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26일(월) 댈러스
소파베드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불이 없었던 탓에 입고 있던 옷들을 겹겹이 껴입고 잠을 청했는데, 몸은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깊이 잠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차로 힘들 법도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마도 그제부터 이어진 긴 이동과 긴장이 몸을 먼저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여행의 첫 아침은 언제나 낯설지만, 이번 아침은 유난히 고요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댈러스 시내는 전날의 폭설과 강풍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대신, 더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눈과 바람의 파도는 잦아들었지만 새롭게 한파 경보가 찾아왔다. 미국 동부와 남부에 불어닥친 한파였고, 댈러스는 36년 만에 가장 추운 날이었다. 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있었다. 움직임이 사라진 도시는 마치 시간을 멈춘 듯했고, 세상 종말 이후 우리 가족만 남겨진 느낌마저 들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고독을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전날 장을 보지 못한 탓에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숙소 건너편에 있는 베이글 가게로 테이크아웃을 하러 나섰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얼굴을 스치는 겨울 공기가 만만치 않았다. 텍사스라는 이름에서 떠올렸던 온화한 기후의 이미지는 이 도시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가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카페와 식당들 역시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도시 전체가 잠시 숨을 멈춘 듯했다.
그 가게 바로 옆에는 댈러스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장 아이볼(Giant Eyeball)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 아이볼은 도심 한가운데 설치된 거대한 눈 조형물로서, 높이 약 9미터에 달하는 사실적인 눈 모형이었다. 2007년 미국 조각가 토니 타셋이 제작한 이 작품은 인간의 시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관람객에게 보고 있음과 보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주변의 고층 빌딩과 대비되는 초현실적인 존재감으로, 댈러스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예술 감각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텅 빈 거리 한복판에서 그 눈과 마주하니, 마치 우리가 이 도시를 지켜보는 존재인지, 아니면 도시가 우리를 응시하는 존재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는 일단 거르기로 했다. 허기보다 더 큰 문제는 이동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렌터카 회사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 도시에서의 이동 계획은 렌터카를 중심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에는 보이는 노숙자들은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었지만, 추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마음은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우리가 불편함을 걱정하는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생존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시의 냉기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
걷다 보니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메모리얼 플라자(John F. Kennedy Memorial Plaza)에 이르렀다. 눈이 쌓인 거리 위의 풍경은 우리나라의 눈과 달랐다.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은 눈은 거의 아이스링크처럼 변해 있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의 딜리 플라자에서 발생한 미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 중 하나였다. 제35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퍼레이드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저격당해 사망했고,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반에 깊은 충격과 불신을 남겼다. 이후 수많은 조사와 음모론이 이어졌으며,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눈 덮인 침묵 속의 그 장소는 과거의 비극을 과장하지도, 지우지도 않은 채 그대로 품고 있는 듯했다.
렌터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에는 안내문 하나만 붙어 있었다. 토요일부터 휴업이며, 월요일 19일 낮 12시부터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며, 오늘의 일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서 돌아왔다.
숙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며 오늘 일정을 다시 짰다. 계획은 이미 의미를 잃은 상태였고, 선택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일찍 나서서 댈러스의 과달루페 대성당(National Shrine Cathedral of Our Lady of Guadalupe)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미국 내 히스패닉 가톨릭 공동체의 중심 성당으로, 텍사스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 가운데 하나였다. 1902년에 현재의 건물이 완공되었으며, 로마네스크 리바이벌 양식을 바탕으로 한 웅장한 외관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했다. 과달루페 성모는 멕시코와 중남미 전역에서 깊은 신심의 대상이며, 이 성당은 미국과 라틴 문화가 만나는 신앙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날씨 탓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미사 준비로 인해 한 곳의 입구는 열려 있었다. 궂은 날씨 속에서 만난 그 공간은 순간적인 평화를 선물해 주었다. 성당 안은 고요했고, 미사 참례객은 단 두 명뿐이었다. 우리는 정오 이후 일정이 있어서 미사에 참례하지는 못했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도시가 멈춘 날에도 신앙의 공간만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다시 렌터카 회사로 향했지만,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일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다시 레지던스 숙소로 돌아와, 1층에 있는 안내원에게 부탁해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상황은 같았다. 연결되지 않는 전화는 선택지를 하나 더 지워버렸다.
두 번째로 숙소에 돌아와 우리가 선택한 것은 트레이더 조스 (Trader Joe’s)까지 걸어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마트 원정대'가 만들어졌다. 트레이더 조스는 1958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표적인 식료품 체인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유명했다. 대형 마트와 달리 소규모 매장과 독특한 상품 구성, 친근한 직원 문화로 사랑받아 왔으며, 세계 각국의 식재료를 미국식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 특징이었다. 여행자에게는 현지인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눈 덮인 거대한 도시에 사람이라고는 우리뿐인 듯한 풍경이 계속되었다. 텍사스 댈러스가 아니라, 전형적인 겨울 속 일리노이의 시카고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허벅지에 힘을 꽉 주며 눈길을 걸었다. 우리나라는 한파주의보든 경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여긴 그렇지 않은 게 특이했다.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길었지만, 그만큼 도시는 천천히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을 때, 안내원이 말한 대로 마트는 열려 있었다. 그 건물을 보는 순간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 이날 가장 큰 성취였다.
소고기 안심과 등심, 연어, 과일, 와인 등 한가득 장을 봤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는 만찬처럼 차려졌다. 화려한 레스토랑도, 유명한 관광지도 없었지만, 이날의 식사는 여행 내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돌아보면 뭔가를 많이 한 날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했던 것들은 대부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변수 속에서 찾아낸 선택들은 모두 유효했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자유여행은 완벽한 하루를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흔들리는 하루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했다. 그날의 댈러스는 그렇게 우리에게 여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