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6일(화) 댈러스에서 오스틴, 다시 댈러스
새벽 다섯 시쯤 눈을 떴다. 아직 어둠이 창밖에 남아 있었고, 숙소 안은 고요했다. 여행지에서 맞는 이른 아침은 늘 묘한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날이었기에 몸을 깨우듯 부엌에 불을 켰다. 아침 식사는 유난히 푸짐하게 준비했다. 삶은 달걀, 치즈 토스트, 요거트, 연어 스테이크, 사과와 블루베리, 그리고 오렌지주스까지 차려놓고 보니 작은 뷔페 같았다. 이 든든한 한 끼가 하루의 고생을 버티게 해 줄 밑작업이었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오픈 시간인 아침 8시에 맞춰 전날부터 몇 번이나 다녔던 렌터카 회사로 다시 걸어갔다. 이제는 길을 외울 정도였다. 눈에 익은 거리, 얼어붙은 보도블록, 바람의 방향까지도 익숙해졌는데, 문은 또다시 닫혀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분명 예약을 했고, 약속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는 약속보다 날씨가, 시스템보다 현실이 더 강했다. 화를 내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분노는 금세 체념으로 바뀌었다. 아내는 차라리 공항으로 가서 빌리자고 했다. 그 말이 유일한 길처럼 들렸다. 우리는 트램을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30분을 기다렸다. 트램이 도착했고, 우리는 몸을 싣고 이동했다. 약 50분쯤 지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틀 전 오들오들 떨며 처음 이 도시에 발을 내디뎠던 장면이 떠올랐다. 같은 장소였지만, 마음은 전혀 달랐다.
아내가 찾아낸 렌터카 회사 장소는 공항에서도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도 앱은 3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눈길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점점 외진 느낌이 강해졌고, 여기가 맞나 싶은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걷는 동안 나와 아이는 각각 한 번씩 크게 넘어졌다. 얼음 위에서 미끄러진 몸은 아팠지만, 이상하게 헛웃음이 나왔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순간들을 끌어안고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한 곳은 렌터카 회사가 아니라 개인 전용기들을 관리하고 탑승하는 시설이었다. 완전히 엉뚱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직원은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직원이 직접 차를 몰아 렌터카 대여 장소까지 태워주었다. 내가 '우리의 구원자'라고 말하자 그는 웃었다. 그 웃음에는 계산도, 의무도 없었다. 그저 안도에 가득찬 호의였다. 텍사스라는 이름이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예약했던 렌터카 업체로 갔지만, 상담은 매끄럽지 않았다. 시내에서 한 예약을 취소하라고만 했다. 그곳은 문도 열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말해도 그들은 무심했다. 그때 다시 마음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화를 낸다고 자동차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다른 업체에서 차량을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주차장에 없는 차량을 두 번이나 배정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식 시스템의 허술함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차를 받았고, 우리는 곧장 오스틴을 향해 출발했다.
댈러스에서 오스틴까지의 길은 길고도 넓었다. 중간에 들른 곳은 버키스(Buc-ee’s)였다. 버키스는 텍사스를 대표하는 초대형 휴게소 체인으로 단순한 주유소를 넘어 하나의 마트에 가까웠다. 수십 개의 주유기, 끝이 보이지 않는 매장, 바비큐와 베이커리, 기념품까지 갖춘 공간이었다. 텍사스 사람들에게 버키스는 길 위의 오아시스이자,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 규모와 활기는 '역시 미국, 역시 텍사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북쪽에 남아 있던 눈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사라졌다. 오스틴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눈의 흔적조차 없었다. 우리는 바베큐를 먹기 위해 이 도시까지 왔다.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갔고, 점원들은 예상보다 훨씬 친절했다. 이 바베큐를 먹기 위해 댈러스에서 4시간을 달려왔다고 하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댈러스에도 지점이 있지만, 여기가 더 맛있다고 했다. 그 말에 괜히 더 기대가 커졌다. 사실 우리는 댈러스에 지점이 있는지도 몰랐다. 정석대로 브리스킷, 비프 립, 할라피뇨 소시지를 주문했다. 고기는 짜지 않았고, 씹는 맛은 분명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불과 연기, 시간만으로 만들어진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바베큐를 굽는 피트를 구경했다. 유튜브에서 보던 점원 메트를 실제로 마주쳤을 때는 괜히 마음이 들떴다. 반갑다고, 만나서 영광이라고 말하자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우리를 붙잡고 작은 선물까지 건네주었다. 그 순간, 이것이 바로 텍사스의 환대(Texas Hospitality)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틴을 떠나기 전 시내로 들어가서 우리는 텍사스 캐피톨 앞에 잠시 섰다. 붉은 화강암으로 지어진 텍사스 캐피톨은 워싱턴 D.C.의 연방 의사당보다도 더 높게 세워진, 텍사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1888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텍사스가 하나의 '국가'였던 시절의 기억과 지금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주(州)라는 자존심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광활한 잔디와 당당한 돔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이 땅의 기질을 말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렌터카 대여 때문에 시간이 늦어져서 오전 12시 가까이 출발한 우리는 이미 오후 4시가 넘어서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언젠가 다시 오라는 초대처럼 남겨진 건물 앞에서, 아쉬움은 자연스레 다음 여행의 이유가 되었다.
댈러스에서 보낸 이틀은 솔직히 순탄하지 않았다. 도시와 잘 맞지 않는 날씨, 반복되는 변수들로 마음이 닳아 있었다. 하지만 오스틴에서의 이 순간은 내 마음속에 별처럼 남았다. 사람의 온기, 음식의 정성, 예상치 못한 친절이 여행의 균형을 단숨에 되돌려 놓았다. 노을을 친구 삼아 다시 밤길을 달려 댈러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버키스에 들러 주유를 했다. 그런데 주유기를 빼는 순간 기름이 넘치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피곤이 몰려온 탓이었다. 장장 400마일, 약 650킬로미터를 왕복하며 여덟 시간을 달린 하루였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여행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특히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계속 변수를 달고 있어서 상수가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오히려 계획이 무너질 때, 그 여행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오늘의 텍사스는 그런 얼굴을 보여주었다. 변수 속에서도 길을 찾게 해 주는 사람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풍경들, 그리고 끝내 감사로 남는 하루였다. 이 하루는 피로가 아니라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