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휴가를 보낸 후

안도감과 자책 사이의 미묘한 마음

by 카머

8월의 어느 주말,

부모님이 서울에 있는 나의 집에서 이틀을 보내고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제안한 일이었다.

집이 비어있겠다, 멀리 가지 않고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면

돈도 덜 들고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부모님은 생각보다도 대책이 없었고

서울에 와서도 언제 어떻게 돌아가네

더 있다 가네 마네 먼저 돌아가겠네 하며 아웅다웅하는 걸 보니

생각 이상으로 마음이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 기분 상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이왕 모인 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면 좋겠는데

동생마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 만남이 가족 전체에 대한 실망감과 피곤함으로 돌아왔다.

또 이 모든 사람의 기분과 여건을 신경 쓰는 건 나밖에 없지.


피곤하다 피곤해,

하면서 잠자코 있다가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이야기를 꺼냈다.

힘들고 집에 가고 싶으면 이야기 하라고.

아니 애초에 집에 가고 싶은 이유와 각자가 원하는 건 뭐고,

동생에게 서운하면 서운한 마음을 삭이는 대신

이래저래 서운하고 아쉽다는 말이나 바로 하라고.


말하면서도 너무 화내고 비난하는 투로 들릴까 걱정했지만

이야기는 생각보다 원만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부모님은 그랬나 하고 머쓱해하면서도

각자 입장이 달랐던 나름의 생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볼 때도 썩 낫지 않던

몸 한구석의 답답함이 묵은 체증처럼 사라져버렸다.


각자의 불편함과 서운함, 피곤함, 부담을 꺼내놓고

'나는 그랬다'고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입장, 엄마는 엄마 입장, 아빠는 아빠 입장에서

각자의 욕구와 충족하고 싶은 바람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풀어진 우리(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화투 내기를 시작했다.


엄청나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며 누구나 겪는 불편한 순간이겠지만

이 대화가 나에게 유독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나도, 부모님도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때로는 차라리 화를 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서툰 부분이 있다.

이야기하지 않는 것,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덕분이다.


덕분에 눈에 크게 보이는 갈등은 없지만,

잔잔하게 해결되지 못한 서로를 향한 서운함이

내게는 언제나 가족 사이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요인이었다.

서운하다고 굳이 집어내고 드러내지 못하는 것,

그렇다고 쿨하게 잊어버리거나 넘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은은한 아쉬움만 남은 상태 말이다.


나는 평소에 부모님에게마저도(오히려 가족에게 특히)

잔소리를 많이 하고 은연중에 권위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편인데

이런 얘기가 그렇게만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덕분에

이야기를 통해 적어도 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나름 자신들의 감정에 대한 환기는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서로를 향한 분노나 미움에 머무르면서

통제할 수 없는 상대와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에 실망하는 대신,

나서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그 뒤엔 말아보자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애써 서운함을 남기기보단 최선을 다해 풀어보자고,

그러면 우리는 해볼 만큼 해본 거라고 말이다.

말하지 않아서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마음을 숨기는 대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기대를 맡겨보자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부모님을 떠나보내면서,

마침내 혼자가 되는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면서도

부모님의 불편함을 잘 챙기지 못하고 안도하나 싶어

부모님(과의 시간)을 대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님이 떠난 자리에서,

마냥 즐거웠던 순간보다도 내가 가장 솔직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며

짧은 이틀 간을 회상해본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지나간 자리와 이 집에서

나는 또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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