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5일(목) 푸에블라
푸에블라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었기에 어제보다 조금 더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새벽 공기가 아직 식지 않은 시간, 택시를 타고 TAPO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멕시코시티의 아침은 늘 분주했지만, 이른 시간 덕분에 도로는 비교적 매끄러웠다. 푸에블라로 향하는 버스는 생각보다 자주 있었고, 표를 파는 직원은 8시 30분 버스를 권했다. 하지만 시계를 잘못 본 나는 8시 출발 편을 달라고 했고, 시간이 촉박할 것 같다며 직원은 기사에게 무전을 날렸다. 그 와중에 시계가 7시 58분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민망함이 올라왔다.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자 직원은 웃으며 가능하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뛰듯이 승강장으로 향했다.
버스는 어제보다 훨씬 쾌적한 우등버스였다. 좌석에 몸을 맡기자 긴장이 풀렸고, 멕시코시티의 회색빛 풍경은 점차 창밖으로 멀어졌다. 고속도로에 사고가 있었서 두 시간을 넘겼을 때 푸에블라에 도착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잠시 다른 나라로 넘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푸에블라(Puebla de Zaragoza)는 1531년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로서, '천사들이 설계한 도시'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멕시코시티와 베라크루스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았고, 식민지 시대 스페인 건축과 토착 문화가 조화롭게 융합된 곳이었다. 특히 탈라베라(Talavera) 타일로 장식된 건물과 성당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푸에블라는 멕시코 독립 전쟁과 프랑스 침공을 막아낸 '푸에블라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며, 멕시코 전통 요리의 본산으로도 꼽혔다. 번잡한 수도와 달리, 푸에블라는 걷는 속도만큼 생각도 느려지는 도시였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산토 도밍고 성당 안에 자리한 로사리오 예배당(Capilla del Rosario)이었다. 성당 제단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자 말 그대로 숨이 막혔다. 내부 전체가 금으로 덮인 듯한 장식은 '아메리카의 황금 예배당'이라는 별명을 증명하고 있었다. 17세기에 완공된 이 예배당은 묵주기도의 신비를 상징하는 조각과 회화로 가득 차 있으며, 바로크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빛이 스며들 때마다 금빛 장식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그 앞에 선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신앙이 이렇게까지 화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경건하게 느껴졌다.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했는데, 이왕 온 김에라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주문했다. 닭고기 포졸레, 필레 미뇽(Filet Mignon) 스테이크, 새우와 소고기 볶음, 세미타, 몰레 포블라노에다가 음료로는 오르차타, 그린 주스, 딸기 쉐이크를 곁들였다. 세미타(Semita)는 푸에블라 지역의 전통 샌드위치로서, 참깨가 박힌 두터운 빵에 고기, 치즈, 아보카도, 고추 등을 듬뿍 넣었다. 처음에 고추인 줄 모르고 씹었다가 된통 혼났다.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는 초콜릿과 고추, 향신료를 섞어 만든 푸에블라 대표 소스로서,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특징이었다. 우리 입맛 표현으로는 흑임자 소스 같았다. 전체적으로 맛도 있어서 배가 터질 듯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종업원의 친절함에 감동해 팁을 넉넉히 두고 나왔는데도, 전날의 스페인 레스토랑보다 훨씬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오후, 우리는 사탕 거리(Calle de los Dulces)를 지나 걸었다. 설탕과 캐러멜 향이 공기를 채웠다. 길을 걷다 보니 성당이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했다. 산 크리스토발 성당(Templo de San Cristóbal)도 그렇게 만난 곳이었다.
이후 찾은 엘 파리안 공예 시장(Mercado de Artesanías El Parián)은 푸에블라에서 가장 오래된 공예 시장이었다. 색색의 도자기, 직물, 장신구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고, 하나하나에 장인의 손길이 담겨 있었다. 기념품이라기보다 생활의 일부 같은 물건들이었다. 크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상당히 커 보여서 멀리서도 보여 우연히 들어선 성령 속죄 성당(Templo Expiatorio del Espíritu Santo 'La Compañía')은 예수회 성당답게 단정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졌다. 내부는 웅장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서, 공간이 주는 울림은 깊었다.
그리고 이어진 개구리 골목(Callejón de los Sapos)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색의 건물과 벼룩시장이 어우러져 활기가 넘쳤다. 서울 동묘시장을 연상하게 하면서 시간을 파는 골목 같았다.
조금 더 걷다 만난 푸른 성당, 원죄 없으신 잉태 성당(Templo de la Inmaculada Concepción 'La Conchita')은 소박하지만 정갈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제단 중앙에 굉장히 큰 성체가 모셔있어서 낯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푸에블라 대성당(Catedral de Puebla) 은 도시의 중심이자 정신이었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건축된 이 성당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루며, 두 개의 종탑은 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성당 탑으로 꼽혔다. 내부는 화려한 영광이 느껴졌고, 제대와 회화들은 신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아이는 우리가 성지순례를 왔냐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이 도시에서는 그 말조차 웃음으로 들렸다. 멕시코의 성당들은 성상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예수 성상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거나 누워서 피 흘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적잖이 보는데 힘들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멕시코 원주민들 신앙의 시작이 스페인 침략자들로부터 시작되어 고통받은 현실과 본래 이들의 고대 신앙이 희생 제물에 초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당을 나와 소칼로 광장(Zócalo de Puebla)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어서 찾아간 카페에서 잠시 쉬며 도시를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는 목적을 가지고 걷는 곳이 아니라, 걷다 보면 목적이 생기는 곳이라는 게 절로 들었다. 멕시코시티가 서울이라면 푸에블라는 전주 같은 도시였다. 여유와 균형이 있는 도시, 잠깐 스페인에 다녀온 듯한 하루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노을을 지나 어둠을 만난 멕시코시티의 고막을 때리는 경적 소리와 숨 가쁜 매연이 코를 찌르니 그제야 꿈에서 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