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의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려 했나

공감하여 존재하는 사회

by kamaitsra

욜로, 비혼, 딩크, 금수저, 흙수저, 영끌, 갓생, 이대남, 이대녀. 우리는 그것을 유행어라고 불렀다. 신조어 리스트를 만들고, 세대 분석 보고서를 썼고, 트렌드 코리아를 매년 사봤다. 그러나 나는 그 단어들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한 사회가 공감받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원했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려 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기존 사회 분석이 놓치는 것이 있다.


보통 지난 10년의 한국 사회는 이렇게 설명된다. 저출산. 1인 가구 증가. 청년 불안. 계층 이동 좌절. 자산 격차. 정치 양극화. 이 설명은 틀리지 않는다. 2024년 1인 가구는 804만 5천 가구로 전체의 36.1%에 달했다. OECD는 한국의 초저출산을 세계 최저 수준의 구조적 문제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늘 현상을 쪼갠다. 경제 문제는 경제 문제대로, 청년 문제는 청년 문제대로, 정치 갈등은 정치 갈등대로 본다. 각 파편이 따로 분석되는 동안, 그 파편들을 연결하는 더 깊은 질문은 사라진다.


나는 다르게 본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사회가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공감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존재 방식을 찾으려 한 결과는 무엇인가.




예전의 한국은 달랐다.


가족, 학교, 직장, 결혼, 지역, 조직. 이 구조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존재를 승인해주는 힘이 있었다. 결혼하면 어른이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 사람 구실을 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라고 불렸다. 소속이 곧 승인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나는 어느 집 아들이었고, 어느 회사 직원이었고, 어느 아파트 동 주민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은 달랐다. 그 구조가 약해졌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졌고,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기본 경로가 아니게 되었다. 청년은 독립을 출력해도 사회가 잘 반응하지 않는 시간을 오래 겪었다. 2052년에는 1인 가구 비중이 41.3%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OECD는 한국의 출산율 하락이 단순한 가치관 변화가 아니라 노동시장, 돌봄, 주거, 교육 구조의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는 함께 있으니 존재하는 사회에서 각자 증명해야 존재하는 사회로 이동했다.


이것이 지난 10년의 진짜 변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를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1인 가구, 나 혼자 산다, 혼밥, 혼술. 이것은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니었다. 소속이 아닌 방식으로 존재를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어떤 사람은 미루며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미루고, 독립을 미뤘다. 미루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아무 구조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는 존재적 선택이었다.


어떤 사람은 버티며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직장을 버티고, 관계를 버티고, 삶 자체를 버텼다. 버팀이 유일한 출력이 되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산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영끌, 부동산, 코인, 주식. 내 이름 앞에 붙는 숫자가 나를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어떤 사람은 루틴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갓생, 미라클 모닝, 운동 인증, 독서 기록. 반복이 존재를 만든다는 감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취향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힙스터, 키치, 빈티지, 특정 브랜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진영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이대남, 이대녀, 페미니즘, 반페미니즘. 어느 편인지가 존재를 확인해주는 방식이 됐다.


이 방식들은 모두 다르게 보이지만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어떻게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공감이론은 이것을 다르게 읽는다.


사회는 그냥 변하지 않는다. 사회도 어떤 조건에 반응한다. 그 반응이 새로운 공감 방식을 만들고, 그 공감 방식이 사회를 다시 진화시킨다. 개인에게 의지, 반응, 이성과 공감의 운영 방식, 출력과 대응, 학습과 진화가 있듯이, 사회에도 집단적 의지와 집단적 반응, 집단적 학습과 집단적 진화가 있다.


지난 10년의 한국은 특정한 조건들에 반응하며 개인화된 공감 방식으로 진화했다. 소속 구조가 약해지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그 출력들이 쌓여 지금의 트렌드가 됐다. 욜로는 단순한 소비 태도가 아니라, 미래 집단 공감장을 포기한 자리에서 현재 개인 공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트렌드는 유행이 아니다. 한 사회가 변화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공감하며 존재를 유지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진화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 조건들이 앞으로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0년을 만든 조건이 바뀌면, 한국 사회의 공감 방식도 다시 바뀐다. 그 변화를 이끌 요인이 이미 보인다.


AI가 온다. AI는 반복적 이성 노동의 가치를 흔들 것이다. 준비하고 성실한 것만으로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독창성, 관계적 공감, 취향, 상징적 출력으로 공감받으려 할 것이다. KDI는 AI가 한국 노동시장과 일의 구조 전반에 자동화와 재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단순한 직업 변화가 아니다. 나는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쓰이는 과정이다.


초저출산과 고령화가 임계점에 온다. 지난 10년은 혼자 감당할 수 있었기에 개인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돌봄, 주거, 노후, 생활비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국면이 온다면, 전통 가족주의가 아닌 취향 기반 공동체, 생활 단위 연대, 실용적 협력 같은 새로운 공동체 공감이 등장할 수 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이 자유였던 시대가 지나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생존이 되는 시대가 온다.


자산시장과 금융이 더 일상화된다. 지난 10년은 벼락부자 서사였다. 앞으로는 투자와 자산 관리가 적금처럼 일상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와 자산시장이 거시경제와 생활경제 양쪽 모두의 핵심 위험 요인이라고 반복해서 다루고 있다. 투자하지 않아 뒤처지는 존재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


국가 단위 공감장이 다시 강해진다. 세계질서 불안과 안보 환경 변화는 국가 단위 소속감과 공감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개인의 취향과 진영이 존재를 만들던 시대에서, 국가와 연대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흐름이 섞일 수 있다.


K-컬처가 한국인의 존재 출력 방식이 된다. 한국인은 직장과 노동만이 아니라, 문화와 취향, 콘텐츠와 상징을 통해 더 많이 존재를 출력할 수 있게 됐다. K-콘텐츠 산업 매출 목표가 2025년 165조 원으로 제시될 정도로, 문화는 이미 부수적 요소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존재를 세계에 출력하는 핵심 방식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봐야 하는가.


키워드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키워드들이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공감받고 존재를 유지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흔적을 만든 요인들이 앞으로 바뀔 때 한국 사회의 존재 방식도 다시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글 이후에 하나씩 들여다보려 한다. 혼자 존재하는 방식, 미루며 존재하는 방식, 버티며 존재하는 방식, 자산으로 존재하는 방식, 루틴으로 존재하는 방식, 취향으로 존재하는 방식, 진영으로 존재하는 방식. 각각이 어떤 조건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학습됐고, 어떻게 굳어졌으며, 앞으로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를.


지난 10년의 한국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감하며 다시 진화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일이다.


당신은 지난 10년 동안 어떤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