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 여행기 4 - 구라시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 토요코인은 11시. 자비는 없다. - 숙소를 옮겼다. 다음 목표는 구라시키 미관지구.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느낀 점은 정말.. 이동이 빠르다는 사실이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나오면 체크인 시간 한참 전에 다음 숙소에 도착하기 때문에, 최대한 모든 짐을 캐리어에 때려넣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그래봐야 후드 점퍼에 카메라, 필름과 지갑이 든 작은 가방이 전부지만.
히메지에서 구라시키로 이동할 때에는 오카야마를 들렀다 가야 했으므로 약 50분의 이동 시간이 소요된다. 패스 덕에 신칸센을 이용할 수 있어서 덕을 많이 봤다.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에키벤이라도 사 먹었겠지만 짐도 있고 귀찮아서 패스. 일본엔 기차 오타쿠도 정말 많은데, 기차가 들어올 때 사진 찍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늘 느끼지만 정말.. 오리처럼 생겼다.
나이가 들고 여행할 때 달라진 점은 아침 일찍 이동하기 때문에 이동한 지역의 관광을 당일 해치우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 대도시를 수십번 다녀오다보니 질려서 소도시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딱히 볼만한 게 많이 없고 동네 한량처럼 어슬렁거리며 사진 찍는 게 대부분의 관광이다. 그러다보니 어둑해지면 바로 숙소로 들어오고, 밝을 때 이동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구라시키역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는 숙소에 캐리어를 맡겨두고 구라시키 미관지구로 향했다.
일요일 낮이라 관광객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여태껏 사람 없는 곳을 사람 없을 시간에만 다니던 터라 이리 저리 치이는 것에 좀 당황했지만 가게도 워낙 많고 길도 길어서 천천히 이곳저곳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끝에서 끝까지 걸어봐야 얼마 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이국적으로 꾸며둔 가게와 일본스러운 가게가 어우러져 제법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배가 부르는 것은 싫지만 마시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아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찻집에 들렀다.
찻집이 맞나 싶게 좁은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이런 정갈한 다실이 있었는데, 남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만약 한국에서 아무도 없는 층에 남녀 둘이 차를 마시고 있다면 그들의 대화를 모두가 들을 수 있을 텐데, 분위기로 보니 소개팅 내지는 썸을 타는 사이 같았다. 옆 테이블에 앉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들의 공간을 방해하는 기분이 들어서 발 너머 좌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차와 다과로 몸을 좀 녹이고 나니 어느 순간 여기 사람이 있었냐는 듯 둘은 스르륵 사라졌다. 신기한 일본 사람들.
귀여운 아이템들을 애써 못 본 척 지나, 우키요에를 보러 들어갈까 하다가, 꽃이 만개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백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저렇게 강가에 자유롭게 살고 있는 백조를 살아서 처음 본 나로써는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째서 백조를 아름다운 새라고 하는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저 우아함.
아주 오래된 커피 가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 공학도도 아닌데 저런 정갈한 체크무늬만 보면 가슴이 뛰는 나란 인간.. 귀여운 스쿠터까지. 이 사진을 찍어놓고 잊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내부 인테리어, 관광객이 많이 들른다는 것이 느껴지는 메뉴판과 판매용 상품들. 신기하게도 직원들이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그녀들은 어쩌다가 이 멀리 구라시키까지 와서 일본어로 커피 메뉴를 설명해주게 된 걸까? 추천해주는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어차피 읽지는 못 하므로) 마셨는데 일요일 가족 단위로 아이들과 함께 온 손님들이 많아 그들을 구경하는 데에 시간을 다 보낸 듯 하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오하라 미술관. 쭉 늘어서 있는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장년의 어르신들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 나가면 현지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최대한 많이 가려고 하는 편인데, 이곳은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이라 겸사겸사 한 번 들러보고 싶었다. 입구에 이게 뭐지? 하면 로댕..이고 앗 여기도 로댕.. 하면서 꽤 시간을 보냈다. 전시장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라서 눈으로만 담았지만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싶은 작품들이 많아 재미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역시 지나고 나면 작품은 기억이 나지 않지.)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뭔가 사서 들어가야지 하는데 지나가던 남자가 말을 붙여왔다. 어릴 때였다면 응수해줬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이 사람이 내 신장 빼 가려는 건가 싶어 얼른 도망친 뒤 혼자 웃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 이렇게 구라시키의 밤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