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고, 짐을 싸는 시간은 언제나 마음이 먼저 여행길로 떠나는 시간이었다. 익숙한 일상의 리듬을 잠시 접어두고, 아직 밟아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순간, 설렘은 조용히 가슴속에서 몸집을 키웠다. 나와 아내,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이의 여행 크루는 어느덧 함께 밟은 나라는 서른 곳을 훌쩍 넘겼다. 아이를 포대기에 싸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끈끈한 여행 동반자가 되어 세계 곳곳을 걸어 다녔다. 여행은 우리에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었고, 세상을 배우는 가장 따뜻한 교실이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꽤나 거창했다. 미국 남부에서 출발해 카리브해의 나라들, 쿠바와 자메이카를 거쳐 멕시코로 향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었다. 지도 위에서는 그럴듯했고, 상상 속에서는 완벽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계획을 조금씩 수정하게 만들었다. 쿠바는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로 인해 이후 비자 발급에 부담이 될 수 있었고, 자메이카는 인프라에 비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물가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우리는 크루즈 여행을 선택했다. 바다 위에서 카리브해의 섬들을 차례로 만나는 방식은 가족 여행으로서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집안 사정으로 크루즈 여행은 결국 포기해야 했고, 일정은 다소 축소되었다. 그렇게 남은 것은 보다 단순해진, 그러나 오히려 선명해진 여정이었다. 미국 남부로 가서 텍사스의 댈러스와 포트워스, 오스틴을 거쳐 플로리다의 올랜도와 마이애미로 내려간 뒤,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여행 루트였다. 미국은 이번이 세 번째로서 코로나19 직전, 서부와 동부를 횡단했고, 팬데믹 이후에는 하와이에서 태평양의 숨결을 만났다. 1년 전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대자연과 사람들, 느린 시간의 가치를 깊이 새겼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았기에, 이번 미국 여행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미국 남부만의 고유한 결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미국 남부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복합적인 얼굴을 지닌 지역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역사와 기억, 상처와 화해가 뒤엉킨 공간으로서, 남부의 역사는 원주민의 땅에서 시작되었다. 체로키, 촉토, 크리크와 같은 원주민 부족들은 이 땅에서 수백 년 동안 자신들만의 문화와 질서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러나 유럽인의 도착은 그 균형을 무너뜨렸다.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이 차례로 남부 지역에 발을 디뎠고, 식민지 경쟁은 곧 토지 수탈과 원주민 강제 이주로 이어졌다.
18세기와 19세기, 미국 남부는 농업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면화와 담배, 사탕수수 농장은 막대한 부를 만들어냈지만, 그 부의 바탕에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피와 노동이 있었다. 남부의 플랜테이션 문화는 화려한 저택과 느릿한 삶의 이미지를 남겼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이 철저히 무시되던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남북전쟁은 이 모순이 폭발한 결과였다. 전쟁 이후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은 오랫동안 남부 사회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남부는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재즈와 블루스, 가스펠 음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슬픔과 희망이 음악으로 승화된 결과였다. 남부 음식 문화 또한 다채로웠다. 물론 우리 입맛에는 기름질지 몰라도 프라이드 치킨, 바비큐, 검보와 잠발라야 같은 요리는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탄생한 남부의 정체성이었다. 느리지만 깊은 말투, 낯선 이를 향한 친절한 인사, 그리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정서는 오늘날까지도 남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텍사스(State of Texas)는 미국 남부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때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멕시코의 영토였으며, 짧은 기간이나마 독립 공화국으로 존재했던 땅이어서 텍사스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Texan'이라 부르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댈러스(Dallas)와 포트워스(Fort Worth)는 현대적인 도시와 서부 개척 시대의 흔적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카우보이 문화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라, 이 땅이 지나온 역사에 대한 기억이었다. 오스틴(Austin)은 또한 다른데, 음악과 예술,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도시로서 'Keep Austin Weird'라는 구호처럼 텍사스 안의 또 다른 텍사스를 보여줬다.
플로리다(State of Florida)는 남부의 끝자락에서 바다를 품은 땅이었다. 스페인 탐험가들이 처음 발을 디딘 이곳은 오랜 기간 스페인과 영국, 미국 사이에서 주인이 바뀌었다. 올랜도(Orlando)는 테마파크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습지와 호수, 원주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이애미(Miami)는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다문화 도시였다. 스페인어가 영어만큼 자연스럽게 들리고, 라틴 음악과 음식이 일상에 스며 있다. 플로리다는 미국이면서도 미국 같지 않은, 국경의 감각을 지닌 곳이었다. 특히 미 최남단 키 웨스트(Key West)로 가는 길이 기대되었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가장 큰 설렘을 품게 하는 곳은 단연 멕시코였다. 멕시코(México)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지녔지만, 그 이전에는 아즈텍(Azteca)과 마야(Maya)라는 찬란한 원주민 문명이 존재했다. 멕시코의 역사는 정복과 저항, 융합의 연속으로서,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렸고, 가톨릭과 스페인 문화는 강제로 이식되었다. 그러나 원주민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종교와 예술, 언어 속에 깊이 스며들어 오늘날의 멕시코를 만들었다. 멕시코 시티(Mexico City)는 그 상징으로서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ōchtitlan)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유럽식 대성당 옆에 원주민 신전의 흔적이 공존했다. 멕시코의 음식 문화 또한 이러한 혼합의 결과로써, 옥수수, 콩, 고추 같은 원주민 식재료에 스페인의 조리법이 더해져 타코와 엔칠라다, 몰레 같은 요리가 탄생했다. 음식은 멕시코 사람들에게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정체성과 기억이었다. 이 나라의 현대사는 침략과 수난의 역사를 극복한 이후에도 격동의 연속이었다. 독립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과 혁명, 외세의 개입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강한 민족적 자부심이 형성되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죽은 자의 날' 축제는 멕시코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슬픔조차도 색과 음악으로 끌어안는 태도는, 이 나라가 지닌 깊은 생명력을 말해줬다.
멕시코 여행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기대하는 곳은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발현 성지였다. 1531년, 멕시코시티 인근 테페약 언덕에서 원주민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이야기는 멕시코 가톨릭 신앙의 출발점이었다. 성모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신이 아니라, 원주민의 언어로 말을 건넸고, 원주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전해졌다. 이는 정복과 억압의 시대 속에서 신앙이 어떻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줬다. 과달루페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객이 찾는 성지 중 하나였다. 매년 수천만 명이 이곳을 찾고, 12월 12일 성모 축일에는 수많은 신자가 무릎으로 성지에 들어온다. 대성당 안에는 후안 디에고의 망토에 남겨졌다는 성모의 모습이 모셔져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이미지 앞에서, 신자들은 저마다의 기도를 올린다. 나에게 이곳은 나열된 여행지 중 하나가 아니라, 긴 여행의 이유이자 도착점이 될 터였다.
여행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계획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다른 의미를 발견해 왔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카리브해 대신 미국 남부와 멕시코로 이어지는 이 여정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신앙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는 여행이 될 것이고, 그 순간은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추억이 될 것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배웠다. 세상은 넓고, 그 넓음 속에는 언제나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과 여행은 결국 그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담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