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야 한다는 강박

그렇게 남기지 못한 것들만 무한대...

by 카머

글을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내가 겪는 모든 일을 '소재화' 해야 할 것 같다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이런 일은 이렇게, 저런 일은 저렇게 남겨놔야 되지 않을까 바쁘게 머리를 굴리다 보면

어느새 가볍게 고민하던 마음은 점점 부담감으로 무거워지고,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압박감이 결국 쓰는 것 자체를 외면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손가락이 가는 대로 뭔가를 써보는 걸 노력하고 있다.

거창한 글, 무게감 있고 인류사 중대한 깨달음(...)을 널리 설파하는 글이 아니라

화려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


무엇보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진리를 혼자서 깨달은 그런 선구자가 아니라,

하루하루 남들이 살아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나름의 일상 속에서 소소한 깨달음과 앎을 얻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아마 대단한 철학가나 구도자가 아닌 모두가 그럴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쓴다는 행위 자체를 너무 무겁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쓰고, 남기고, 기록할 자유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어떤 게 잘 쓰여진 글, 어떤 게 의미 있는 글인지를 수없이 판단하면서

가볍고 성긴 글 쓰기의 가치를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님에도

거창한 게 아닐 거면 남겨서 뭐하나, 그냥 대충 뭉뚱그리고 말지

하면서 나의 경험도 점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돼버린다.

사실 그 나름 대로의 소박한 재미와 의미가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논리 정연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 왜 어렵지 않으랴.

하지만 동시에 가벼운 마음과 손가락이어야 쓰는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가볍고 즐거운 글쓰기만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 자체로 가로막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명백한 진리를 왜 알지 못했던 걸까?


어려워서 피하고, 쓰지 않고, 말하지 않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누구도 대신 기억해주지 않는 상흔 뿐이다.

내가 아닌 누구도 내 삶의 진실, 잠시의 통칠을 대신 말해주거나 기억해주지 않는다.

나만이 나를 기억하고, 그것을 글이나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완성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결국 가벼운 마음으로 펜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건

오직 나 자신, 온전히 나에게만 주어진 임무일 따름이다.

그것을 잊지 말고 계속 뭔가를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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