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1일(토)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
아침은 늘 여행의 성격을 결정했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고, 몸이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식사 준비부터 시작했다. 부엌에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꺼내는 소리로 하루가 열렸다. 아이도 곧 일어나 자신의 역할을 맡았다. 각자 두 개씩, 모두 여섯 개의 달걀프라이를 노릇하게 구워 단백질을 채웠다. 끓는 물에 소시지를 데치고, 옥수수 100% 토르티야를 팬에 구웠다. 초코 오트 우유로 목을 축이며 식탁에 둘러앉았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단단한 아침이었다.
7시 30분에 택시를 예약해 두었기에 그전에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쳤다. 숙소 문을 나서자 선샤인 시티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햇살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제의 흐린 하늘은 사라지고, 공기는 가볍고 투명했다. 택시를 타고 막히지 않은 도로를 달렸다. 리오넬 메시가 뛰는 인터 마이애미의 새로운 홈구장 건설 현장을 지나길래 사진을 찍으니 운전기사께서 창문을 내려주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10분쯤 지나자 공항 렌터카 픽업 장소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빌린 이유는 플로리다에 있는 국립공원인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서였다.
원래 계획은 키 웨스트(Key West)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새만금도로처럼 단조로운 바닷길을 4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일정이 아이에게는 지루할 것 같았고,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방향을 틀어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선택의 기준은 우리에게 와닿는 의미와 리듬이었다. 렌터카로 받은 차량은 닛산 패스파인더였는데, 현대 팰리세이드급의 크기였고, 우리에게는 조금 과할 정도로 컸다. 핸들을 잡고 출발 전 차체에 적응해야 했다. 그래도 넉넉한 공간은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었다.
햇살 가득한 도로를 약 1시간 20분쯤 달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이후에 비 소식이 있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늘은 흐리기만 할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짙어지는 색감에 불안하기는 했다. 공기의 농도가 진해지고, 주변의 풍경이 도시에서 자연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낮아지고, 물과 숲의 경계가 흐려졌다.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Everglades National Park)은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 위치한 거대한 습지 국립공원이다. 면적은 약 6,100km²로서, 충청북도 면적보다 살짝 작은 정도였다. 이곳은 늪지와 초원, 맹그로브 숲이 어우러진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흔히 강이라고 생각하는 물줄기는 사실상 거의 흐르지 않는 얕은 물의 평원으로, '풀의 강'이라 불렸다. 악어, 희귀한 새들과 파충류가 공존하며,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자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국립공원이 그렇듯 이곳도 살아 있는 생태계 그 자체였다.
국립공원의 시작을 알리는 어니스트 F. 코 비지터 센터(Ernest F. Coe Visitor Center)를 지나 국립공원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국립공원 입장권 가격이 100달러로 크게 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행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앞의 숫자를 마주하니 망설여졌다. 연간권은 250달러였지만, 올해 다시 올 가능성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의 가격 정책이 달라지는 흐름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잠시 가지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페리 투어 예약도 되어 있었고, 이곳을 위해 일정까지 조정해 왔으니 결국 입장권을 구매했다. 선택은 늘 이렇게 이미 걸어온 길의 무게에 의해 결정되었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로열 팜 비지터 센터(Royal Palm Visitor Center)였다. 그곳에서 안힝가 트레일(Anhinga Trail)을 걸었다. 나무 데크 위를 따라 이어진 짧은 트레일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가이드가 동행하며 이곳에 사는 새와 악어, 식물들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 시즌이 다양한 물고기가 많아서 새와 악어들에게는 뷔페 시즌이라고 했다. 설명을 들으며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동식물학에 대해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설명이 길어지면 마음이 다른 데로 흐르는 편이었다. 반면 아이는 전혀 달랐다.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지고, 안내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여행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상상해 보았다.
이어서 검보 림보 트레일(Gumbo Limbo Trail)을 걸었다. 안힝가 트레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정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 소리조차 숲에 흡수되는 듯 조용했다. 도시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와서 차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에 준비해 나온 음식을 꺼냈다. 아사도 돼지고기와 채 썬 양파, 고수, 바비큐 소스, 토르티야였다.
식사를 마친 뒤 플라밍고 비지터 센터(Guy Bradley Visitor Center (at Flamingo))로 향했다. 드넓은 국립공원을 가로질러 달리는 길은 호주에서 칼바리 국립공원을 갔을 때의 기억을 불러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아주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가는 길에 파-헤이-오키(Pa-Hay-Okee) 전망대에 들러 전망을 보았다. 아쉽게도 잔뜩 먹물을 머금은 하늘 탓에 시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흐린 하늘 아래 펼쳐진 습지는 또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마호가니 해먹 트레일(Mahogany Hammock Trail)을 걷는 것으로 오후 일정이 계속 이어졌다. 전반적으로 이 국립공원의 트레일들은 짧은 구간들로 나뉘어 있어 긴 호흡이나 체력을 요구하지 않는 산책로에 가까웠다. 나무 데크 위를 따라 몇 분씩 걷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나 있었고, 그래서인지 마음에 큰 파문을 남기지는 않았다. 특별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기보다는 국립공원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에 가까웠다. 자연이 주는 감동은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차를 몰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자 플라밍고 비지터 센터가 나타났다. 이곳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는데, 무엇보다 선착장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 이곳이 국립공원의 또 다른 관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건물 앞에 서자 물과 숲, 그리고 사람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페리 투어에 참여했다.
가이드의 인솔 아래 모인 사람들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국적과 언어는 달랐지만, 모두 같은 기대를 품고 같은 배에 올랐다. 하늘은 다행히 다시 맑아지고 있었다.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열대기후의 흔적을 품은 지역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페리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은 지금까지 봐온 미국의 자연과는 결이 달랐다. 빽빽한 숲은 더 낮고 넓게 퍼져 있었고, 물과 땅의 경계는 흐릿했다. 페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이드는 맹그로브 숲에 대해 설명했다. 뿌리가 물 위로 드러난 나무들은 처음엔 기괴해 보였지만, 곧 이곳 생태계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이해되었다. 허리케인이 이 지역을 덮쳤을 때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또 그 이후 자연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악어에 대한 설명이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 탓에 오늘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기대를 품었던 아이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대신 눈앞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배는 강줄기를 따라 쿳 베이(Coot Bay)를 지나갔다. 물길은 점점 넓어졌고, 어느 순간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 시야가 트였다. 그곳이 바로 화이트워터 베이(Whitewater Bay)였다. 이름처럼 물빛은 밝았고, 수평선은 흐릿했다. 이곳이 습지인지, 만인지, 바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풍경이 오히려 인상 깊었다. 자연은 늘 인간이 만든 분류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의 투어는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에 빗줄기가 잠시 내렸지만, 날씨가 크게 나빠지지는 않았다. 비는 오히려 풍경의 색을 한 톤 낮추며 분위기를 바꾸어 주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를 보고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내 삶의 지도에 영영 표시되지 않았을 장소였을 것이다.
페리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웨스트 레이크 트레일(West Lake Trail)에 들렀다. 마침 노을의 머리꼭지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낮게 깔린 하늘 아래로 물과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탁 트인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의 빛은 늘 짧아서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공항 렌터카 센터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곳이 미국 남동쪽의 끝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장난 삼아 내비게이션에 시애틀의 올림픽 국립공원을 목적지로 찍어보았다. 화면에는 이틀이 넘는 운전 시간이 표시되었다. 숫자를 보는 순간, 이 나라가 얼마나 거대한 대륙 위에 놓여 있는지 실감이 났다. 우리가 오늘 하루 동안 달린 거리는 이 거대한 땅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고 밤이 내려앉을 즈음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반납하며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연이나 동식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습지의 풍경은 흥미로웠지만, 마음 깊은 곳을 흔들지는 않았다. 대신 그랜드캐니언처럼 압도적인 대자연이나, 오랜 시간 걷고 땀 흘리는 트래킹이 나에게는 더 맞는 여행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아내와 아이가 나름대로 잘 즐겼고, 특히 아이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하루였기 때문이었다. 본전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해를 본 느낌도 아니었다. 다만 이곳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에버글라데스에서의 시간은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느리고 묵직했다. 아이는 새로운 세계를 배웠고, 아내는 좋아할 식물들을 눈앞에서 생생히 보았으며, 나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이곳은 사진보다 기억으로 남는 장소였다. 햇살과 습기, 물과 숲이 겹쳐 만든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잠시 여행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되었다. 오늘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은 돌아가는 길에 조용히 마음속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