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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파파 Oct 09. 2020

사랑하는 그대에게

“지영아, 절대 그런 거 아니야. 육아휴직하는 거 어렵게 생각 안 해. 너 생각해서 그런 거야.”

“내 생각해서 그런다는 말 좀 그만해. 솔직히 믿어지지도 않아. 오빠도, 어머니도, 우리 집도 다 똑같아. 어차피 한 치 건너 일이라고. 그냥 나만 전쟁이야.”     

육아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아내를 건드려도 터지고, 남편을 건드려도 터집니다. 자신이 중심인 삶을 대략 30여 년간 살아오다, 성인도 아닌 아주 작은 아가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베프끼리 해외여행을 가도 대판 싸우고 오는데, 하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서로 양보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대대대판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한 번에 큰 고통을 주는 고문도 있으며, 서서히 고문의 수위를 높이는 것도 있습니다. 중국의 물방울 고문은 같은 물방울을 계속 이마에 떨어뜨리는 고문인데, 이 고문이 가장 무서운 고문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중국의 물방울 고문을 체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인사이트’가 소개한 것이 있어 옮겨 왔습니다.       

     

“단지 물방울을 이마 위로 떨어뜨릴 뿐이다. 물방울로 어떻게 고문을 하냐고 의심한다. 실제 중국식 물고문처럼 2분 간격으로 이마에 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캐리 바이언의 심리 변화나 긴장 상태를 측정했다. 고문을 시작한 지 약 15분이 지났을 떄까지만 해도 어떠한 심정이나 자극도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고, 캐리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울먹였다. 체험을 끝마친 캐리는 ‘너무 무서웠다. 처음에는 물방울이 거슬리는 정도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커다란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며 흐느꼈다. 한 심리학자는 ‘자극이 반복되면 점점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물방울로 온 신경이 이마로 집중되며 점차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이라며, 정신적인 고통의 후유증은 신체적인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출처: 인사이트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가장 힘든 점을 물어보니, 대부분 끝나지 않는 육아라고 합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육아가 출산 후 몸이 아픈 것, 경제적 어려움, 당장 잠을 못 자는 것 등보다 더 두렵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물방울 고문에 대한 비유가 육아와 똑같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유사한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점점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오며,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는 점에서는 비교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꽤 지난 사연이지만, 네이트판에 기억에 남는 재밌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연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맞벌이였다가 남편이 살림한다고 해서 저 혼자 버는 중이에요. 아침에 8시에 칼같이 일어나서 제 아침 차려 놓고 출근 도와주고, 빨래하고 10시에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켜요. 그러고 청소기 돌리고, 화장실 청소까지 싹 해놓고 컴퓨터 게임 시작해요. 집 더럽다고 느낀 적이 없을 정도로 꼼꼼해요. 4시에 아이 데려와서 밥 먹이고, 잘 씻기고, 재우거나 무릎에 앉혀 놓고 또 게임해요. 제가 7시 반쯤 집에 오면 저녁 차려 놓고 게임하거나, 절 재워 놓고 게임하는데 8시에는 칼같이 일어나요. 생활하는 데 불편한 건 없는데, 뭔가 애매해요.”

출처: 네이트판 톡톡


댓글의 많은 수가 남편이 가정주부치고 엄청 잘한다, 할 일 다 하고 게임하는데 문제없다 등의 긍정적 의견이 많았습니다. 오래된 사연이라 댓글을 달 수는 없지만, 지금 댓글을 달 수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남편이 할 일 다 했으니 게임 해도 된다는 인식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지금 남편은 육아맘의 역할 중 육아 활동과 살림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현재를 같이 사는 것 외에도, 아이의 교육이나 미래 활동을 위한 준비, 밥 먹이고 씻기는 것 이외에 부모와 아이 간의 교감이 부족해 보입니다. 물론 이 정도 사연만으로 가족 관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반대로 이 정도 사연만으로 남편이 잘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육아 생활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번 물방울을 맞아 보니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가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합니다. 직장맘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맘이 된 초기에 느끼는 해방감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 보면 예전의 직장 후배가 팀장 승진을 하고, 아이에게 작은 사건 사고가 생겨 죄책감이 생기고, 육아와 살림이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는 견디기 힘들어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 키우는 것보다 직장 다니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하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 물방울 고문과도 같은 막연한 공포감과 막막함의 심리적 압박감을 이해하는 데에서 부부간의 갈등 해결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쯤 펜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든 곳이 어둡고 가로등마저 꺼져 있는 새벽 2시 즈음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차가 시동이 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가족끼리만 오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새벽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누가 뒤늦게 온 것인가, 혹시 도둑이 사전 점검하러 온 것은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어 얼른 나가 보았습니다. 

    

한 객실의 불이 켜져 있었고, 아빠는 무언가 화가 나 있는 상태로 정원을 돌다가, 이내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부부가 다투셨구나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누우려고 준비하는데, 다시 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자려는데 아무래도 시끌시끌한 게 이상해 나가 보았더니, 다른 차가 와서(나중에 알고 보니 친오빠였습니다) 객실 안에 있는 엄마와 아이를 태우고 퇴실을 하였습니다.     


이 부부는 낮에 저희와 한참이나 대화했었습니다. 추운 겨울 동안 집 안에서만 육아하느라 오랜 기간 봄이 오길 기다렸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너무나 행복해 보였던 가족이었습니다. 그런 다정한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 그저 일상적인 부부간의 갈등으로 넘기기에는 좀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우리가 늦은 시간에 다른 가족의 삶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혹시라도 날 사고에 대한 대비와 아이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멀리서 아빠가 나가고, 다른 차가 다시 와서 엄마와 아이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5개월 정도 지나 그때 오후에 보았던 너무나 행복한 가족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세 번을 더 방문하였습니다. 굳이 그 당시의 상황을 묻지는 않았지만, 우리 둘째와 같은 나이인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여러 얘기를 하다 보니 그 날의 일도 자연스럽게 대화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유난히도 길고 추었던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맞이 첫 여행을 온 것이고, 엄마는 너무 설레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소소한 대화를 하다가 서로의 말과 생각이 엇갈려 다툼이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얼마 만에 쉬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편하게 있는 게 낯설다고 했고, 아빠는 아침에 아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엄마들하고 카페 가서 얘기하면서 쉬지 않냐고 한 겁니다. 이 한마디가 시작이 되어 아빠의 늦은 퇴근, 엄마의 독박 육아가 주제가 되어 말다툼이 확대되었습니다. 이 얘기는 어느덧 둘 만의 대화가 아닌 우리 부부를 포함한 네 어른의 자기 얘기로 발전하였습니다. ‘다른 부부의 과거 다툼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부부의 이야기로도 이어지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부부 사이에 다툼이 될 만한 소재는 너무도 많습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두 어른의 공동 프로젝트인 육아라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으니, 육아를 처음 해보는 부모로서는 모든 상황이 낯설고 어려운 것입니다. 결혼하자마자 오래된 서로 다른 습관 때문에 많이 다퉈 왔는데 아이가 생기고, 갑자기 우리의 계산에 없던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 이 상황들이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안 된 우리에게는 그저 버겁기만 합니다.     


우리에게 어른이라는 건 우리 부모의 모습이 가장 일반적일 것이며, 우리 부모의 모습이라는 건 내가 기억하는 때부터인 초등학교 이후의 모습 또는 그 이상으로 성장했을 때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지금의 우리와 같이 온전한 부모로 갖추어지지 못했을 때의 모습은 우리 기억 속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갑자기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해주었던 것을 아이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어쩌면 사회의 눈초리일 수도 있겠습니다)과, 나는 아직 내 삶을 아이에게 모두 맞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혼란스럽게 교차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아를 하면서, 달리 말하면 부모가 되어가면서 부부간의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은 ‘육아 시간’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 아이가 태어났지만, 보통의 아빠와 엄마에게는 아이의 탄생에 짓는 함박웃음 뒤에 걱정이 함께합니다. 아빠는 내가 이 아이와 내 아내를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며, 엄마는 나도 아직 어린 아이인데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하는 걱정일 것입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걱정은 아이가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갈등의 양상으로 발전합니다. 아빠의 머릿속에는 경제적 고민이 다른 걱정을 더 앞서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생활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이직, 승진을 위한 자기계발, 매일 한 대 치고 싶은 상사에게 웃으며 잘 보이는 것 등에 대한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반면, 엄마는 아가가 집에 오는 순간부터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수유, 2시간마다 깨는 아이 보호, 아이 목욕, 수많은 아이용품들 구매 등으로 그동안의 삶이 180도 변하게 됩니다. 엄마가 처음인 이 서투른 엄마에게는 이 모든 상황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경험해 보니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며, 세상에 아이와 나 둘만이 갇혀버린 이 현실이 너무 벅차게 됩니다.     


이 힘든 하루는 ‘100일의 기적이 온다’는 100일이 지나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버틸 뿐이며, 막상 100일이 지나니 조금 나아질 뿐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또 하루를 좌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의 웃음과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기에, 내일 또 아이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힘이 되고는 합니다.     


이처럼 아이의 출생과 동시에 부부의 머릿속은 서로 다른 고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부간의 고민이 다르다고 하여, 요즘 같은 시대에 서로의 고민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부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도 출산 전까지는 대부분 직장을 다녔으므로 지금 아빠가 고민하는 경제적 활동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남자 직장인은 직장 생활한 지 5년 전후반인 사회초년생이며, 직장에서 큰 소리를 낼 만한 위치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 것, 주말에 나가서도 일해야 하는 것, 회사에 가면 연락이 잘 안 된다는 것, 승진을 위해 자기계발도 해야 한다는 것 등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독박 육아에 대한 원망을 남편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어떤가요. 아빠는 돈을 벌고,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구시대적 남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칼퇴를 위해 온종일 눈치 보고 일하고 돌아와 온종일 아이와 전쟁을 벌인 와이프와 교대하여 밀린 설거지를 하고, 아기와 놀아 주며, 분유를 타고, 아이를 씻기고, 아기띠로 아기를 재우는 것이 요즘 아빠들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요즘 아빠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시대에 뒤처진 아빠입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 이런 상사는 있었습니다. “설거지시키면 해. 청소하라면 하고. 근데 나는 막 대충해. 설거지하다가 그릇 깨버리고. 그럼 다음부터는 안 시켜. 그럼 편해지는 거야”라고 말하는 놈이었습니다. 상사가 하는 말이니, 장단 맞춰 주려고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역시”라고 대답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합니다.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니 요즘 아빠의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겠습니다.    



 

저는 요즘 부모만큼 착실하고, 가족에게 성실한 세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격동의 대한민국을 겪으며, 남자와 여자의 성적 차별을 좁혀 보고자 하는 시대적 노력에 따라 남녀 모두 멀티적 삶을 살아가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인식하고 있는 아빠는 경제적 활동을 하고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확립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아빠는 경제적 활동은 물론 가정 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엄마는 가정 활동에 더해 경제적 활동에 대한 부담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세대는 남녀가 평등한 세상과,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정해진 과거 인식 사이에서, 누가 어디까지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선이 분명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기반으로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의 힘든 경제적 활동이 이해가 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육아 활동 참여에 대해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반면 아빠 입장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엄마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경제적 활동을 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우리 부모 세대가 무난하게 했던 육아와 살림에 대한 어려움 호소가 가슴에 와닿지 않는 불만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부간의 다툼이 아빠가 능력이 부족해서인가요, 엄마가 우리 부모 세대처럼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해서인가요. 아빠와 엄마 모두 가정을 꾸려 나가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저는 부부간의 육아에 관한 다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대한민국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아는 우리가 배운 것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등교육을 받으며 자라서, 더 나은 곳에 취업하여 서울에 괜찮은 아파트에 살고, 중형차 이상을 타고 다니며, 적당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삶을 목표로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은 순간부터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을 잘해야 하는 것으로 강요받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교육받은 것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입니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라고 하니 갑자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아빠, 엄마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는 그동안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교육받은 것과 전혀 다른 육아를 잘하도록 강요받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회의 구성원인가, 아이를 잘 키워야만 사회에 기여하는 부모인가에 대한 정체성이 모호하게 됩니다.     


또한 정체된 사회 구조 탓입니다. 육아는 템빨입니다. 또한 베이비시터가 있다면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처음 아이를 낳아서 베이비페어를 가보면 다양한 육아용품과 100만 원이 아무렇지 않게 써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이 든 경험이 모두 있을 겁니다.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 또는 이모가 몇 가지 비싼 물건을 사주면 그나마 낫지만, 대부분 부부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육아용품 가격은 정말 절망적입니다. 이에 대해 최근의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옛날에는 그런 거 없이 잘도 키웠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정말 그놈의 옛날에 애 키운 얘기는 참 지겹게도 듣습니다.     


부부간의 육아로 인한 다툼 문제는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지인 부부와 얘기하다 보면, 사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 중의 하나가 무엇 무엇으로 다툰 적이 있다는 얘기들입니다. 부부간의 공통 프로젝트는 그것이 무엇이든 갈등의 소지가 있습니다. 간간이 대학에 강의를 나가다 보면 대학생들 조별과제만 해도 서로 미루고, 다퉈서 감정이 많이 상하고는 합니다. 부부는 육아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 양가 부모님 문제, 서로의 생활 습관 등 갈등의 소지가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요즈음의 현실은 정말로 남녀가 평등한 건지, 세상이 과연 편리해진 건지, 공정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건지 등 모든 것이 과도기적인 사회입니다. 부부 서로 간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안정되지 않은 사회로 인한 갈등의 요소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깊어지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너무 묵혀 둔 것이 많아, 그동안의 어떠한 주제이든 다시 꺼내면 똑같이 다시 다툽니다. 해결되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지만 싸우기 싫어서 넘어간 사안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했던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지나간 일 잘잘못 따지지 않고 그대로 묻어 버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과 관련하여 제 얘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교회를 다닙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요요’를 가장 잘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로 아이들을 모으고 다니시던 동네 교회 전도사님께서 예배 끝나고 아이들 앞에서 요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고 하셔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저의 작은 재롱잔치를 보면서 박수 쳤었던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짜릿합니다. 와이프도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교회를 나갑니다. 우리 딸이 식사하기 전에 기도를 참 잘합니다. 아빠, 엄마, 동생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빼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그 작은 입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기도할 때는 이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기에, 부부간에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쉬워야 하는데, 종교의 힘을 빌어도 참 쉽지 않습니다. 반성하게 됩니다. 종교의 힘을 빌려서라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혼자만 전쟁 치르게 해서 미안합니다. 같이 전쟁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한치 건너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어느 세대나, 누구를 대표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한 남성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아빠로서 세상의 모든 김지영에게 “고생했다, 미안하다, 잘하고 있다”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모든 가정의 김지영과 그 남편이 앞으로 함께하는 ‘동행’의 발걸음을 내딛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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