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하늘 위에서 방백

2026년 2월 8일-9일(일-월)

by 오스칼

아침에 눈을 뜨고 마지막으로 짐을 쌌다. 여행 내내 반복했던 동작이었지만, 돌아가는 날의 짐 정리는 늘 결이 달랐다. 더 이상 다음 목적지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이 여정을 접는 손놀림이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호텔 앞 주유소에서 주유를 한 뒤 렌터카 반납 장소로 향했다. 언제 다시 일지 모를 렌터카 여행과도 작별을 고했다. 이번 여행에서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은 유난히 여러 번 드나든 공간이었다. 도착의 공항이자 출발의 공항이었고, 헤매고 기다리고 다시 나아가야 했던 경계의 장소였다.


여행의 끝
굿바이, 댈러스
북미대륙에서 태평양을 건너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그동안의 고생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기내식 두 번과 간식 한 번을 먹고, 장장 14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자 대한민국이었다. 겨울의 한국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추위마저 익숙해서 마음이 놓였다. 공기의 냄새, 사람들의 말투, 공항의 동선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다. 낯선 곳에서 긴장을 풀지 못했던 시간이 끝나고,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기내식
14시간의 여정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변수가 너무 많았다. 자유여행에서 변수는 언제나 상수처럼 존재하지만, 이번에는 그 빈도가 유난히 빈번했다. 출발 전부터 항공편이 결항되었고, 대체 항로를 급히 찾아야 했다. 댈러스까지 들어오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길었고, 도시에 도착해서도 시내로 이동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올랜도까지 가는 여정은 긴 대기 시간과 잦은 일정 변경으로 체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마이애미에서는 날씨가 맑았음에도 겨울 한파 탓에 우리가 기대했던 '여름의 도시'와는 다른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반면 멕시코에서 날씨만큼은 끝까지 우리 편이었다.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도시와 문명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위안이었다.


여행을 하며 느낀 미국은 코로나19 이전에 여행했던 기억 속의 미국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물론 지역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보다는 어딘가 급하고, 조금은 경직된 인상이 강했다. 공공 서비스는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는 느낌이었고,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예전만큼의 느긋함은 잘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웃음이 없고 단조로워 보였다.


멕시코는 또 다른 세계였다. 물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빈부격차는 훨씬 선명했다. 노숙자와 구걸하는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있었고, 그 옆에는 현대적인 건물과 세련된 카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마치 1980년대와 2020년대가 한 도시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원주민 문명과 스페인의 침략, 그리고 그 이후에 형성된 혼합 문화가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은 이곳이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낯설었지만,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


이번 여행은 편안함보다는 긴장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계획이 어긋나면 다시 세워야 했고, 예상과 다른 상황에서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를 더 잘 보게 되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여정을 견뎠다. 모든 일정이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았기에, 오히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더 많아졌다. 여행은 결국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시선을 옮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정은 우리가 익숙하게 믿고 있던 세계의 이미지들을 하나씩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무엇이 여전히 소중한지 다시 확인하게 했다. 그렇게 긴 여행은 끝났고, 우리는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여행이 남긴 질문과 감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