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학위 논문에 대한 단상
1,300회 조회를 보며
어느덧, 로스쿨에서의 3-1학기가 끝이 났다.
이는 곧 로스쿨에서 1학기만 끝내면 로스쿨에서의 생활도 끝이고, 바로 다음에 변시가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3년 동안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한지도 벌써 횟수로 4년째가 되었다.
2019년도 2월에 석사학위와 함께 졸업 했고, 그 뒤 몇 차례 사건을 거쳐 현재 로스쿨 3학년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의 학위 논문이 나오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품과 정성이 든다.
나에게 내 석사학위 논문은 더욱 그랬다. 원래 하려던 주제가 예심까지 봤음에도 엎어지고,
석사과정을 포기해야할까라는 고민 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우의 추천으로 현재 주제인 아이돌 팬덤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 논문을 찾아가보니 어느새 내 논문을 찾아서 읽어본 사람들이 1,300명이 넘었다.
석사학위 논문 치고는 확실히 많은 숫자이다.
이렇게 학위 논문이 많은 이들에게 조회되고 있다는 것은 흥분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어디에선가 얼마나 까이고 있을지는 않을지, 누군가에게 세미나의 대상으로 공격당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말이다.
흔히 논문은 낳는다고 한다. 내 정성과 품을 들여서 마침내 낳게 되는 논문은 품 안의 자식처럼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미 세상에 나온 것을 다시 가르칠 수도 없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대로 가르친 그대로의 자식이 누군가에게 비난당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만으로 글을 바라보게 된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논문이다. 원래 주제가 엎어지고 거의 포기상태로 있다가,
10월 말에 부랴부랴 교수님께 저 이 주제로 논문 쓸거라고 프로포잘을 드리고서,
정말로 한달 하고 보름만에 쓴 논문이다. 12월 15일쯤이 석사 본심을 위해
교수님께 논문을 미리 드려야 하는 기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밤을 새워서 논고를 교정하고 새벽 6시에 친우에게 논문을 제본해서 교수님께 드리기를 부탁하고서는
거의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 친우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이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거의 생방송이랑 다름이 없었다.
주제를 선정했지만 주제를 직접 겪어본 사람임에도 너무도 쌓여있던 정보가 없었다.
결국 나는 디지털 고고학자-친구의 표현에 따르면-가 되어서 과거의 기록들을 다시 차곡차곡 아카이빙하고
필요한 이론을 동시에 공부하고 인용하면서 논문과 책을 찾았다.
고향집에서 칩거하며 논문을 썼는데 필요한 책이 부족하여 날을 잡고 서울로 가서 다니던 대학의 책을 빌려오고, 어쩔 때는 고향에 있는국립대 도서관에 출입허락을 맡고서 들어가서는 책을 필사하고 스캔해서 참고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떻게 논문을 준비했는지 알지도 못할 일이다.
다 쓰고 보니 논문은 150장을 육박했다. 약 45일 동안 150장 정도를 썼으니, 거의 하루에 3장씩 쓴 셈이었다.
당시 나의 생활은 거의 논문중심주의였다. 그냥 깨면 밥먹거나 TV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논문 쓰는 데에 썼고, 졸리면 잠을 잤고, 새벽이라도 눈이 떠지면 그냥 논문을 썼다.
하루종일 논문을 쓴다고 앉아있으니 허리가 아파 어쩔 때는 서서 쓰고, 누워서도 썼다.
그렇게 쓴 논문을 다시 보면,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석사논문이 부끄럽다고 하지만, 나는 딱히 부끄럽지가 않았다.
그 45일 동안 나는 죽을만큼 치열하게 글만 썼다.
글이 사람이 돼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사실 논문을 쓰는 것은 45일이 걸렸지만, 그 논문이 담고 있는 지층은 몇 년이 된 것이었다.
아이돌 팬덤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 그리고 실제 팬덤 사회 안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
그리고 거기에는 담지 못했던 얘기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논문을 완성되었고
나는 석사학위 논문 본심사를 잘 디펜스하여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끝내 제목을 바꾸라는 심사위원 교수님의 말은 지키지 못했다.
그 제목을 바꾸는 것은 글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어서, 바꿀 것이냐는 지도교수님의 질문에도 나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 글을 낳은 나에게는 스스로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장 지루하고 끔찍했던 논문 수정 기간이 지나고 논문은 세상에 게시된다.
그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쁘지가 않고 허탈했다.
그 작은 파일 하나를 위해서 내가 쓴 시간이 생각나서 이상하게 씁쓸했다.
수정파일을 업로드라고 석사과정 졸업을 확정하고서
맨날 논문을 수정하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대략 몇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정말 단 하나의 생산적인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앉아만 있었다.
그것은 그 카페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 내가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복수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을 진학할지, 아니면 다시 1년을 입시를 준비해서 로스쿨을 갈지를 고민하던 찰나에
로스쿨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고 6개월만에 고향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석사논문을 잊힐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때 쓴 논문을 과제에 인용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에 대한 관심은 이제 문화산업이라는 영역으로 넓어졌다. 이제 나는 퍼블리시티권과 저작권, 문화산업법과 대중음악발전법 등을 살펴보면서 관심의 영역을 스포츠연예엔터테인먼트법을 옮기고 있었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이쪽 법무를 하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로스쿨에서도 교내 학술지에 글을 두 개나 투고했다.
이제 겨우 토요일에 3-1이 끝났지만, 다시 방학 프로그램과 변시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지금도 가끔 나는 석사논문을 열어본다.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이때의 나는 꾸역꾸역 그 시간을 마치 진물처럼 곱씹으며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썼다.
지나간 3-1의 결과가 무척 두렵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기에, 예심 논고가 엎어지고 불과 심사 45일 전에 논문을 쓰겠다는 욕심과 함께 꼭 졸업하겠다는 조금은 말도 안되는 결심을 했던 그때처럼, 다시 나는 가야한다. 이렇게 가끔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마음의 교차로를 정리하듯이 글을 쓴다. 그래서 때로 글을 쓰는 것은 마치 기도를 드리는 것과 같다. 기도를 드리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또 쓴다.
오늘도 나는 또 한번의 좌절 하나를 맛보았다. 애초에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혼자서 무리해서 기대했던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불가능한 것들을 상상하고 꿈을 꾼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격동하는 이 마음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양보할 수 없는 소원'을 위해서 글을 쓴다, 아니 경배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