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의 한국 사회
늦춰진 존재, 반응받지 못한 의지, 그리고 작은 의지의 미래
서른 살인데 아직 부모 집에 산다.
이 말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안됐다거나, 게으르다거나. 둘 다 표면적인 반응이다. 나는 이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오랫동안 반응받지 못한 의지가 마지막으로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장소로 돌아간 결과다.
왜 청년은 독립하지 못하고, 취업을 두려워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는가.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청년이 나약해서. 눈이 높아서. 의지가 부족해서. 나는 이 설명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청년 문제는 취업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해야 할 시기를 사회가 계속 늦춘 결과다.
존재에는 시기가 있다.
꽃이 봄에 피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계절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기에 피지 못한 꽃은 나중에 다시 피어도 무언가 어긋나 있다. 인간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사춘기에는 자아가 독립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다. 청년기에는 사회로 나가 자기 의지를 실험하고, 부딪히고, 반응을 받으며 존재를 키워야 하는 시기가 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인간의 발달이 각 시기에 맞는 심리적 과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청년기의 핵심 과제는 자아 정체성 확립이다. 이 시기에 충분히 사회와 부딪히지 못하면 정체성은 유예 상태로 굳는다. 에릭슨은 이것을 심리적 모라토리엄이라 불렀다. 임시 유예. 결정을 계속 미루는 상태.
문제는 지난 10년의 한국이 청년의 모라토리엄을 사회 구조적으로 연장해왔다는 데 있다. 청년이 스스로 미룬 것이 아니다. 미루도록 설계된 사회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는 나이에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시기에 맞게 부딪히고, 도전하고, 반응받을 때 비로소 그 시기의 존재가 된다.
사회는 청년의 사회 진출 시기를 계속 늦췄다.
한국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것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대학은 기본이다. 영어도 해야 한다.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인턴도 해야 한다. 어학연수도 있으면 좋다.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가 이어진다. 필요하면 대학원까지.
청년은 늦은 것이 아니라, 늦어지도록 설계된 사회를 통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졸 취업자의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학력화는 계속되지만 사회 안착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회는 청년에게 사회에 나오기 전에 이미 완성된 인간이 되라고 요구한다. 스펙은 준비가 아니라, 사회 진입을 늦추는 대기실이 되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대기실에서 더 오래 기다릴수록 더 잘 준비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역설이 청년을 오래 붙잡아둔다.
자본주의 욕망은 청년을 끝없는 준비의 미로에 가두었다.
이 구조는 우연이 아니다. 미국 사회학자 랜달 콜린스(Randall Collins)는 저서 상호작용 의례 사슬(Interaction Ritual Chains, 2004)에서 자격 경쟁이 경제적 이득보다 사회적 지위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누군가 스펙을 높이면 모두가 따라 높인다. 절대적 준비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경쟁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이 시장을 움직인다.
사교육 시장, 어학 시장, 자격증 시장, 취업 컨설팅 시장. 이들은 청년의 미래를 돕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사회 진입 전 비용과 시간을 계속 늘린다. 청년의 불안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다. 사회는 청년의 불안을 시장화했고, 준비를 끝없는 소비로 바꾸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7조 1천억 원이다. 청년은 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소비하도록 길들여졌다.
사회 진출 전 비용은 이미 너무 크다.
청년은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엄청난 비용을 소모한다.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 생활비, 취업 준비 비용, 자격증과 시험 응시료, 어학연수 비용. 이것들이 쌓이면 청년은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이미 빚진 존재가 된다.
경제학자 피터 테민(Peter Temin)은 저서 사라지는 중간계급(The Vanishing Middle Class, 2017)에서 고등 교육 비용이 올라갈수록 그 교육이 투자가 아니라 부채가 되는 구조를 보여줬다. 첫 취업 소득으로 회수하기 어려운 준비 비용이 쌓이면, 사회 진출은 희망이 아니라 회수전이 된다.
청년은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체력을 잃는다. 이미 지쳐 있는 상태로 달려야 하는 레이스. 그 레이스의 결과가 취업 불안과 부모 의존이다.
준비 비용이 너무 커지면, 사회 진출은 희망이 아니라 회수전이 된다.
그리고 의지는 점점 작아졌다.
20대는 독립하고 싶고, 사회에 나가고 싶고, 자기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은 시기다. 이 의지는 처음에는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사회가 반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의지가 줄어든다. 자존감이 약해진다. 미래 감각이 사라진다. 도전의 크기가 작아진다. 결국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공감이론에서 존재는 의지가 반응을 만나 공감으로 이어질 때 실체화된다. 의지에 반응이 없으면 공감이 끊기고, 공감이 끊기면 존재는 약해진다. 청년의 의지가 작아진 것은 청년이 약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그 의지에 반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응받지 못한 의지는 공감되지 못하고, 공감되지 못한 존재는 점점 사라진다.
부모 의존은 편안함의 선택이 아니라, 마지막 공감장으로의 후퇴다.
30대가 되어서도 취업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머무는 청년을 우리는 쉽게 비난한다. 그런데 그 장면을 다르게 읽어야 한다. 그것은 이미 사회에서 존재를 상실한 뒤, 마지막으로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부모 곁은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고, 최소한 반응이 있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공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확실하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부모 동거 비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비경제활동 청년, 취업 준비 장기화, 이른바 쉬었음 인구도 증가 추세다. 이것을 나태함이라고 읽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부모 집은 미성숙의 상징이 아니라, 마지막 공감장일 수 있다.
하지만 청년은 이미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과거 니트화된 청년이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청년이 정상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군대 월급을 종잣돈으로 장사를 시작한다. 온라인 쇼핑몰을 연다. PT 강사, 여행 가이드, 커피 로스터, 공방 운영, 로컬 비즈니스. 대기업보다 작은 만족, 도시보다 귀농, 취향과 생존을 결합한 방식.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저서 장인(The Craftsman, 2008)에서 손으로 만들고 직접 반응을 받는 장인의 노동이 인간에게 깊은 존재감을 준다는 것을 보여줬다. 빠르게 반응받는 작은 기술. 즉각적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일. 이런 방식이 거대한 성공을 오래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줄 수 있다.
청년은 더 이상 사회가 정해준 유일한 길만 따라가지 않는다. 큰 성공 하나를 위해 존재를 유예하는 대신, 작더라도 반응받을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래는 큰 의지보다 작은 의지의 실체화로 갈 것이다.
예전에는 대기업, 전문직, 박사, 수도권 안정 궤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이 존재의 기준이었다. 앞으로는 부모 가업, 시간 강사, 소규모 자영업, 취미의 수익화, 귀농, 로컬 비즈니스, 작은 직업적 자율성. 이런 길도 중요한 존재 방식이 된다.
큰 의지는 멀리 있지만 반응은 늦다. 작은 의지는 작아 보이지만, 지금 바로 반응을 받을 수 있다. 존재는 거대한 꿈을 오래 유예하는 것보다, 작은 의지라도 공감받으며 계속 실체화하는 편이 더 건강하다.
AI가 반복적 노동의 가치를 흔들면서, 기술 자격보다 취향과 감각, 직접 만들고 반응받는 방식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청년이 작은 의지를 실체화하기 가장 좋은 시대가 오고 있다.
사회는 작은 의지가 공감받을 수 있는 반응장을 넓혀야 한다.
청년 문제의 해법은 모두를 같은 성공 경로에 다시 태우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작더라도 공감받고 존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반응장을 넓혀주는 것이다.
청년 수당, 작은 창업 실패 완충장치, 로컬 비즈니스 지원, 귀농 지원, 주거 지원, 작은 기술과 서비스 직업의 사회적 인정, 취향 기반 노동의 제도화. 이것들이 필요하다. 거창한 성공 장학금보다, 작더라도 살아볼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압박이 아니라, 작아도 살아볼 수 있는 반응장이다. 사회는 청년에게 성공을 강요하는 대신, 존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지난 10년의 한국 사회는 청년을 과잉 경쟁 속에 오래 붙잡아두며, 청년이 청년답게 존재해야 할 시기를 늦춰버렸다. 취업 불안과 부모 의존은 그 결과다.
청년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유예된 존재였다. 이제 청년은 거대한 성공의 대기실에서 나와, 작은 의지라도 반응받을 수 있는 삶으로 이동하려 한다.
당신이 청년이라면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의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의지는 지금 반응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