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Back to Texas

2026년 2월 7일(토) 멕시코시티에서 댈러스 그리고 포트워스

by 오스칼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아침이었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짐을 정리하며, 이 도시에서 보낸 며칠이 생각보다 깊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텔 카운터로 가서 체크아웃을 하며 직원에게 멕시코시티가 정말 멋진 도시였다고, 덕분에 잘 머물다 간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이 도시는 낯설고 복잡했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살아 있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택시를 타고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이었지만 공항은 이미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가족, 연인, 일하는 사람들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동하고 있었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치는 과정은 의외로 빠르고 간결했다. 입국 때도 그랬지만 출국 역시 번거로움이 거의 없었다. 이 도시는 복잡하지만 행정의 흐름은 의외로 담백했다.


멕시코에서 마지막 식사
다시, 텍사스
고원을 넘어서
텍사스에 도착


비행기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륙했다. 멕시코시티의 거대한 격자무늬와 높은 산봉우리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도시 위에 걸려 있던 시간도 함께 내려놓는 기분이 들었다. 몇 시간 후 도착한 곳은 다시 미국,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이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입국심사장은 인력 부족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답답한 풍경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실제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은 단 세 명뿐이었다. 그중 두 명은 노인과 장애인 전담 창구였고, 일반 입국심사는 사실상 한 명이 맡고 있었다. 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두 시간이 가까이 지나서야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그 사이 앞에 있던 사람들 중 몇 명이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고, 입국심사원도 자리를 비우는 순간이 있었다. 그 짧은 공백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심사원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포트워스 스톡야드에 갈 예정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인 앤 아웃 버거를 먹으러 갈 거라고 덧붙이자, 그건 별로라며 텍사스 로컬 버거식당을 추천해 주었다. 아이가 오스틴 바베큐 식당에서 받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 이야기도 잠깐 나눴다. 짧은 농담 같은 대화 끝에 입국심사는 금방 끝났다. 짐 찾는 곳에 도착하니 이미 우리의 짐은 모두 나와 있었다.


우리가 바라던 풍경


하지만 댈러스의 공기를 마시는 여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렌터카를 찾으러 이동해 차를 받았지만, 시스템 문제인지 의사소통 문제인지 주차장에서 출구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확인하고 절차를 밟는 데만 전체적으로 한 시간이 걸렸다. 공항에 도착한 지 꼬박 세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댈러스의 도로 위를 달릴 수 있었다. 이 도시는 여전히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의 풍경은 달랐다. 우리가 처음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혹독한 한파와 회색 하늘이 아니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펼쳐져 있었다. 햇빛 아래를 달리며 그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댈러스의 이미지가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인 앤 아웃 버거


점심을 먹기 위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거 브랜드, 인 앤 아웃이었다. 인 앤 아웃 버거(In-N-Out Burger)는 1948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미국 서부의 상징 같은 햄버거 체인이었다. 메뉴가 단출하고 신선한 재료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주문 즉시 조리하는 방식과 비밀 메뉴인 '애니멀 스타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려함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맛,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가족 경영의 철학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뤘다. 미국 여행자들에게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 공간이었다.


내 기준 미국 No1.


문을 열고 들어가자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서 만났었던 익숙하고 반가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더블더블 버거, 애니멀 치즈 버거, 치즈 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애니멀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만족스럽게 먹은 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기념 티셔츠를 사고, 치즈 버거를 하나 더 주문했다. 셰이크 쉑, 파이브가이즈, 왓어버거 같은 유명한 브랜드들을 가봤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인 앤 아웃이 최고였다.


월마트


식사를 마친 뒤 근처 월마트에 들러 아내와 아이가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텍사스 기념품도 팔고 있었으며, 넓고 큰 마트의 규모는 언제 봐도 미국 다웠다. 이후 포트워스를 향해 차를 몰았다. 첫날 계획했던 일정이었지만, 결국 마지막 날에야 도착하게 된 곳이었다.


스톡야드 도착


전주 한옥마을 같은 포트워스 스톡야드(Fort Worth Stockyards)는 19세기 후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중심지였던 장소로, 텍사스의 카우보이 문화와 가축 거래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 규모의 가축 집결지였으며, 철도를 통해 소들이 전국으로 이동하던 물류의 요충지였다. 현재는 역사 지구로 보존되어 서부 시대의 거리, 목조 건물, 상점들이 재현되어 있다. 하루 두 차례 진행되는 롱혼 소몰이는 이곳의 상징적인 행사로서, 관광객들에게 서부 개척 시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밀도 있는 역사와 체험 요소로 포트워스를 대표하는 명소였다.


미국의 한옥마을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대했던 롱혼 소몰이는 생각보다 소의 수가 적었지만, 그마저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아이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고, 우리는 잠시 서부 시대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꼈다. 한참 구경을 하고 해가 기울 무렵, 도로에 깔린 노을이 우리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며 이곳을 기억하게 했다. 다시 호텔 근처 월마트에 들러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조촐하게 여행의 끝을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텍사스 노을


짐을 정리하며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결국 계획했던 것들은 모두 해냈다. 변수 속에서 방향을 조정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여행 레벨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 여행은 단순히 많은 곳을 다닌 기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견디고 선택하며 나아간 시간이었다. 그렇게 멕시코와 미국을 잇는 긴 여정의 마지막 밤이 조용히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