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2003)

단편소설

by Kalsavina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군내 의문사가 약 300여건에 달한다는 이야기만 듣지 않았어도 품일은 아들 관창을 군대에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 역시 군대에서 3년을 막말로 ‘쌔가 빠지게’ 채우고 돌아와 소위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제대군인들의 관습적인 맹세를 덩달아 따라했던 그때 그 시절을 가마득한 옛일로 회상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으니까.

“보소. 저것 좀 보이소. 저래가지고 내가 창이를 우째 군대에 보낸단 말인교? 내 속이 다 뒤집어집니데이.”

품일의 아내 난영은 TV를 보며 어느 새 붉어진 눈을 손 끝으로 슬쩍 닦고는 탁자 위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풀었다. 브라운관을 가득히 메운 여인네는 그녀의 눈 앞에 들이댄 카메라 렌즈를 목소리만으로 깨뜨려 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지니기라도 한 듯 앙칼지게 오열을 해대고 있었다. 그녀의 흰 소복이 32인치 브라운관의 전면을 희게 물들이자 웬만큼 참으며 TV를 보고 있던 품일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는 아내에게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라는 고함소리가 나오기 전에 얼른 신문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가 사회면을 펼쳤다.

<XX당 B1총재 아들 B2씨 병역비리 수사 진전 없어>

품일은 신문을 탁 덮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새 시계는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관창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한 후 난생 처음 맛보고 있을 짜릿한 자유의 맛이야 오죽할까. 아들의 심중을 백분 헤아려 그는 모처럼 ‘새내기’인 아들의 고삐를 마음껏 풀어 주고 있는 참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내 아들 살려내! ”

“뼈빠지게 키워서 보낼 때는 나라 지키라고 보냈지 죽으라고 보냈단 말이냐아!”

건장한 남자들의 팔에 붙잡혀 끌려나가는 여인의 버둥거리는 두 발은 맨발이었다. 그 맨발이 유난히 뇌리에 남았던 것일까. 그러나 여인이 안쓰러운 그의 심중과는 반대로, 그는 어느 새 여인의 앞에 선 군의관이 되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자살 맞습니다. 고마하고 돌아가이소.”

군의관의 대사치고는 너무 단순무식한 대사였다. 그가 그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여인은 글자 그대로 형형히 빛나는 동공의 둥근 윤곽이 깨끗이 드러나도록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놈아! 네놈은 아들이 없냐? 네 놈 아들이 군대 갔다가 관에 누워서 돌아왔을 때도 네 놈이 꼭 네 놈 같은 놈한테 그 따위 소리가 듣고 있을 것이냐아? 대답해 봐라 이놈아!”

다음 순간 눈꺼풀이 번쩍 들린 품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안방 천장에 매달린 둥근 형광등의 희부연 윤곽이 어둠 속에 드러난 모습이었다.

꿈을 깨고 난 후 그는 좀처럼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꿈을 꾸는 내내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의식하면서 꿈을 꾸는 일도 그에게는 드문 일이었거니와, 다른 것은 몰라도 마지막에 자신을 노려보며 소리치던 여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현실에서 들은 목소리마냥 생생하게 그의 가슴에 박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그것도 행여 잘못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외동아들. 집안의 대들보.

‘아들이고 딸이고 안 가리고 막 만들어 낳을 걸.........’

평범한 서민 출신 총각 처녀가 결혼해 차린 신접살림이 으레 그렇지만, 2차 베이비 붐을 갓 넘긴 시기인 80년대 초에 결혼한 품일과 난영 부부의 형편은 안심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의 산아제한 정책을 무시한다 쳐도 그들 신혼부부의 세대는 이미 ‘자식이 재산’으로 여겨지던 윗대의 관념이 한물 건너가 버린 세대가 아니었느냔 말이다. 그런 마당에 손쓸 겨를도 없이 결혼 석 달째 아이가 들어섰다. 첫 아이라 함부로 지울 수도 없었다. 겁이 더럭 난 그는 아내와 의논했다. ‘생긴 애는 낳아야겠지만, 둘째는 웬만하면 낳지 말자.’

그러나 팔자에 있는 자식은 관창이 전부였던 듯, 피임이니 뭐니 애쓸 필요도 없이 아이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결코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애 하나쯤 더 못 키울 정도로 찢어지게 살아 온 건 아닌데.......그때는 분명 현명한 처사였음에 분명한 신혼시절의 결정을 이제 와서 그는 후회하고 있는 셈이었다.

관창은 아예 작정하고 있었던 듯 대입 첫 학기인 이번 학기를 마치자마자 바로 입대할 작정으로 신검(신체검사)을 받았다. 일찍 갔다올수록 좋다는 주위의 충고를 따른 결정이었고 품일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신검에서 현역 판정을 받아 돌아오자 그는 알 수 없이 불편해지는 자신의 심중에 당황했다. 처음에는 그저 아들을 듬직하게 키워내기까지의 그간의 세월에 대한 묵직한 감회 같은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와 때를 같이하여 허원근 일병의 자살이 25년만에 타살로 밝혀지는 희대의 드라마가 터진 것이다. 그제서야 품일은 자신의 심중이 그토록 불편했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깨달았다. 그거야 남우(남의) 아들들 얘기제. 남우 아들들 얘기일 뿐이제. 적어도 군대에서 죽는 젊은이가 한해에 삼백 명이라는 얘기, 그러니까 소위 300이라는 숫자가 거론되기 전까지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했던 품일이었다. 그런데 자식 걱정하는 마음에는 에미 애비가 매한가지였던지, 간밤에 난영은 막 잠들려는 품일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던 것이다.

“보이소, 창이 아버지. 자능교?”

“안 잔다. 머 할 말 있나?”

“이달 초에 주문진에서 보초 서다가 목에 총 맞고 죽었다는 춘열이라 카는 머스마 있지예. 자살이라 카믄서 신문에 났던.......그 머스마가, 창이 학교 다녔다 카길래 아무래도 마음이 안 좋더니만 오늘 알고 보니까네 창이 선배라 안 카능교. 당신 아까 저녁 때 테레비(텔레비전)끝까지 안 봤지예?”

관창은 그런 말은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었다.

“자는데 죽은 아 얘기는 왜 하노? 퍼뜩 자자.”

“퍼뜩 자자꼬예? 하나밖에 없는 새끼가 내일 모레 군대 간다카는 마당에 그런 얘기 듣고도 당신은 밤에 잠이 올케(옳게) 오는교? 참말로 이런 사람을 아 애비라고?”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노? 본론만 말해라.”

“오늘, 영준이 엄마랑 전화 통화를 했는데예, 그 뭐라 카더라.......? 그, 병역처분변경원이라 카는 걸 내면 군대에 안 갈 수도 있다고.......”

“고마 시끄럽다!”

“와 이라시능교? 아 깨겠심더.......”

울상이 된 아내를 외면한 채 뒤로 돌아누워 이불을 덮어쓰고 잠을 청했더니, 아니나다를까그토록 사나운 악몽을 꾸고 말았다. 그날따라 코도 골지 않고 옆에서 새근새근 자는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하필이면 자기 전에 그런 얘기는 해 가지고.......

품일은 불도 켜지 않고 머리맡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더듬거리며 잡아 끌어온 후 문갑 쪽으로 손을 뻗어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돌아누워 자던 난영이 몸을 뒤척이자 흔들리는 이불사이로 부연 담배연기가 비틀거리며 솟아올랐다. 새벽이 가까워졌는지 창문 밖으로 내비치는 바깥이 퍼런 색을 띠는 것과 동시에 방 안이 아주 조금 더 환해졌다.

“보이소! 창이 아버지. 이것 좀 보이소.”

공휴일을 맞아 모처럼 늦잠을 자다가 느지막히 일어난 품일 대신 조간 신문을 먼저 읽고 있던 난영이 느닷없이 품일의 옆으로 다가와 신문을 펼쳐보였다.

“와? 또 무슨 기사가 났는데?”

“여기, 흠선생님이 쓰신 책 얘기하는 기사가 신문에 났네예. 함 보이소.”

신문을 받아든 품일은 아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활자에 눈길을 주었다.



김준용 씨 신간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화제


<제국의 말발굽>, <계백을 위하여> 등 격조높은 역사소설을 집필한 중견소설가 김준용씨가 최근 단편집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를 펴냈다.......(중략).......83년에 동(同) 작가가 쓴 단편 <황산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품은 군내 의문사를 이이러니하게도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특이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중략) 이 소설은 현재 문학평론가 H모씨를 비롯한 수많은 문학인들의 공박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인 김준용씨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 당분간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흠선생님 책이 신문에 실릴 줄은 몰랐네.......”

흠선생님은 흠순을 부르는 난영만의 독특한 별칭이다. 흠순은 족보로는 품일의 삼촌 뻘이 되는 집안의 어르신이지만 실제로 나이는 품일보다 서너 살밖에 많지 않았다. 난영에게는 시댁 어르신이 되는 분임에도 난영이 그를 가리켜 ‘흠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흠순의 본명은 김준용으로 직업은 중견 소설가였다. 난영은 집안에 소설가가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소설가 흠순 선생님’하고 그의 호를 깍듯이 부르는 예의를 보이다가, 그것이 너무 번거롭다는 이유로 자기 마음대로 그를 ‘흠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전화 하셔서 새 책 내셨다는 말을 하긴 했어도......”

“전화 왔다꼬? 뭐라 카던데?”

“그냥 요번에 새로 쓴 소설 출판했으니까 함 보라 카데예. 그라믄서 당신하고 한 번 오라 카데예. 친필 사인을 해주신다 카믄서 웃습디다.”

흠순의 너털웃음은 안 들어도 오디오였다. 그날 밤, 그는 흠순이 오래 전에 계간지에 실어 화제가 되었던 소설 하나를 생각해냈다. 품일이 그 소설을 읽은 날 그들은 몇날 며칠을 술로 새우며 시끄러운 두 사람만의 축제를 벌였었다. 소설가 김준용이 자신의 호를 흠순으로 정한 것도 그 술잔치가 벌어진 후의 일이었다.

그 당시 문제가 되었던 소설 제목은 <황산벌>이었다. 내용인즉 신라 시대의 진짜 화랑 관창과 진짜 품일 장군의 눈물겨운 실화를 재현한 것이었다. 본시 타고나기를 도통 문학과는 인연이 없이 태어난 품일이 그 소설을 읽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들 같은 짜가가 아닌 진짜 품일 장군과 화랑 관창의 등장. 그런데 내용은.......

“아재요. 내용이 이게 뭡니꺼? 애비한테 ‘계백의 목을 가져오겠다’카고 장렬하게 나가야 할 관창이 왜 애비한테 엎드려 빌어야 한단 말인교?”

<황산벌>의 내용인즉슨, 살아서 돌아오지 말라는 품일 장군의 명을 씩씩하게 받잡아 싸움터로 나갔다는 역사의 기록과는 반대로 관창이란 놈이 애비한테 ‘죽으러 나가기 싫다’고 애걸복걸하다가 애비한테 등 떠밀려 할 수 없이 싸움터로 나갔다는 내용이었다. 꼭 자기 부자의 이름의 원조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들 역사 속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외경심을 보내던 품일은 그만 비위가 상해 버린 것이었다. 그 때 준용은, 아니 흠순은 품일 장군이 아닌 O물류유통 조합장 품일을 상대로 몇 시간에 걸쳐 자신의 작품과 작가적 철학에 대한 일장 연설을 했다.

“결국 관창은 싸움터로 나갔고, 죽어서 돌아왔다고 썼으니 역사를 감히 뒤집었다는 욕은 듣지 않아도 되게 쓴 거지. 하지만 내가 쓰고 싶었던 건 말이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꽃다운 젊은이의 생명보다 중한가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었어. 관창이 용감했나 비굴했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죽었느냐 살았느냐는 더욱 중요하지 않고. 전쟁이 나면 싫든 좋든 죽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싫고 좋고가 웬 대수야. 내가 그리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말이지. 부성애, 부성애라는 것이었어. 살려달라는 아들의 살고 싶은 간절함은 하위 테마이고, 주요 테마로서 차마 자기 입으로 아들에게 나가서 죽으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애비의 고뇌를 그리고 싶었다 이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신라의 대영웅인 김유신을 적절히 써먹은 거지. 그 영리한 꾀돌이가 전쟁을 틈타 장차 자신에게 위협이 될 권력들을 미리 제거하는 과정에서 관창과 심지어는 조카인 반굴조차도 죽여나갔다는......난 자세한 고증을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발상 자체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대략 이런 내용의 지리멸렬한 장광설을 품일은 모두지 이해되지 않는 머리로 그저 멍청히 듣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인가? 십 년 전? 십오년 전?

“아직 애비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내 말을 이해 못할지도 모르겠구먼. 살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말했던 흠순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흠순의 말을 되짚어 볼 때 아마 관창이 기저귀 차고 뽈뽈 기어다녔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흠순과 나누었던 이야기의 모체인 그의 작품 <황산벌>을 떠올리는 동안, 품일은 왜 내가 진작 <황산벌>을 기억해내지 못했나하고 손으로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그 책이 집에 있나? 그는 잠시 관창의 방을 비롯한 온 집안을 뒤져 <황산벌>이 실린 계간지를 찾아볼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찾아가야지. 찾아가야겠어. 아닌게 아니라 안 뵌 지 오래 되기도 했제. 진작 찾아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양반을 찾아뵈면,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창이 문제만이나마 속시원해 하소연할 수 있을 것을. 그래. 언제쯤 찾아뵈어야 할꼬?



김준용이 살고 있는 지리산 산자락을 찾아들기에 앞서 품일은 관창을 시켜 흠순의 최신작을 서점에서 사 오도록 시켰다. 그와 동시에 오래 전에 절판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한 단편<황산벌>이 수록된 책을 찾아보도록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게 흠선생님이 쓰신 책이란 말이죠? 그러고 보니 소설가라는 말만 들었지 한 권도 그분 작품을 안 읽었네.”

두 권의 책을 들고 돌아온 관창은 그렇게 자신의 겸연쩍은 심중을 슬며시 표명했다.

관창이 가져온 두 책 중 한 권은 <황산벌>이 뒷부분에 수록된 장편역사소설 <제국의 말발굽>(용케도 절판되지 않고 있었다)이었고, 다른 한 권은 흠순이 최근에 출간한 신작이었다. 신작 소설집의 제목을 보며 품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라고? 사람 하고는. 진짜로 애비가 아들 죽이는 흉악한 소설을 쓴 건 아니겠지. 애비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챘는지 관창이 한 마디 거들었다.

“저도 이거 사 들고 오면서 좀 그렇더라고요. 그런데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어요. 요즘 소설들, 제목이 튀어야 잘 팔린다잖아요. 아마 흠선생님께서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제목을 지으셨을 거예요.”

딴은 관창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고, 그 날 밤 늦게 품일은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책을 펼쳐들었다. 5, 6개의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으로 문제의 제목이 달린 소설은 중간쯤에 삽입되어 있었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 품일에게 있어 이 소설이 단편이라는 사실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요즘 들어 노상 신문에서 떠들에는 병역비리, 돈 있고 빽 있는 국회의원의 아들놈이 군대를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갈등하다 친구의 말에 깨달음을 얻어 결국 돈으로 군대를 면제받은 후 비행기 타고 유학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그 와중에 애인과의 싸움이나 친구와의 갈등 등등이 삽입되기는 했지만 결국 주요 골자는 병역 면제였다. 그런데 읽으면서 가만히 보니, 이 국회의원이란 놈의 아들이 참으로 웃기는 놈이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어떻게 하면 당당한 모습으로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은 후 논산훈련소로 갈 수 있는지를 생각했었다. 적어도, 자신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스스로도 자신이 특별히 도덕적인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원칙은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M의 말을 듣고 난 지금, 자신의 머릿속은 갑작스레 찾아든 해방감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원칙을 지켜면 피해자가 되는 세상, 차라리 돌을 맞고 원칙을 어기겠다는 M의 말은 그가 느끼던 양심의 가책을 크게 뒤흔들어 버렸다. 오늘 그는 좀처럼 숨통이 트이지 않는 답답한 허파에 우격다짐으로 공기를 쑤셔넣으며 비자 심사를 받으러 영사관에 가고 있다.



이건 아니다. 이런 비열한 놈이 있나. 그 장황한 고뇌 끝에 결국은 미꾸라지마냥 뺀질뺀질 빠져나갈 뿐인 놈 아닌가. 이런 놈의 소갈머리를 어떻게 아주 양심적인 놈인 것 마냥 쓸 수가 있단 말이냐. 흠순 이 양반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설을 쓴 거야?

그로부터 두 주 가량 지난 어느 날 품일은 흠순이 살고 있는 지리산 기슭의 암자에 찾아들었다. 근처에 명승지로 알려진 절이 자리잡은 탓으로 관광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어 외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었다. 흠순은 마치 어제 헤어졌다 만난 사람처럼 품일을 맞이했다.

“창이도 데려오지 그랬나? 그 놈 본 지 오래 되어 얼굴이나 보고 싶은데.”

“데리고 올라 캤는데, 즈이 친구들하고 노상 어울려 댕긴다고 바쁘네예. 뭐 학교에서 무슨 간부 자리를 맡았다나......”

“한창 좋을 때지. 그런데 그게 뭔가?”

싱크대를 달아 반만 현대식으로 개조한 부엌에서 이가 군데군데 빠지고 금이 간 낡은 쟁반에 서투른 손놀림으로 커피를 담아 방으로 들고 들어오던 흠순은 품일이 옆구리에 기고 온 서류봉투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을 보자 대뜸 그렇게 물었다. 품일은 대답 대신 서류 봉투에서 두 권의 책을 꺼냈다. 자신의 책임을 알아본 흠순은 얼마쯤 쓴맛이 도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 사람 쓸데없는 짓을 했구먼. 내가 자네 안사람께 전화로 말씀드릴 때는 몸만 오면 책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했는데.”

품일은 자신이 책을 사게 된 내력과, 최근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관창의 군대 문제에 관해 흠순에게 털어놓았다. 심지어는 돈으로 병역을 면제하는 방법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까지 숨기지 않았다. 다만 그 계획이 난영의 제의에서 비롯되었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자네, 좀 오버하는 것 같군. 대부분의 평범한 아버지들은 걱정보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지. 물론 그렇지 않은 아버지들도 많네만, 이유가 의문사를 우려해서라니, 스스로도 좀 우습다는 생각이 안 드나?”

“의문사가 아니라 어떤 사인으로든 죽거나 사고를 당할까봐 그러는 거지 꼭 의문사 때문만은 아니라요. 접때 테레비에 나온 춘열이란 놈이 우리 창이 학교 선배라고 얼마 전엔가 마누라가 그럽디다. 그 말 듣고 나니 금마(그놈)생각이 나데예.”

“금마라니 누구?”

“광필이란 놈 말이라요. 와, 우리 옛날에 김천 살 때 같이 올챙이 잡으러 다녔던 그 쪼맨하고 새까만 놈 있쟎능교. 예. 금마 군에 가서 지뢰 잘못 밟아갖고 다리 두 짝을 다 잃었다 아입니꺼?”

“아, 기억나네. 그 친구 잊고 지낸 지 오래 됐군. 자네 심정은 잘 알겠네. 자네, 내 책 읽고 많이 혼란스러웠겠구먼.”

그제서야 품일은 흠순을 방문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는 흠순에게 따지고자 차를 끌고 먼 길을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책을 사 본 기라요. 머 친필 사인 받을라꼬 무거븐 책 들고 여그까지 왔는 줄 아십니꺼? <황산벌>은 그런대로 읽겠데예. 머 열 여섯 밖에 안 된 얼라가 죽기 싫은 건 당연한 기고, 온 나라 장정들이 나가는데 화랑인 네가 안 나가면 안 된다고 등 떠미는 애비 심정도 알겠고, 머 결국 죽었으니 역사적인 고증도 된 기고. 근데예, 새로 쓰신 소설은 마 읽고 나이 화딱지가 나 미치겠심더. 국회의원 아들래미가 병역기피 했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예. 이건 지금 그 놈을 잘못했다고 나무래는 게 아이고 이 놈이 무슨 선의의 피해자같이 되뿐 꼴 아입니꺼. 정작 피해자도 아닌데 말입니더. 내 말이 틀렸심꺼?”

저도 모르게 열을 내는 품일이 귀엽게 보였는지 흠순은 쿡쿡 웃었다. 갑자기 흠순이 깔고 앉은 방석에서 낮은 트럼펫 소리가 났다.

“미안하이. 아침에 무국을 끓여 먹었더니 소화가 너무 잘 되는군. 그럼 이제 자네에게 설명을 해 줄 차례인가? 사실 말이지. 난 내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아. 뭐 회피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자네가 그렇게 통분하는 것처럼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통분하게 만드는 게 목적인만큼 그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고 싶지 않다는 거지. 하지만 나 역시 그 작품을 쓰면서 나름대로 고심을 했으니, 그 고심을 토로하는 걸로 자네에게 설명을 대신하기로 하지.

자네도 짐작했겠지만,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는 <황산벌>에 이어지는 작품이야. 말하자면 제 2의 <황산벌>이지. 두 작품의 탄생 사이에 근 20여년의 시간차가 있고 소설 속 시간 차이는 몇 천 년이지. 하지만 무대를 신라 시대에서 현실로 옮겨오고 등장인물을 화랑관창과 품일 장군이 아닌 국회의원 아무개와 그 아들 아무개 2세로 바꾼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가 굳이 자네들 부자(父子)의 이름이기도 한 황산벌의 부자(父子) 이름을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지. 시대가 달라졌다면, 적어도 몇 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면 말이지. 그만큼 달라져야 해. 같은 조건이 주어져도 상황과 변수가 달라야 하고 계산해서 나오는 결과가 달라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말이야. 몇천년 전의 신라 시대가 21세기의 오 필승 꼬레아와 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 어디 그 차이를 눈으로 보겠나?”

길게 이어지던 자신의 연설을 잠시 끊은 흠순은 <제국의 말발굽>을 들고 책의 뒷부분을 주주룩 훑어 <황산벌>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아버지, 저에게 죽어서 돌아오라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관창은 품일의 팔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품일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소리를 죽여 띄엄띄엄 말했다.

“네가 신라군 화랑 부장이 아니고 내가 이 나라 제일의 손꼽히는 집안 출신의 장군이 아니었다면, 내 너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개 노릇이라도 했을 터이다.....”

“신라는 목숨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회였다고 하지만, 그러한 원칙은 정확하게 말하면 일반 서민이 아닌 성골 진골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지. 문무를 겸비한 귀족이었던 그들은 명예란 목숨과도 맞바꿀 만한 것이었어. 그들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는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사라졌어. 이 시대의 성골들이 어느 쪽이 더 소중한지를 잘 아는 거라고? 그렇지 않아. 그들은 기름을 먹인 쇳덩이처럼 뺀질뺀질해서, 명예를 포기하려 들지 않아. 결국 명예와 목숨 어느 쪽도 희생하려 들지 않는 거지. 하지만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 거고, 그 희생은 자네 같은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거지. 먼 옛날 품일 장군은 말에 매달려 돌아온 관창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내 아들이 이제야 신라의 정신을 살렸다’고 울부짖었다지. 하지만 자네는 할 수만 있다면 자네 아들 관창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어. 바로 여기에서 판가름이 나는 거야. 옛날의 진골들과 요즘 진골들의 순진성의 차이가 말이야. 그 옛날 신라 시대의 진골들은 순진했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잘 꿰뚫고 있었던 거야. 명예를 얻으려면 목숨을 바쳐라. 심지어는 내 소설에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다른 권력층의 자식들인 어린 화랑들을 제거했던 김유신이 실제로 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보게. 아들 원술이 싸움터에서 죽지 않았다 해서 아들을 무자비하게 내쫓지 않았나? 내 생각은 이렇네. 만약 그 역사적 사건이 사실이었다면, 김유신은 아들을 희생시킨 품일 장군의 지독한 깡다구에 질리기도 했지만 사내 대장부로서 그에 질 수 없다는 전의가 불탔을 거야. 만일 원술이 관창만도 못하다면 곧 그 애비인 자신이 품일보다 못하다는 뜻이 되니까. 본래 남이 잘 되면 나는 남보다 더 잘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 아닌가. 설령 김유신과 원술에 관한 기록이 사실이 아니었다 해도 결국 기록이 그렇게 남아온 걸 보면, 역시 명예는 중요한 거야. ”

여기서 말을 끊은 흠순은 잠시 생각의 갈피를 다잡으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날의 진골들은 순진하지 않아. 자식들의 병역비리를 한사코 감추려 들지. 내가 내 작품에서 문제삼은 건,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가 아니라 부모의 권력과 돈에 편승해 군대를 면제받으려는 젊은이들의 근성이었어. 그럼 이번엔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를 한 번 볼까?”



“다른 건 다 괜찮아요. 그런데 말이죠. 최소한 남자로서 어느 누구도 가고 싶을 리 없는 군대에 입대할 때는 말이죠. 죽어도 버릴 수 없는 남자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라는 게 엄연히 중해서 입대하는 게 아닙니까. 병역 기피자라는 손가락질 받기 싫어서 말이죠. 그렇게 군대에 가서 죽는다면 그건 참겠습니다. 팔자려니 하고 미련없이 저 세상 간다구요. 그런데 자살이라고 누명을 쓰고 죽어야 한다고요? 그건 싫습니다. 죽어도 그렇게 죽는 건 싫다고요. 이건 남자로서의 인생의 근본을 파고드는 문제란 말입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불명예스럽게 죽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억울한 수치를 뒤집어써야 하는 죽음이 이 땅의 현실이라면, 절 죽이지 마세요. ”



“자네는 이 아들이 자기 변호를 그럴듯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군. 그렇지?”

품일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결국은 군대를 안 갔는데, 그 모습은 떳떳치 못한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라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닌가. 흠순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의 엉덩이에서 다시금 트럼펫 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자꾸 미안하네. 생리 현상은 참을 도리가 없네.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서, 이 아들은 결국 군대를 면제받고 유학을 떠나게 되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지. 하지만 나름대로는 자신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믿은 채 떠나고 있어. 이유야 어쨌든, 이 아들이 친구에게서 힌트를 얻은 저 ‘명예’ 논리는 사실은 확률의 불확실성에 기반한 속임수야. 요컨대 죽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개죽음은 싫다. 개 같이 죽느니 개 같이 살겠다. 이 아들은 단순하게 의문사를 핑계거리로 내걸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군대에 가면 반드시 의문사를 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그 아들이 실제로 군대에 가서 의문사를 당할 확률이 과연 몇 프로나 되느냔 말이야. 명백한 논리적 오류지. 우리는 군대에서 죽어가는 젊은이들의 사인을 알 수 없어. 점장이가 아니니까. 하지만 최소한 TV에서 보여주는 유가족들의 통곡을 보게 되지 않나? 그들이 그렇게 울어가며 TV에 추한 모습을 보여가며 바라는 게 무엇이지? 그들은 아들의 자살 통지서를 보고받은 사람들이야. 그들은 아들들의 명예만이라도 되찾고 싶어해. 하지만 죽은 다음에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명예나마 되찾으면 울분이라도 달래질까 하는 노력이지. 그조차 막아 버리면 그들은 이 나라를, 그들의 조국을 철천지 원수로 삼게 될 거야. 내 소설 속 국회의원의 아들은 단순한 ‘의문사’라는 말에 숨겨진 뉘앙스를 조금 더 깊이 파헤친 거야. 요컨대 외국에서 허용하고 있는 반전주의자의 군대 면제와 같은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 하지만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나라에 바칠 의무가 있는 시간들을 바친단 말야. ”

흠순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품일은 그를 괜히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시바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중요한 건, 겉보기에 양심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다 양심적인 건 아니라는 거야. 자네가 이 국회의원의 아들을 양심적인 인간처럼 보았다는 말을 듣고, 자네 아들 관창이 내 책을 읽었으면 뭐라고 했을지 상당히 궁금해졌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입영 대상자인 아들들의 양심이지 부모들의 양심은 아니야. 돈을 만들어서라도 창이를 면제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했지? 옳은 거야. 나라에는 죄 짓는 소리지만 그게 옳아. 그게 부모의 마음이야.”

그래서 결국 어쩌라는 겁니까? 품일의 맥빠진 호소에 흠순은 딱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암만 부모의 마음이 중하다 한들 창이 군대 문제는, 자네나 내가 머리 맞대고 전전긍긍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잖나. 극소수의 성골과 진골들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는 모두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니까. ”



고명하신 중견 작가, 집안의 어른 뻘 되는 흠순 김준용과의 골치아픈 담화 이후 품일은 비위에도 맞지 않는 책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기 선에서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해결할 일이라고 해 봐야 뒤숭숭한 자기의 심중을 원상복귀시키는 일밖에 없었지만.

모처럼 거래처 사람들의 전화 폭주가 잠잠해진 어느 일요일, 오전 중에 부리나케 밖에 나갔던 관창은 난데없는 꼬리를 달고 들어왔다. 난데없는 꼬리란 바로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에 여대생다운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을 한 예쁘장하고 평범한 아가씨였다. 부부는 뜨악하게 아들이 데려온 여자친구를 쳐다보았지만, 정작 능글맞은 아들놈은 좋아 죽겠다는 듯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남의 집 처자를 매몰차게 쫓아낼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한 부부는 ‘오늘 내일’ 입대할 몸인 아들이 그 새를 못 참고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해서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했다.

“벌써 저렇게 컸나.......”

감회 깊은 한탄조로 말하는 난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품일은 알 수 없이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날 저녁 관창은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아버지. 갑자기 은영이 데리고 와서 화나셨어요?”

“고 가시나 이뿌데. 언제부터 사귀었노?”

뜻밖의 동문서답에 관창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다시 싱글벙글한 얼굴이 되었다.

“그죠? 이쁘죠? 실은 한 달도 안 됐어요.”

“창아.”

품일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어려운 질문을 할 참이다. 이놈의 아들은 묻는 말에 과연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행여 빌어먹을 흠순의 소설에 나오는 국회의원 아들놈 비슷한 대답을 할까 무섭다.

“접때 군대 의문사라고 신문에 난 춘열이라는 장병, 느그 학교 아 맞나?”

“맞아요. 저희 과 선배인데, 제가 입학하기 전에 휴학계내고 입대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와 얘기 안 했노?”

“그런 얘기를 뭐하러 해요. 저랑 그 선배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얘기해봤자 어머니 아버지 마음만 불편하죠.”

이놈의 자식이 벌써 에미 애비 속을 꿰뚫고 있나? 저절로 혀가 내둘러지는 것을 참으며 품일은 말꼬리를 붙들었다.

“불편하다니? 왜 우리가 마음이 불편하노?”

“자식 키우시는 분들인데 남의 아들 죽었다는 소리 듣고 기분 좋겠어요?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이 놈 봐라. 이젠 애비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을세? 묘하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품일은 들고 있던 신문을 활짝 펼쳐 얼굴을 가렸다. 신문을 읽는 체하며 그는 넌지시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에 대해 운을 띄웠다.

“니......만약에 병역처분변경원 낼 수 있으면, 낼 기가?”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의외로 운을 떼고 나니 담담한 심정이 되었다. 뭐 어떠랴. 굳이 병역처분변경원을 내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어보는 것을. 몇 분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다 혹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었나 싶어 다시 운을 떼려는 찰나 관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걸 뭐하러 내요. 곱게 갔다 오는 거지.”

이놈아. 누군들 그딴 서류를 내고 싶어서 내냐. 네놈 말대로 곱게만 갔다 온다면야 무슨 걱정이냐. 곱게 가서는 곱게 죽어나오니 그게 걱정이지. 그런 품일의 마음을 읽었는지 관창은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흠순 선생님이 쓰신 책 읽어 봤거든요. 근데요. 저는 그 국회의원 아들이란 놈이 잘 이해가 안 가요. 만약 제가 국회의원 아들이라서 돈빽으로 군대 면제 받을 수 있다고 하면 얼싸 좋다 하고 면제 받고 비행기 타지 군대 가느냐 마느냐 두고 그런 쓸데없는 고민 안 할 거라구요. 당연히 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남자가 군대 가는 게 원칙이죠. 하지만 원칙이니까 가는 거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어딨어요. 저도 신검에서 현역 판정 받고 오면서 엄청 기분 꿀꿀했었어요. 어떻게 가나, 가서 어떻게 견디나 막막해서, 근데 버스 안에서 군바리들 대화하는 걸 들었거든요. 그 군바리들 말이 ‘이렇게 저렇게 군 면제받아서 오 필승 코리아의 건아들이 군대를 안 가면 우리의 어머니와 애인들은 누가 지키냐’고. 첨엔 엄청 웃기더라고요. 근데 좀 있으니까 현역 판정 받은 게 오히려 뿌듯하더라고요. 맞는 말 같아요. 제가 군대에 안 가면 엄마랑 은영이는 누가 지켜요?”

품일은 저도 모르게 신문을 펴든 팔을 아래로 내린 채 관창의 얼굴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붙들고 어르느라 여념이 없는 아들의 모습이 영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싫든 좋든 대한민국 남자는 군대에 갔다와야 비로소 진짜 사나이가 되는 거라. 병역처분변경원이 웬 말이냐. 국회의원 재벌회장들이 다 군대면제 시킨다고 서민들까지 그라믄 나라는 누가 지키노. 윗물이 드럽다고 아랫물까지 드러우면 쓰나. 막말로 흠순 삼촌 책에 나오는 말대로 ‘명예 문제’다. 드럽게 죽을지 깨끗이 죽을지 몰라서 그냥 똥구뎅이에 빠지는 그딴 짓은 안 되는기라. 의문사? 하몬 구데기 무서바서 장 못 담글까. 죽은 머스마들은 명이 고거밖에 안 되어서 죽은 기라. 우리 창이는 명이 길어서 괜찮다. 잘 할 기다. 품일의 코가 한창 시큰거리면서 종내에는 눈물까지 글썽일 때였다.

“근데 아버지. 병역처분변경원 통과하려면 얼마 들어요?”

순간 시큰거리던 품일의 코에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쳤다. 찬바람은 어느 새 품일의 눈에서 찔끔 비어져나온 눈물마저 사정없이 가져갔다. 부풀어올랐던 가슴 속 풍선에 바늘이 꽂혔고 풍선은 뻥 소리와 함께 터졌다. 품일은 황급히 다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문을 넘겨보는 시늉을 했다.

“모르겠다. 그거는 와 묻노?”

“혹시 아버지가 내 주실 생각이 있으신가 해서 물어 봤어요. 아무래도,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좋으니까.......히히. 신경쓰지 마세요. 병역비리는 아무나 저지르나요? 돈이 있어야지.”

뭔가 충격적이었다. 뭔가 오싹하고 뭔가 떨떠름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충격을 주고 자신을 오싹하게 하고 자신을 떨떠름하게 하는 그 뭔가의 실체를 끝내 알지 못한 채, 품일은 관창의 옆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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