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작가도 아니고 글을 쓰는 직업도 아니지만 건방지게 글과 권태기가 왔다. 아니지. 무언가 쓰고 싶기는 한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으니 '권태기'는 맞는 단어가 아닌가?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은 흘렀고, 브런치에서는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라는 마음 쓰이는 재촉 알림이 왔다. 알림도 참 다양했다.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라던지 "작가님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님들이 있어요."라던지 자꾸만 조급해져서 어플 알람을 꺼버리기까지 했다.
최근 일 년 동안은 내 이야기에 취해서 글을 썼다. 뚜렷한 목표도 있었다. 글을 쓰고 브런치 북을 발행해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싶다는 거였다. IT 회사원, 스터디 카페 사장, 블로거, 작가로 살아가는 부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게 [하루를 여러 번 살고 있습니다.]라는 에세이를 완성했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도중 칼럼이나 출간 제의가 오기도 해서 글 쓰는 내 모습에 꽤 빠져있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 털어내고 나니 더 이상 쓸게 없어졌다. 이젠 뭘 써야 될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와 색다른 주제가 넘쳤다. 브런치만 봐도 단숨에 마지막화까지 술술 읽히는 글들이 많았다. 공모전 출판 응모작들을 보니 세상에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구나 새삼 놀라웠다.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쌀쌀한 가을밤의 기온처럼 훅 떨어진 자신감은 우울한 생각만 들게 했다. 즐겁게 글을 올리던 블로그에 맛집 후기 한 편을 올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심지어 포스팅을 하다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런 평범한 글을 누가 좋아할까? 다른 블로그 포스팅이 훨씬 재밌고 섬세하지 않나? 열심히 달려가다가 내가 왜 달리고 있었는지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코 끝을 스칠 때, 물감을 푼 듯 새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때, 무채색의 담벼락 옆을 지나가다 잘 익은 다홍색 감 하나가 눈에 들어올 때면 미치도록 무언가 쓰고 싶었지만 생각이 이어지지가 않았다. 글을 쓰려고 화면 앞에 앉아있으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고 몇 줄 쓰다가는 저장도 하지 않은 채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그러다 문득,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무작정 필사를 한다던 한 작가님이 떠올랐다. 필사는 다른 사람의 글을 따라 쓰며 영감을 얻거나 서술 방식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경주 여행 중 작은 독립서점에서 구매했던 김초엽 작가님의 '책과 우연들'이라는 책을 펼쳤다.
<책과 우연들 중 -김초엽 작가>
몇 권을 쌓아둔 노트의 아이디어 메모들도 다시 검토해보니 이미 누군가가 썼을 법한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점차 나는 경험도 밑천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중략--
지구의 밤하늘에만 달이 뜨는 것이 아니라 달의 하늘에 지구가 뜰 수 있음을 알았을 때, 그 장면을 사람들이 사진으로라도 직접 목격했을 때 그들이 지녔던 지구에 대한 인식은 약간은 반드시 변했을 것이다.
김초엽 작가님의 '책과 우연들'을 보며 필사를 하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깨달음을 얻은 부분의 주제는 관점의 전환이었다. 지구에서 달을 보듯이 달에서도 지구를 볼 수 있다. 미지의 어디선가에서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SF 세계관에서는 곰팡이, 버섯 그리고 식물도 무언가를 본다. 어느 순간 그 '전환점'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보는 건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구나.'
회사에서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인에게 끝없는 글감이 쏟아져 나오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럼 나도 내 눈이 아닌 관점의 전환을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보든, 달이 보든, 곰팡이가 보든 아무튼 관점을 더 넓혀서 보는 것이다. 한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갇혀있던 공간에서 나가야 했다. 그 공간의 이름은 한계였다.
앞으로는 좀 더 멀리서 나를 보고, 내 주위 모습을 보고, 다른 무언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아볼 계획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두근거리며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