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금) 올랜도에서 마이애미
화창한 올랜도의 아침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짐을 정리했다. 전날의 소란과 환호가 아직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지만, 여행은 늘 다음 장면으로 우리를 밀어냈다. 그제 편의점에서 샀던 쿠바노샌드위치와 잼 바른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택시를 타고 지역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차창 너머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실루엣이 잠시 스쳤다. 아이는 그 풍경을 놓치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끝까지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어제의 웃음과 환호가 아직 선명한 만큼, 떠남의 감정도 또렷했다.
버스 터미널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읍내 터미널에 가까웠다. 규모가 크지 않았고, 간이 정류장처럼 소박했다. 치안때문에 경찰관들이 계속 오가서 화려한 공항과는 전혀 다른 표정의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가방을 끌고 와 줄을 섰고, 목적지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가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오전 11시 15분에 마이애미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내부는 예전에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이동하던 버스와 닮아 있었다. 좌석 배치와 통로의 폭, 천장의 조명까지 비슷했다. 여행의 기억들은 이렇게 전혀 다른 대륙에서 불쑥 겹쳐졌다.
중간에 다른 정류장을 한 번 더 들른 뒤, 버스는 본격적으로 마이애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만석이었다. 나는 앞 좌석 등받이가 고장 난 자리에 앉아야 했다. 앞사람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등받이는 내 쪽으로 저절로 기울었다. 옴싹달싹할 수 없는 자세로 4시간 30분을 버텨야 했다. 불편했지만, 이마저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버스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긴 거리를 이렇게 쉬지 않고 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화장실이 급하면 맨 뒤에 있는 버스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이동은 효율적이었고, 그 효율 속에는 휴식이라는 개념이 빠져 있었다.
마이애미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의 표정이 바뀌었다. 햇살은 점점 옅어지고, 구름이 낮게 깔렸다. 플로리다의 별칭인 'Sunshine State'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바뀐다고 해서 기대까지 흐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 동선은 공항을 스치듯 지나 다운타운으로 향했고, 우리의 숙소는 공항과 시내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마이애미는 거리 곳곳에 하와이처럼 닭을 키우고 있었는데 아이는 무척 신기해했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80~90년대 음악이 흘러나왔다. 선곡이 좋다고 말하자 운전기사는 반갑게 맞장구를 쳤다. 말이 길지 않아도, 취향 하나로 생기는 공감은 충분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우리는 장을 보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숙소는 리틀 아바나(Little Havana)의 끝자락에 있었다. 나온 김에 동네를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리틀 아바나는 마이애미에 정착한 쿠바 이민자들의 삶과 문화가 응축된 지역이었다. 1960년대 쿠바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지역으로, 중심 거리인 칼레 오초를 따라 카페와 식당, 시가 상점, 음악 공연장이 이어졌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도가 높고, 명성이 자자한 만큼 전 세계에서 많이 찾는 구역이었다. 스페인어가 일상처럼 들리고, 거리에는 쿠바 국기와 체 게바라의 초상이 자연스럽게 걸려 있었다. 이곳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동네로 보였다. 축제와 퍼레이드가 잦고, 도미노 공원에서는 노인들이 진지하게 판을 벌렸다. 리틀 아바나는 마이애미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나라처럼 느껴졌다.
거리로 나오자 공기를 타고 음악과 노랫소리가 흘러왔다. 살사와 룸바의 리듬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쿠바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날씨도 다시 좋아져 걷는 맛이 살아났다. 이국적인 풍경이라는 말이 그제야 실감 났다. 관광지의 장식된 이국이 아니라, 생활이 만들어낸 이국이었다. 사람들의 표정과 언어, 가게의 진열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마트에 들어서자 그 감각은 더 분명해졌다. 진열대에는 아사도, 다양한 토르티야, 몰타 음료가 가득했다. 익숙한 브랜드보다 낯선 이름들이 더 많았다. 계산대에 섰을 때 점원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짧은 단어 몇 개와 손짓으로 계산이 진행됐다. 마치 코리아타운에서 오래 산 한국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는 영어가 외국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분명 다른 세계로 들어와 있었다.
양손 가득 마이애미의 식량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소박하지만 풍성했다. 돼지 앞다리로 만든 아사도(Paleta de Cerdo Asada)에 양파와 고수를 얹고 토르티야로 감싸 타코를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중남미 팥밥이라고 부르는 모로스 이 크리스티아노스
Moros y Cristianos)도 함께 냈다. 그리고 병 몰타(Malta)를 쭉 들이켰다. 이틀간 햄버거와 피자, 인스턴트 라면으로 채운 뱃속을 씻는 의식이었다. 전혀 다른 문화의 음식들이 한 식탁 위에 놓였어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여행 중의 식탁은 늘 그날의 이동과 만남이 자연스럽게 메뉴를 결정하는 게 당연했다. 이동의 날이었고, 그 이동은 새로운 감각으로 보상받았다. 이렇게 마이애미의 첫 밤이 저물어갔다. 여행은 다시 한번, 다른 얼굴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