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든 운명이든, 일찍부터 731 부대와 위안부와 아우슈비츠와 5.18과 체르노빌을 그 참혹한 역사를 다 꿰뚫고 있던 나는 결혼도 아이도 내 인생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결혼을 한 건 1)급격히 기운 가세 2)사람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교육받고 그게 통했던 사실상 마지막 세대(79년생).
언제나 모친과의 언쟁에서 모친은 언제나 막판에 “내가 너보고 애 낳으라고 한 게 그렇게 죄냐“고 피를 토하시는데 이유는; 피임하려는 내게 매우 험한 막말을 해가며 애 낳으라고 닦달한 사람은 시어머니가 아닌 모친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임을 했건만 어떻게 두 번이나 실패했는지는 나로서도 어리둥절.
그리하여 우리 모녀의 다툼의 끝은 항상 무승부로 끝이 났다. 서로 감정 상해가며.
그런데 얼마 전, 아마 지금으로부터 두세 달 전쯤.
문득 모친께서 하시는 말씀이.
”요즘은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 같다. 애 낳으라고 해서 미안하다.“
그리하여 이기기는 내가 이겼는데 이게 이긴 건지 뭔지.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하나 축복받은 건.
자유 만주주의를 거저 누리며 살아왔던 세대라는 거지.
내 윗 세대가 피흘려 일궈낸 시대에 무임승차해서.
난 그랬지만, 이제는 애들한테 미안해진다.
물려준 것도 없는데 자기 힘으로 노력해도 성공할 가망도 없는,
거기에 내란수괴 하나를 제대로 못 끄집어내려 분단국가에 후진국에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이런 나라에 애들을 낳아놨다.
내가 내란부역세력에 속한 부모가 아니라서 미안하고
내가 친일부역세력에 속한 부모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내가 그런 부모였다면 최소한 아이들은
철밥통 기득권 안에서 세상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겨서는 안될 싸움에서 이겨서 비참하고
결국 내가 옳았다는 사실에 아이들을 볼 낯이 없다.
이 나라에서 애들을 낳으라고 말하는 그 자는 과연 누구인가.
*뜬금포 사족: 한덕수야 너는 양곡법 말고 그냥 양곡을 거부하거라. 그리고 굶어죽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