서 먹지 않았던 애플망고, 아이스크림, 마너 웨하스, 자허 토르테로 아쉬움을 달랬다.

                     

오스트리아 마지막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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