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효
단편연작 내접원
내접원(內接圓)Ⅰ
민효
심실중격결손(Ventricular Septal Defect: VSD), 그것이 강윤의 병명이었다. 대단히 학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병명이 갖는 위압적인 뉘앙스와는 달리 그 병은 강윤에게 있어서나 우리 가족들에 있어서나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지난 화요일 저녁 느닷없이 집에 들어온 그가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가기 전까지는 엄밀하게 말해서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강윤을 환자로 간주하지 않고 있었다. 항상 푸르스름하니 창백한 안색만 제외하면 그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였으니까. 그러므로 병원에서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가족들의 경악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검사 결과를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다. 이미 어릴 때 수술로 완치 판정을 받은 그의 병이 재발한 의학적 원인이나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획기적인 충격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강윤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중 그를 의학계에 떠도는 새로운 충격의 마루타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정밀 진단을 받은 지 나흘째 되던 날 아침 나는 그를 기어이 정신적인 생체실험의 도마 위에 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결단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밤새도록 정신분석학에 관한 어설픈 논문을 쓰다가 지친 나는 아침 느지막히 식당으로 들어가 지펠 냉장고에 붙은 정수기에 컵을 대고 얇게 조각난 맑은 얼음을 한 움큼 뽑아냈다. 뒤늦게 식탁에 앉아 먹다 남은 아침 밥상을 마주하고 머리를 반쯤 싸쥔 강윤을 발견하고 놀란 것은 밤새도록 혹사당한 대뇌 신경이 둔해진 탓이었다고 치자. 그 당시 그는 일 주일에 한 번도 집에 들어오는 둥 마는 둥 하며 자취방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었으므로, 아침 나절부터 그가 집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분명 놀랄 일이었다.
내가 얼음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소리에 강윤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항상 야만적이고 사나웠으며 이해할 수 없는 욕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그것은 나만의 판단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강윤의 앞에 놓인 생선 뼈다귀며 빈 그릇을 주섬주섬 치우며 그에게 중얼거렸다.
"마침 와 있으니까 얘기하겠는데, 아버지께서 너 약 가지고 가라고......."
"그게 약으로 고칠 병인지 알고 약을 먹으라고 하시는 거야? 그만두라고 해!"
그도 잠을 자지 않았던 모양인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너 많이 컸다? 아버지께 그만두라고 하라고? '재고해 보시라고 말씀드려'가 아니고?"
강윤이 픽 웃었기 때문에 그쯤 하면 그런대로 원만한 아침을 맞이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는 느닷없이 내 손에서 컵을 잡아채고는 손목을 잡아끌어 나로 하여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도록 했다.
"왜 그래? 할 말 있어?"
"할 말이야 늘 많았지. 어제 어디에 갔었어?"
문득, 내 팬티를 무릎까지 끌어내리고도 끝내 나를 강간하지 못했던 그의 낭패감에 젖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게 언제적 일이던가? 그는 꼭 그때처럼 으스러지게 입술을 깨물고 있다.
"집에서 빨래하고 숙제했어."
"난 네가 어제 낮에 어디 갔었는지 묻는 거야."
어제 낮에? 이번에는 이용환의 장난기어린 눈빛이 떠오른다. 그러나 워낙 날카로운 눈매 탓인지 그의 눈빛은 어쩐지 조금 교활해 보인다. 그는 강인과 함께 있었고 우리 셋은 재즈 바에서 한 시간이 넘게 시시한 농담과 형이상학적인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나의 지적 수준이 용환과 강인 둘을 다 합친 것보다 턱없이 높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화를 나누는 내내 오만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얘가 그걸 물고 늘어지려는 건가?
"K클럽 근처 지나다가 강인한테 들렀었는데 왜?"
"그리고 이용환 그 자식도 같이 있었겠지?"
"그게 어때서?"
강윤은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반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하긴 네가 내 말을 들을 여자는 아니지. 그리고 난 어차피 오래 살진 않을 테고."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단 말이다. 내가 그 말을 입 밖에 낸 순간 맑은 얼음이 사방 팔방으로 튀었다. 과망간산칼륨 폭발 실험과 비슷할 정도의 규모로 폭탄이 폭발했다고 해도 좋다. 강윤의 눈이 혐오스럽게 번득였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따로 있어. 너 말이야. 김민효.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야. 네 위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난 절대 못 죽어. 이해해? 어떻게 생각해? 내 병 재발한 거. 의사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더군. 난 그게 빨리 내 목적을 달성하라는 내 운명의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
강윤의 운명의 신은 여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 장시간의 중노동으로 지쳐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대뇌에 강한 전류가 번득였다. 강윤이 입으로 사랑을 지껄이고 몸으로 사랑을 구걸하던 시절에 나를 지켰던 것은 그를 해부하는 내 능력이다. 나는 주저없이 그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마취주사를 놓을 채비를 완료했다. 나는 웃으려고 억지로 입술 끝을 올리며 그에게로 돌아섰다.
"나도 어제 심전도 검사를 받았거든. "
한순간 그의 눈에 의혹의 기색이 스친다. 나는 되는 대로 지껄였다.
"너하고 난 혈액형이 똑같아. 이식 수술 적합도 테스트를 해보니 90이 넘었더라? 무슨 뜻인지 알아? 여차하면 내 심장을 너한테 이식할 수 있다는 거야."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경악이나 공포나 비웃음이나 여타의 다른 표정이 생기기를 기다리지 않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 네 병 재발한 거. 넌 어떻게 생각해? 네 아버지 강태규 박사님께서 최후의 경우 아들의 목숨을 선택할지, 아니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딸의 목숨을 선택할지?”
이것이 내가 강윤에게 휘두른 정신적 생체실험의 날카로운 메스였다.
그래, 그건 처음부터 내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정확하게 말해서 언제 어떻게 내 의식의 주름진 틈새에서 조용히 표면으로 떠올라 의식의 전면에 고이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이 계획.....이라기보다는 발상을 처음으로 내게서 들은 사람은 강인이었다는 것. 강인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올 만한 쓸데없는 소리라며 내 말을 무시해버렸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내 말을 무시할 뻔했었다. 그 발상이 현실성있는 계획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강인도 그것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내 목숨을 절대적인 담보로 잡은 그 계획이 나를 이렇게 잠식할 줄이야. 이것은 단순한 편집증이 아니었지만, 나는 곧 혼자만의 발상이 만들어낸 계획에 집착하게 되었다.
내가 강윤에게 한 말 중 일부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90퍼센트가 넘는 적합도. 내 심장이 그의 심장과 그토록 비슷한 용적과 두께와 부피를 가지고 있으며, 그토록 유사한 조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새삼 신기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심장 이식이란 비디오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빌려 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빌려 주든 그냥 주든, 공짜로 주든 대가를 받고 주든 한 번 주고 나면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마치 순결과도 같다.......
재즈 바에서 용환이와 강인과 나눈 형이상학적인 잡담들의 끝에 나는 넌지시 강인에게 암시하듯 심전도 검사 결과를 말했다. 강인은 늘 하던 대로 눈썹만 찡긋거릴 뿐 내 말을 그다지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용환이 쪽이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나치게 얄팍하고 붉은 입술을 혀 끝으로 축이면서 오른쪽 입끝을 치켜올리곤 했는데,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그의 그런 버릇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별일이네. 네 심장이랑 강윤 심장이 그렇게 비슷하다는 거야?”
나는 강인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며 용환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식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 한 마디로 강인은 다음에 이어질 말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그가 내 말을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는 기색을 보인 것은 그야말로 기색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 분위기라는 것을 놓치는 법이 없는 용환이는 재빨리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는 새로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여자 심장을 어떻게 남자한테 이식하냐. 안 그래? 넌 가끔 네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전에 강윤 녀석이 술 자리에서 한 말이 있는데, 멋진 말 같아서 가슴에 담아놓고 있었지.”
강윤이 용환이와 앙숙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지 못내 궁금했다. 강인은 그다치 개의치 않는 듯 심드렁하게 팔에 얼굴을 반쯤 묻고 다른 손으로 이마를 슬슬 긁을 뿐이었다.
“난 강윤이 싫어. 그 자식은 함부로 사람을 깔본단 말이야. 어쩌면 자식의 혈관 속에는 피 대신 식초가 흐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 녀석이 한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더라구. ‘왼쪽 가슴에 든 핵 폐기물 매장할 때가 됐군.’라고”
“그 놈 어려운 말 했네.”
“그러니까 네 동생이지 임마. 넌 안 그러냐?”
“하긴, 심오하다는 면에서는 강윤 녀석이 날 따라오려면 멀었지. ”
말끝을 얼버무리는 듯하더니 강인은 킥킥 웃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탐색하듯 살피며 용환이는 말을 이었다.
“자폐증 환자는 사랑 같은 거 필요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임마 누가 언제 너보고 나 사랑해달래? ’ 그러더니 술을 됫박으로 들이키고는 ‘하지만 그 전에 김민효 여사께 핵 시설 좀 폭파해 달래야지. 자비로운 아가씨니까 그 정도는 해 주겠지.’ 라고 그러데?”
예전 같으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겠지만, 이제는 내 피하조직도 어지간히 두꺼운 중무장이 되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용환이의 표정이었는데, 평소의 능글맞은 눈빛 대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내 가슴속의 어그러진 곡선이 단 한 점도 남의 선에 접하지 않도록.......이라고 말했어. 그 머저리 같은 놈이 말이야.”
강인은 재떨이에 침을 뱉고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에게 말해 줘야겠어. 모든 선이 남의 선에 접하고 있다고!”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강인은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내게 강인은 외쳐댔다.
“고질병 안고 사는 게 무슨 유세야? 그런데 걸핏하면 자기 병을 빗대어 매저키스트 같은 농담을 일삼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나냐고! ”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매저키즘 기질이 다분하다고.”
“최소한 강윤 녀석처럼 머리가 썩지는 않았어.”
강윤이 뭐라고 했든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내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심전도 검사 결과가 나온 이래 전보다 훨씬 불안하고도 미묘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강 박사 부부, 강인 쌍둥이의 부모님이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강인에게 내 계획을 본격적으로 털어놓기에 앞서 강윤의 주치의인 전흥규 교수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강윤의 주치의는 그가 치료를 받았던 어릴 때 이후로 여러 번 바뀌었지만, 재발의 염려가 없어진 뒤에는 주치의가 필요없어지면서 한동안 주치의를 두지 않았다. 최근 강윤의 병이 재발하자 치료를 맡은 사람이 바로 강 박사님의 대학 후배이자 현재 D의대 교수인 전 교수였다. 대학병원 안에 있는 그의 연구실은 흔히 쳐 두는 연녹색의 블라인드 대신 진한 보라색의 현란한 무늬가 수놓인 커튼이 달려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안경 대신 콘택트 렌즈를 낀 눈을 내게 고정시키며 그는 듣기 좋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론. 적. 으. 로. 불가능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 넌 네가 죽게 된다는 문제에 대해선 생각도 안 해 본 거냐?”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보랏빛 커튼의 무늬에 시선을 두고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부드러운 곡선, 직선의 물결........아름다운 커튼이다. 저런 커튼을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커튼 때문에 싫어하는 병원까지 일부러 온 것은 아니니까.
“그럼 뭐가 중요하지.......?”
“현. 실. 적. 으. 로. 가능한가요?”
얼핏 전 교수의 가느다란 눈에 비웃음이 지나치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느닷없이 이쑤시개를 집어들어 이를 쑤셨다.
“가능하지. 그런데 꼭 궁금한 건 말이다. 왜 네가 네 목숨을 버리면서 강윤을 살리려고 하느냐 하는 거다. 꼭 남의 심장이 필요할 정도로 강윤의 상태가 급박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강윤의 핵 시설을 폭파하려고요.
그래야 폐기물은 남겨놓죠.
“소원성취시켜주고 싶어요.”
어떻게 된 셈인지 동공이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전 교수의 얼굴을 뚫고 내 눈은 허공으로 수렴했다. 무슨 소리냐, 그게? 정말로 난감한 심기를 드러낸 전 교수의 질문에 마비된 눈이 혀 대신 대답할 말을 찾으려고 했다. 뒷골에서 간헐적인 경련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편두통 환자처럼 머리를 흠칫 흔들었다.
“강인을 사랑해요.”
강인을? 예, 강윤이 아니고 강인을요. 강윤이 죽으면 강인은 못 견딜 거예요.
강인이 술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절규하기라도 했나? 동생이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 다짐하기라도 했나? 아니다. 내가 본 것은 단 하나. 강윤이 병원에 실려간 날, 검사실 밖에서 등을 오그리고 말없이 혼자 앉아 있던 강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에게 줄 커피를 뽑아 들고 걸어오다가 복도 끝에서 그 초라한 옆모습을 보았다. 만약 그 광경이 하나의 사진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면, 나는 제목을 붙여주고 싶다. <기다리는 자>라고. 그 제목을 <잃어버린 자>로 바꾸고 싶지 않아서 나는 지금 이러는 것이다.
“안 돼! 오늘은 네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돌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병신만도 못한 소리를.......강 박사가 이걸 알기라도 하면.......”
“이걸 알기라고 하신다면, 아마 지금 교수님이 그러시는 것처럼 간단히 흘려 버리시지 못할 걸요? ”
전 교수는 전 교수일 뿐 강윤의 아버지는 아니니까. 전 교수는 이제 막 발광한 정신병자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을 자제하고 간곡하게 호소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죄송해요. 전 제가 사랑하는 남자의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고 싶어요. 그렇게 위축된, 그렇게 보잘것 없는, 그렇게 외로운, 그렇게 침묵에 싸인 모습을 다시 보기 싫다구요. ”
나는 그날 복도 끝에서 본 강인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전 교수에게 설명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에게서 정확하게 무슨 확답을 받고 그의 연구실 문을 나섰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살인적인 햇빛이 내 뒤를 밟았다. 매우 싸늘하고, 매우 까칠까칠하고, 창백하다 못해 파리하기까지 한 못된 햇빛이 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좀처럼 그 자신 허용하지 않던 멸(滅)의 낙인을 찍었다.
아이센멩거(Eisenmenger)증후군과 팔로 4증후군(Fallot's Tetralogy: TF)을 다룬 두꺼운 책들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상위로 두텁게 쌓여 있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언제나 한결같은 고정관념으로 박힌 강태규 박사님의 이미지와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의사. M 종합병원 외과의. 강인과 강윤의 아버지. 내게도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 그 분은 초조함에 못이겨 담배를 아예 잘근잘근 씹고 계셨다.
“도대체 설명을 해 봐라. 전 교수한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한 거냐?”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강 박사님은 버럭 화를 내셨다.
“얘기 다 들었다! 전 교수 말이 널 신경정신과에 데리고 가 보라고 하더구나! 강윤에게 네 심장을 기증하겠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이냐?”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셨어요.”
“뭐라고?”
“불능하지는 않다고, 가능하다고 하셨다구요.”
아무래도 전 교수는 그 자신이 내게 한 말까지 그대로 강박사에게 털어놓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강 박사님의 눈에 엷은 의혹이 슬그머니 스며든다. 병든 아들을 구하고 싶은 아버지라면 걸려들게 마련인, 유혹과 타협하고픈 욕망이다. 그는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의 아들 대신 내 목숨을 구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불도 안 붙인 채 씹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고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나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하며 자신과의 상의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은 굴절된 작은 편집증 환자의 모습이 되어 사진처럼 찍혔다.
“그 사람 말이, 네가 강인을 사랑한다고 했다지. 나야 뭐 이미 조금은 짐작하고 있던 일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만, 넌 아무래도 만용을 부리고 있어. 네 심장이 강윤 몸에 들어가면 네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냐?”
“그러지 마세요. 저도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이에요.”
사실은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정이 다 뭐냐? 네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한 거냐? 아니, 강인을 사랑하는 거하고 강윤에게 네 심장을 주는 게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내가 자세를 조금 고쳐 앉자 귀밑머리가 귀 앞으로 흘러내렸다. 가능하면 냉담한 태도를 취하려 했지만 저절로 입술이 떨렸다. 안 돼.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어야 해.
“말씀드릴 일이 있어요. 2년 전, 강인이 칼을 맞은 채로 세 시간이나 버티다가 병원에 갔던 거 기억하세요?”
피투성이가 된 강인의 가슴, 흰 셔츠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조각난 핏빛 파편들이 동공을 짓이기고 흩어져 달아난다.....흰 셔츠에 눈물이 묻어 있다. 아니, 이것은 내 눈물이다. 강인은 내가 보는 앞에서 흰 셔츠를 태연히 검은 셔츠로 갈아 입었었다. 피는 숨겨졌다. 그러나 내가 입은 상처는 숨겨지지 않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헤집히고 만다.
“그거, 제가 한 짓이에요.”
나는 일어서서 문을 향해 뛰다시피 걸어갔다. 그러나 문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강 박사님은 설명을 요구했다. 이건 설명이 아니다. 설명해야 한다. 설명을......이유를.
“강인에게 강윤이 꼭 필요한지 어떤지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강인에게는 제가 필요없어요. 제가 원하는 만큼 절 사랑해주지 않거든요. ”
문을 뛰쳐나온 순간, 눈물을 닦을 사이도 없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강윤이 눈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몇 분간 말없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별안간 내 어깨를 난폭하게 잡아끈 강윤은 그대로 나를 강인의 방으로 끌고 갔다. 방의 주인은 자리를 비웠으므로 문을 걸어잠근 순간 우리는 철저하게 두 사람이었다.
“너였단 말이지.”
“그래. 내가 그랬어.”
“넌 강인을 죽일 뻔했어. 그래서 늘 미안해했지? 이젠 그 보상으로 날 대신 살리겠단 말이지.”
아뿔싸 그게 아닌데,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왜 그랬는지 말해. ”
모든 사람들이 내게 ‘왜?’라고 질문한다. 이런 경우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질문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말했잖아. 날 사랑해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강인은 널 사랑해! 그걸 몰라?”
“네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만큼은 아니야. 그렇게만 해 줬다면.......이제 그런 말은 소용없어. 난 강인만이 아니라 나까지 해치고 싶었어. 난 보상이 아니라 보복을 원한 거야.”
보복? 무엇에 대한? 내 애정결핍증에 대한? 강인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다. 그 당시 나는 말로 표현 못할 분노에 휩싸여 무작정 커터나이프를 들고 달려들었을 뿐이었다.
강윤은 한심하다는 눈빛과 살기등등한 눈빛이 한데 뒤섞인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내 얼굴에서 짙은 패배감 이외의 것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똑같아. 우리는 가슴이 병들었지. 그리고 우리 사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내 병든 심장을 가져가. 내 원한과 울분도 가져가. 이토록 짧고 고답스러운 인생을 살았으면서 어째서 이렇게 많은 원한과 울분이 쌓였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사랑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강윤은 갑자기 맥이 풀린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잠시 후 그는 내 손을 으스러지도록 쥐고 사정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너만 그런 게 아냐. 나도 그래. 나도 이 가슴에 너만큼의 울화통이 벌집에 벌꿀같이 맺혀 있다고! 누가 누굴 사랑하고가 무슨 소용이야? 중요한 건 누가 누굴 위해 희생하면 안 된다는 거야 ”
“네 말이 맞아.”
나는 강윤의 손에서 내 손을 뺐다.
“하지만 희생하고는 상관없이 내 심장이 너한테 이식되는 건 이미 현실화된 문제야. 전 교수님은 네 아버지의 허락만 얻는다면 오늘밤에라도 당장 진행하실 거야.”
“내가 그냥 있을 것 같아? 내가 순순히 수술을 받을 것 같아? ”
“구속복 입혀서라도 끌고 갈 걸. ”
나 자신 이토록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못 놀라웠다. 강윤은 내 어깨를 잡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패배감 말고 내 얼굴에서 또 뭘 본 걸까? 한참만에 그는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마.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아직 날 몰라? 너 자신한테 얼마나 더 잔인해질 참이야? ”
“난 떠나고 싶어. 다른 곳이 아니라, 나한테 충실한 이 가슴 속으로. ”
강윤의 왼쪽 가슴을 가리킨 나는 그의 굳은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적어도 너한테만은, 정확한 설명을 해 주고 싶었어. 그러면 이해할지도 몰라. 아니 꼭 이해시키야 해. 그러면 사실은 내 결심이 그다지 중대한 각오가 아니라라는 걸 우리 둘 다 깨닫게 될 거야. 내가 강인에게 상처를 입힌 건 분명 내 잘못이었어. 하지만 난 후회하지도 않았고 뉘우치지도 않았어. 가능하면 포기하려고 했지. 하지만 내가 뭔가를 포기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면서 살면, 난 불행해질 거야. 넌 내가 불행해지는 걸 원하지 않을 거 아냐. 잊었어? 강인도, 나도, 그리고 너도 타협을 싫어했다는 거. 그래도 강인은 쉽게 타협했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강인이 모른 체 하고 있단 말이야? ”
“아마도.”
그 순간 강윤의 의혹이 잠시나마 나를 비껴 그 자리에 없는 강인에게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강인은 타협해야 할 때 타협하는 법을 알아. 그리고 난 포기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포기할 거야. 그게 내가 택한 방법이야. 난 날 희생하는 게 아니야. 이건 하나의 보복이야. 강인에 대한 보복이라고.”
이것은 거짓말이다. 장기기증 각서를 쓰고, 심전도 검사와 혈청 검사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머리를 비웠다.
“강인을 왜 그렇게 증오해?”
“넌 날 증오한 적이 없었어? 지금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 않아? 네가 그렇게 몸달아하는 내 목에 난 키스 마크 하나도 네 것이 아니라구. ”
강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목을 피해 눈을 아래로 내리깔더니 한동안 침대 머라맡에 놓인 탁상시계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제 나는 한층 음흉해진 그들의 계획을 엿듣는다.
전 교수와 강 박사님은 이제 나의 심장을 강윤에게 이식하는 문제를 은밀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앞에서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로 치부해버렸던 나의 제안을 뒤에서는 귓속말로 소곤거린다. 나는 굳게 잠긴 문가에 바싹 붙어앉아 짐승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를 엿듣는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나는 알고 있다.
―폐동맥판협착 여부만 알면, 수술은 한층 쉬워질 거요. 민효의 심장은 아주 튼튼해.
―내 아들을 위해 남의 딸을 희생시키고 나면, 그 다음에는.....
―본인의 선택이었어요.
그렇다, 내 선택이었다. 이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한 선택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통증도 있다. 밤마다 통증에 시달리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을 강윤의 고통에는 그토록 무감각했건만, 어째서 나는 보잘것없는 나의 분노를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끝내려는 걸까. 나는 누구에게도 나 자신이,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위대하다거나 숭고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강인에게 느끼는 애증도, 강윤에게 느끼는 연민도 절대로 부풀리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왜곡된 감정만은 예외이다.
“내가 너한테 무릎꿇고 빌었으면 좋겠어? 이러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해.......”
생리 때문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랫도리도 아랑곳없이 그의 허리 위에 올라탈 때면 그는 간곡한 어조로 내게 애원했다. 그러나 서너 번쯤 내 입술로 그의 입술을 문지르고 그의 귓가에 침이 흐르는 혀를 밀어넣으면 그는 내 유혹에 기꺼이 굴복해 주었고, 따라서 그의 애원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게 오로지 빌어먹을 섹스였나? 그렇게 교태에 찬 신음소리를 꾸며내는 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거였다고 그는 생각했던 걸까?
단순한 책임감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그는 나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 누가 누구를 안았느냐 하는 문제를 따지자면, 강인이 나를 안았었지 내가 강인을 유혹한 게 절대 아니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 사실을 항상 잊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처음처럼, 항상 처음에 네가 내게 했던 것처럼 해 줘. 나는 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울며 호소하며 그를 때리고 괴롭혔다. 아마도 그 모든 일들을 이용환은 훤히 꿰뚫어 보고 특유의 비웃음을 입가에 걸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다른 편에서는 강윤이 창백해진 얼굴로 얄팍한 입술을 으스러져라 깨물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이 손상당하는 것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넘겼던 강인이었다. 그랬던 그도 애써 녹음한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내가 무지막지하게 망가뜨린 날, 처음으로 내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긴 테이프는 쉴새없이 구불구불 흘러나와 뱀처럼 바닥에 떨어져 기어다녔고, 나는 탈진한 몸을 바닥에 눕힌 채 젖은 얼굴에 감긴 머리카락을 입가로 가져가 잘근잘근 씹었다. 그날 이후로 내가 피에 젖은 몸으로 강인의 품에 안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아기 대신 증오를 자궁에 넣어두고 키웠다. 강윤이 발작을 일으킨 지 다섯 시간만에 강 박사님의 자가용으로 병원에 옮겨졌던 지난 달, 크레졸 냄새와 호르몬 냄새가 뒤섞인 복도 끝에서 강인을 발견했을 때 나의 증오는 유산되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감각도 잃은 채 구부러져 있던 강인의 앉은 옆모습은 한 폭의 실존주의적인 추상화처럼 느껴졌다. 나는 체념을 배웠고, 이따금 타오르는 아직 꺼지지 않은 애증이 마음을 괴롭혀도 결코 강인에게 토로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랑이 사이가 그렇게도 허전해? 그렇다면 난 어때? 강인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라도 상관없지?”
내가 이용환에게 무슨 말을 했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 여우 주둥아리 같은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 순간 그 인간의 혀를 잡아뽑고 싶었다. 이용환은 곧이어 내게 사과했다.
“네 표정을 보니, 내가 말 실수했군. 반은 미안하다. 하지만 반은 아니야. 왜인지 알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기 때문이야. 네가 강인의 여자라는 거,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가 가끔 있어서 그래. 하지만 이건 알아둬. 난 강인을 사랑해. 죽어도 난 강인 반쪽을 자처할 거야. 같은 피를 나누고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강윤 자식 따위는 아무것도 아냐. 내가 내 손으로 없애는 한이 있어도 난 강인의 반쪽이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야 없지. 주제넘은 이용환.
“강인에게 해를 입힌다면 너라도 용서 못해. 하지만 김민효, 내가 강윤을 미워하는 이유가 강인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그럼 뭐 때문이냐고? 그 자식이 강인을 포함해서 내가 원하는 걸 다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지! 세상이야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여유있게 실실 쪼개면서 죽음 바깥에 보기 좋게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꼴, 난 보기 싫어. 인간적으로 너, 강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거 아냐? 너만 아니면 어디로든 튕겨나갈 수 있는 놈이, 바로 너, 김민효라는 콤파스에 묶여서 꼭 반경 ‘김민효’ 센티미터 밖을 못 벗어나고 있는데?”
그 날 이용환이 내게 한 얘기들은 내가 평생 용서 못할 말들 투성이였다. 그러나 나는 ‘강인의 여자’라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이용환을 용서했다.
그러고도 나의 결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으로 굳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내 생각을 애써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를 고립시켰다.
“정말 각오할 수 있니? 정말 이대로 끝낼 수 있어?”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서글프게 묻던 강태규 박사님의 질문이 마지막이었다.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한 후 사흘쯤 지난 어느 날, 저녁 무렵 나는 불이 꺼진 식당으로 우유를 가지러 내려갔다. 거기에서 강윤과 똑같은 포즈로 식탁 위에 머리를 감싸쥐고 앉은 강 박사님을 보았다. ‘여기서 뭐 하세요?’라는 물음을 건성으로 던지며 내가 냉장고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강태규 박사님은, 아니 두 아들의 아버지는 로봇의 목소리처럼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9월 12일. 잊지 마라. 만약 싫으면 그 전에 얘기해야 한다. 알았지? 9월 12일 밤이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강 박사님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식당을 나갔고 남은 나는 우유를 컵에 가득 부었다. 적어도 9월 12일까지는, 이 집에서 내 손으로 따른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셈이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찾아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K클럽을 찾아갔다. 가슴에 모르핀을 주사하지 않고는 절대 들을 없는 소리들의 집.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강인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정육점에 길다랗게 늘어져 걸린 돼지들의 시체와 커다란 칼을 생각나게 했다.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기차를 알리는 딸랑거리는 종 소리와 기차가 철로를 달리는 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것은 떠나는 사람의 터벅거리는 발걸음 소리였다. 아 제발! 그 소리만은! 내게 접하고 있던 마지막 점까지 떨어져나가는 그 소리만은 없애 줘!
1년 전 나는 심한 환각에 사로잡혀 실신했었고, K 클럽의 분장실로 옮겨졌었다. 지금은 다르다. 왜냐하면, 이제 곧 내가 정육점의 돼지와 식칼이 될 테니까. 내가 딸랑거리며 자정의 맑은 공기를 가르고 울려퍼질 것이고 내가 떠나가는 사람이 되어 터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내게 될 테니까. 결코 내가 남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누가 날 가뒀어
누가 날 여기에 가뒀어
누가 날 네 안에 가뒀어
나, 나, 나는 다시 구를 수 없는 네 안의 내접원..........
‘왜 그렇게 강윤에게 가혹한 거야. 너라는 콤파스에 묶여서’라는 용환이의 말이 떠올랐다. 믿을 수가 없어. 벽에 기대어 허파를 찔러대는 강인의 목소리를 무심히 폐포(肺胞) 속으로 흘려넣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삼각형의 세 변에 모두 접하는 삼각형 내부의 원’
언젠가 강윤은 내 앞에 작은 종이를 펼쳐놓고 기하학을 설명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 이용환이라는 인간이 그 머리로 콤파스니 뭐니 그런 수사법을 구사할 수 있을 리 없지. 분명 강윤에게서 뭔가를 주워듣고 가사를 쓴 거야.
나는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노래를 부르는 강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던 그 모습을 이렇게 건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왔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때문에 한 번은 살아났지만 두 번은 살아나지 않겠어
강인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굴렀다. 가위에 눌렸을 때, 귀에 물이 들어찬 그 느낌을 혼탁한 정신으로 감지해냈다. 나는 강인의 노래에 대답했다 ‘네 목소리 때문에 한 번은 살아났지만 두 번 다시는 살아나지 않겠어.......’
내 앞에 있는 여자는 홀린 듯 길다란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강인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쨌든 강인에게는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보다는 많이. 나는 어릴 때 나를 내버려두고 재혼한 내 생모와 지금도 태평양 어딘가를 횡단하고 있을 내 아버지를 떠올리고, 강윤을 떠올리고, 이용환과 강인을 떠올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떠올리고는 비애에 젖어 손으로 한쪽 얼굴을 감쌌다. 우리의 이별은 여기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강인에게만큼은 집보다도 소중한 여기에서.
갈채와 환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강인에게 들키기 전에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문을 향해 다가갔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았다.
“민효 씨? 여기까지 와 놓고 그냥 가면 어떡합니까? 같이 가시죠. 요즘은 건강이 괜찮으신가요?”
나는 타고난 지병도 없고 몸도 그런대로 튼튼한 편이지만, 작년에 이곳에서 실신했을 때 그 꼴을 본 많은 사람들이 나를 무슨 난치병 환자쯤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내 팔을 잡은 사람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강인과 강윤의 친구이자 메탈 그룹 ‘그라이아이’의 베이시스트인 이민규였다.
나는 그에게 잠시 들렀을 뿐이며 강인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민규가 기어이 나를 붙들고 K클럽 분장실로 간 것이다. 거기에는 내가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 좁은 공간의 둔중한 열기는 나를 숨막히게 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김민효 양. 강인의 숨겨놓은......”
때맞춰 분장실이 강인이 도착한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들은 강인을 보자마자 궁시렁대고 혹은 킥킥대며 일제히 일어서서 분장실을 나갔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강인과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저럴 필요 없는데......”
“난 필요 있어. 너 혼자 온 거야?”
뜻밖의 말에 약간은 의아해하며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 오는 거 싫다며? 내 목소리 듣는 게 지긋지긋하다며? 그런데 어떻게 용케 여기 혼자 올 생각을 다 했지?”
듣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듣기 괴로웠다고 해명해야 한다. 아니다. 이제 와서 그런 해명은 필요없다.
“한 번은 제대로 듣고 싶었어.”
강인이 침묵을 지키자 나는 꼭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강인에 관한 한 정리된 것이나 계획된 것은 한 가지도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이별할 수가 없다는, 이렇게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내 확신이었다. 나는 심장 이식 수술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봐야 강윤이 그랬던 것처럼 폭행이나 윽박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아직은 시간이 넘쳐흐를 만큼 많이 남아 있지만, 이별할 때는 지금뿐이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랴?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말이 필요없는 이별이 있음을.
“아마 네가 부르는 노래를 즐겁게 듣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너한테 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싶었어. 헤어지기 전에 화해해야 하니까.”
강인은 가만히 나를 쏘아보았다. 밖에서 ‘강인! 물 있냐?’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섰을 때 강인이 말했다.
“이별이 없으면 화해도 없어. 알겠어?”
강인의 눈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고 서로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바늘 같은 고독을 읽었다. 그처럼 엄숙한 순간에는 웃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웃지 않았다. 끝까지 사그러들지 않는 불씨가, 벗어던질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다시 살려낼 수는 없었다. 곧 삭을 것이다.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강인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괜찮다. 나는 끝까지 철저한 이기주의자다.
“물 있다니까 들어가 보세요.”
K클럽을 빠져나왔지만 밤의 냉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무겁고 고답스러운 가스 같은 공기가 천천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갑자기 길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한쪽 다리를 끌며 맥없이 걸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 팔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참담한 내 의식의 무게일까. 이 정도의 무게라면, 낙서로 만신창이가 되어 구겨진 종이의 무게밖에 안 된다. 구겨진 종이가 들어갈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다.
내가 들어갈 쓰레기통은 9월 12일에나 찾아온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아 바닥에 누워 어둠의 호흡을 헤아린다. 들숨, 날숨, 그리고 다시 들숨.
장기기증각서를 작성하는 작업도, 최종 검사도 다 마친 지금 내가 할 일은 뜬 눈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것 뿐.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별의 고통에 사로잡힐 테니까.
강윤은 정말로 구속복을 입고 수술실에 끌려가게 될까? 생체실험을 당하는 환자처럼?
그때에도 강인은 실존주의적 추상화가 되어 긴 복도 한켠에 놓인 의자에 표정을 잃은 채 주저앉아 있을까? 나는 처음으로 강인이 받을 고통을 생각했고, 그러자 회한이 묵직하게 아랫배를 타고 올라왔다. 인생은 하나의 긴 복도와도 같고, 누구든 그 한 켠에 조용히 앉아 쉴 의자 하나를 갖는 법이며, 그 의자 위에서 인간은 평생에 걸쳐 쓰고 산 가면을, 가식에 찬 표정을 집어던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그랬듯 그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강인 미안해. 널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널 관람하는 관객이 되는 건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참지 못하고 네게 달려들었어. 한 번은 칼날이 부러진 커터 나이프를 들고, 또 한 번은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커터 나이프를 들고. 미안해.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고정된 자신의 꼭지를 떼어내지 못하고 바늘은 쉴새없이 몸을 이동한다. 나는 단 한 번도 걷고 싶은 대로 걷지 못하고, 뛰고 싶은 대로 뛰지 못한 자의 규칙적인 보폭을 본다.
나는 더 이상 소리와 싸우지 않는다. 나는 고정된 나 자신의 꼭지를 떼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FIN
아이센멩거(eisenmeger)증후군; 신천성 심장병의 특이한 유형.
팔로 4증후군(Fallot's Tetralogy: TF) 선천성 심장병의 한 종류. 폐동맥판협착과 심실중격결손, 대동맥교차와 우심실비대증의 합병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