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올랜도를 향한 여정

2026년 1월 28일(수) 댈러스에서 올랜도

by 오스칼

댈러스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아침 식사는 어제 먹다 남은 브리스킷과 냉장고에 있던 안심스테이크를 구워서 냈다. 레드와인과 소고기 등심은 결국 냉장고에 둔 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 어렵게 손에 넣은 렌터카 덕분에 아침은 한결 수월했다. 짐을 정리해 차에 싣고,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까지 직접 운전해 갔다. 아내는 트램이나 버스, 택시, 우버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훨씬 편안해 보였다. 여행에서 이동의 피로는 생각보다 마음을 많이 갉아먹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일정 내내 배워가고 있었다.


댈러스-포트워스 공항 가는 길
렌터가 반납전 마지막 주유


며칠 내내 도시를 덮고 있던 한파는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눈은 빠르게 녹고 있었고, 도로 위에는 다시 차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체된 듯 보였던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의 리듬을 되찾고 있었다. 우리는 그 회복의 순간을 스쳐 지나가며 떠나는 입장이었다. 댈러스는 그렇게 '겨울 도시'라는 인상만 남긴 채 기억 속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제 현재 봄날같은 올랜도로 어서 가고 싶었다. 해외에서 운전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서 미국에서는 마치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것 같았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나서 공항버스를 타고 무사히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공항


공항에 도착해 플로리다 올랜도로 향하는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15분이었다. A8 게이트 앞에 앉아서 대기를 하는데, 전광판에 갑자기 출발 시간이 11시로 연기되었다는 안내가 떴다.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이쯤이면 이제 그러려니 하는 마음도 생겼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터라 아이가 먹을 것을 사 주기 위해 맥도날드로 향했다. 음식을 받고 돌아가는 순간, 다시 알림이 울렸다. 이번에는 게이트가 C터미널의 C16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한번 보고는 다소 어이없어했다. 공항 트램을 타고 부리나케 터미널을 건넜다. 이 넓은 공항에서의 이동은 짧은 달리기 같았다. 숨을 고르고 C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일정이 바뀌었다. 출발 시간은 12시로 또 한 시간 연기되었다. 이쯤 되니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일정이 된 느낌이었다.


올랜도와 밀당하기
와타버거


시간도 여유있어서 공항 트램을 타고 우리는 D터미널에 있다는 텍사스 버거 체인 와타버거(Whataburger)로 향했다. 텍사스 사람들이 사랑하는 버거라는 말에 마지막으로 텍사스를 한 입 더 맛보고 싶었다. 포장된 햄버거를 들고 다시 게이트로 돌아왔다. 그런데 전광판에는 또 다른 시간이 떠 있었다. 출발은 12시 30분이었다. 헛웃음이 나면서 몇 번이나 미뤄지는 출발 시간은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 12시 30분이 가까워져서 들어가겠지 했는데 오후 1시로 다시 연기되었다. 리고 1시 15분으로 이제는 어디까지 간보나 시험하는 듯했다. 놀라움도, 분노도 사라지고 그저 멍해졌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목적지로 나아가는 대신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오가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잠시 뒤 항공사 직원이 전체에게 말하길 비행기 부품 문제로 계속 늦어진다고 했다. 결국 1시 45분까지 연기되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이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수를 안고 흘러왔고, 오늘 역시 그 연장선에 있을 뿐이었다.


또 다시 연기
희망고문의 끝


장시간 기다림 끝에 1시 50분에 드디어 탑승을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차례대로 탑승하는데 누구 하나 인상 찌푸리거나 언성이 높아지는 일 없이 부드럽게 진행되는 상황이 무언가 편안함을 주었다. 이륙 후 3시간 30분 정도 지나서 드디어 플로리다 올랜도에 도착했다. 댈러스와 시차는 1시간이 났다. 아이는 내내 못 자다가 막판에 졸려했다.


드디어 올랜도로 출발


원래대로라면 한낮인 4시간 전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이미 이 도시는 노을의 끝자락만 보여주고 있었다. 짐 찾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트램을 타고 갔는데, 미 국내의 온갖 도시에서 오다 보니 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와있었다. 한 10여 분 찾다가 드디어 반가운 우리의 짐이 나와서 우버를 불러 타고 올랜도 시내로 갔다. 그런데 플로리다주는 차량 번호판이 뒤에만 있어서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굉장히 어색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차들이 돌아다니지 하고 놀랐다. 올랜도는 이미 밤이 시작된 도시가 되었다. 계획과 다르게 하루를 완전히 이동하는데 쓴 하루였다. 댈러스 올 때도 참 쉽지 않았는데, 올랜도 역시 그 얼굴을 보는 게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이러다가 마이애미도 가는 길이 험난할지 벌써부터 염려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여행이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기에 이 여정 역시 우리에겐 소중했다.


두 번째 도시 도착
짐찾기 난이도 상
번호판이 없는 차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은 익숙한 여행지의 불빛과는 달랐다. 우리가 묵을 곳은 여행객의 동선에서 벗어난 로컬들이 사는 전형적인 교외 마을이었다. 가로등은 성글었고, 집들은 낮은 숨을 고르듯 조용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여행이 아니라 생활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느낌이었다. 짐을 먼저 내려놓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아내의 옷 쇼핑을 위해 근처 아웃렛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진열대에 걸린 옷들은 확실히 미국 남부의 취향을 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먹을 것들을 샀다. 낯선 브랜드의 음료와 익숙한 간식들이 섞인 봉투를 들고 나오며, 이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를 다시 실감했다.


아울렛 탐방
미국 도시락


숙소에 들어와 보니 컨디션은 기대보다 좋지 않았다. 사진으로 보았던 것과는 다른 현실이었다. 난방 히터 소음도 있었고, 세세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불평은 오래가지 않았다. 변수로 가득 찼던 하루의 끝에, 이렇게 몸을 눕힐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오늘 하루는 이동과 기다림, 어긋남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모든 것을 지나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 도시는 아직 우리에게 낯설었고, 민낯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장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여행은 늘 이렇게, 불완전한 하루 위에 다음 날을 얹어가며 완성되어 갔다.


올랜도에서 첫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