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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아예프 Feb 04. 2024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읽기

무엇을 읽을 것인가

읽는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그것이 파멸과 광기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일지 몰라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책이 인간을 ‘읽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진 못 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출간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책들도 이 세상엔 많다. 그 책들이 무엇이냐면 바로… 읍읍… 자 그래, 됐고, 읽는 인간이 무엇인지나 다시 이야기해보자. 내가 규정하는 ‘읽는 인간’이란, 읽기를 통해 자기 정신에 새로운 맥락들을 추가하고, 변주하고, 활용하는 인간이다. 읽기를 통해 자신을 확장, 변화, 갱신시키는 인간, 자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바깥으로 끊임없이 넓어지는 인간이다. 인간을 ‘읽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 하는 책들은 정신에 새로운 맥락을 추가해주기는커녕, 기존의 생각에 머무르도록 만든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런 책들은 독자를 인간으로 대하기 보다 소비자로 대한다. 그 책들이 무엇이냐면 바로… 읍읍….


물론 책도 상품일 것이다.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 돈으로 교환되는 상품, 많이 팔리면 수익이 늘어나는 상품. 나도 알지. 자본주의에 상품이 아닌 게 어딨나. 그러니 새로운 정신의 맥락이고 나발이고, 그딴 거 모르겠고, 다른 많은 상품들처럼 책도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이 주장에 반박하고 싶진 않다…. 논쟁이란 건… 피곤한 일이니까. 그냥 반박 시 니 말 다 맞고, 웬만하면 나한테 말 걸지마… 짜증나니까…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만 이 정도 얘기는 덧붙이고 싶다. “책도 상품”이라는, 누구나 알 법한 당연한 소리를 하며 잘난 척 떠드는 인간의 말보다는, 모리스 블랑쇼의 이 말에 더 마음이 간다는 얘기. 모리스 블랑쇼는 이렇게 말했다. “독자는 자신을 위하여 쓰여진 작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미지의 무엇을, 또 다른 현실을, 그를 변화시킬 수 있고 그가 변화시킬 수 있는 별개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낯선 작품을 원한다.” 그렇다. 바로 그러한 낯선 작품이 우리에게 새로운 정신의 맥락을 더해주는 법이다.


나는 우리 정신에 새로운 맥락을 더해주는 책들의 예를 들기 위해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펴본다. 카뮈, 사르트르, 찰스 부코스키, 폴 오스터, 커트 보니것, 로베르토 볼라뇨, 로맹 가리,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제임스 설터, 조지 오웰, 카프카, 레이먼드 카버, 미셸 우엘벡, 밀란 쿤데라, 나보코프, 엠마뉘엘 카레르, 로베르트 발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뭐 이런 작가들의 책이 보인다. 그러다 새삼 깨닫는다. 잠깐 이거 죄다 서구 백인 남성 같은데? (볼라뇨만 유일하게 라틴 아메리카 작가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어권이 아닌가. 나보코프도 러시아 작가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했고) 흠… 뭔가 잘못 된 것 같다. 철학과 문예이론, 사회학과 정치학, 비평 등 인문학 전반의 책들이 꽂힌 서가를 살펴본다. 니체, 푸코, 데리다, 들뢰즈,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 지젝, 바디우, 테리 이글턴, 지그문트 바우만, 발터 벤야민, 부르디외, 러셀, 에리히 프롬, 모리스 블랑쇼, 데이비드 하비, 마크 피셔… 가 보인다. 뭐야 이것도 죄다 서구 백인 남성들 아닌가. 이게 말이 되나. 요즘 세계문학전집도 이런 구성으론 안 나오는데….


자 오해를 좀 풀고 싶은데, 내 책장엔 스피박도 있고, 낸시 프레이저도 있고, 보부아르, 벨 훅스, 정희진, 우에노 지즈코, 수잔 손택, 한나 아렌트, 마사 누스바움의 책들도 있다. 이 변명이 어떻게 좀 통했으려나… 모르겠다. 솔직히 서구 백인 남성들이 쓴 책의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인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어떤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세 가지만 짚어보겠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카뮈가 했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내가 독서에 약간 미치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 카뮈를 접하면서부터였는데, 보부아르가 <제 2의 성>을 냈을 때, 카뮈는 “남자들을 모욕했다”고 부…부들거렸다. 다음은 좋아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라는 시를 썼는데, 읽어보면 정말 누가 봐도 여성혐오자 같다(…). 자 한 가지 더. 최근에 번역되기 시작해 최애작가로 등극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어떨까… 그는 에세이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서 “웨이트리스의 눈짓만으로” 성적 뉘앙스가 읽힌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이상한 소릴 했... 됐다 그만 알아보자.


그러니까, 볼라뇨는 일찍이 “문학 + 병 = 병”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공식도 충분히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백인 남성 지식인/예술가 + 나 = 빻…” 자 여기까지, 눈물겨워서 글을 더 쓸 수가 없다…. 이 정도면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시 태어나는 것 따위 불가능한 나는, 어쨌건 이번 생에 뭔가 수습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넓게 읽기. 한국에서 책 많이 읽는 걸로 가장 유명한 사람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말했다. “책은 끌리는대로 오직 재밌게 읽어야 합니다”. 나는 이 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맞다. 새로운 정신의 맥락을 추가하는 것도 끌려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이동진의 말을 더 들어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데요. 스피노자의 말입니다.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만 아는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얘기죠” 끌리는대로 읽되, 분야를 한정하지 말고 넓게 읽으란 조언이다. 하지만 이를 분야에 한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다시 말해 정체성의 넓이를 의식하는 책읽기를 해보자는 얘기다. 서구로 대표되는 제 1세계, 그 바깥의 글을 읽기. 장애인의 글을 읽기, 동성애자의 글을 읽기, 여성의 글을 읽기. 한국, 그것도 서울에서 자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인 나는, 나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자의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넓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체성이 무조건 새로운 의식을 담보하진 않는다. 새로운 사유, 첨단의 사유가 담긴 서구 백인 남성의 글도 당연히 있고. 하지만 어떤 글을 읽을 때든 필요한 것은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다.


이렇게 읽기는 쉽지 않다. 우리에겐 너무 많은 ‘리스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100대 필독 도서 리스트, 하버드대 선정 100대 필독 도서 리스트,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리스트, 역대 베스트셀러들과 스테디셀러들의 리스트. 이런 리스트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 넓게 읽을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이런 리스트들이 독서를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분명 도움이 될 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권위를 해체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모든 선택이 권위에 의해 이뤄져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새로운 정신의 맥락을 더해주는 책, 다양한 세계를 만나도록 돕는 책은 넘치도록 많다. 서점과 도서관을 우주에 비유하는 이유다. 그만큼 넓은 세계가 책의 세계에는 펼쳐져 있으니까. 그러니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다른 행성으로 모험을 떠나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권위 있는 리스트가 좋은 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 그 리스트를 참고는 하되 의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으로써 책으로 만들어진 우주에 자기만의 별자리를 새겨보시길. ‘그저 상품인’ 책들은 제공하지 못 하는 모험을 떠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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