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부터 봤었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비슷한 제목의 다른 영화들을 여럿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관심을 끌만한 영화 제목에 톰 크루즈 주연인 영화를 아직 안 봤다고? 게다가 2005년 작이었다. 확실치 않은 기억에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영화를 재생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봤던 거잖아’라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본 기억은 전혀 없었고, 보면 볼수록 새로웠다.
영화 초반부 외계인들의 폭풍 공격 이후, 지구의 영웅이 등장하여 우주인과 스펙터클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관습적으로 기대했다. 영화 초반 페리어(탐 크루즈)가 멋지게 컨테이너를 곡예하듯이 쌓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전투기든 뭐든 조종하고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쳐부수는 장면을 상상했다. 갑자기 등장한 생경한 외계의 적들을 처음 볼 때도 이들을 어떻게 쳐부술지가 궁금했고, 매버릭이 영웅처럼 나타나 지구를 구하는 한 편의 영웅 서사가 이어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외계 적들의 공포스러운 파괴 장면만 이어질 뿐 그들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한 편의 액션 서사를 기대하고 봤으나, 이어지는 장면은 스릴러나 공포물에 가까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적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인간들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공포심에 하얗게 질려 죽어 나갔다. 도무지 우주 전쟁의 서사 속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전쟁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존재에 의해 짓밟히는 인간들의 미약함만이 부각될 뿐이었다.
자신이 대항하고 맞서 싸울만한 적이 나타나면, 그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치솟는다. 하지만 압도적 상대와 마주치면, 움직일 수조차 없고, 방향감을 상실한 채 지향점 없이 자율신경계에 의해 조정당하며 허우적대듯 도망친다. 우리의 주인공 페리어도 압도적 힘 앞에서 대항 의지마저 상실한 채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도망칠 뿐이었다. 오로지 육체적 생존 의지만 가득한 순간. 자기 한 몸조차 건사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는 부성을 품고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생존 본능 속에서 허우적대는 순간에 맞닥뜨린 부성애는 그러한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희생적 행동들을 이끌어낸다.
페리어의 부성애는 생존 본능을 넘어서며 작동하고, 아이를 지켜내는 일에 총력을 다한다. 불안 행동을 보이며 아이의 생존을 위협하는 오길비(팀 로빈스)를 죽이며 위협 요인을 제거하고, 아이를 납치한 거대한 적에게 맹렬히 돌진하여 아이를 지켜낸다. 이 영화는 우주에서 온 미지의 적과의 싸움을 주된 서사로 삼지 않는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부성애 가득한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기존의 우주전쟁류의 영화와 차이가 있다. 재난처럼 몰려온 우주의 적들은 인간이 아닌 지구의 미생물에 의해 무너지고, 그렇게 지구 해방을 맞이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압도적 힘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외계인에 맞서는 인간들의 무력함과 공포심, 재난적 위협 속에 개체의 생존이라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위협하는 존재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인간의 발에 짓밟히며 살기 위해 땅바닥을 정신없이 기어 다니는 개미떼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