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마녀의 테마에세이
별다른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는 가끔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 다름아닌 음악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과거의 어느 시간을 함께했던 음악을 소환함으로써 우리는 손쉽게 그 음악과 함께했던 과거의 그 어느 한 때로 되돌아간다.
물론 타임슬립을 하자고 이 바이닐 레코드를 구매한 건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되돌아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시간을 잠깐 지금으로 불러 와 보기로 한다.
그렇다.
코로나 한참이던 무렵,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앞이 막막하던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 갇혀 뜨개질을 하며 밤을 새는 것이었다. 영문 모를 두통에 시달리느라 책조차 읽을 수 없었던 나는 손이라도 부지런히 놀려야 그 숨막히는 답답함과 절망감을 잊으리라는 절박함으로 긴 밤들을 지새우곤 했다. 그 긴 밤들을 함께했던 앨범이 바로 이 앨범이다.
물론 휴대폰으로 듣는다고 해서 문제될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음악 또한 촉감으로 느껴야 안심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다. 컴팩트 디스크나 바이닐처럼, 음악 또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지며 그 촉감을 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연인의 속살처럼.
그렇게 음악을 피부로 느끼는 동안, 어느 새 나는 이 앨범을 디지털 음원으로 들으며 뜨개질을 하느라 밤을 새우던 2년 전의 나로 되돌아가고 만다. 결단코 내 의지가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반강제적인 타암슬립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때와 다름없이 혼자 남겨져 불면의 밤을 지새는 나.
과거의 그 어느 한 시점에, 내가 뭘 남겨두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남겨둔 그 뭔가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음악을 빌려 나를 과거로 되돌려놓은 것처럼. 그렇게 나는 어느 새 2년 전의 나로 되돌아와 있다.
과거에 남겨두고 온 것.
아니 과거에 버려두고 온 것.
찾아서 도로 현재로 들고 와야 하는 그 어떤 것.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악몽이거나.
어쩌면 달콤한 착각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
일주일째 내리고 있는 이 지독한 비와 싸우지 않고도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이거나.
그 무엇도 납득할 만한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찾느라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두고 온 게 있다면 찾아서 가지고 돌아가면 된다.
커피숍에 두고 온 지갑이나 휴대폰처럼 도로 찾아내서, 혹은 주워서 가지고 돌아가면 된다.
그때까지는 돌아온 과거에 머물러 있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