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의 한국 사회
자산이 존재를 증명하는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균열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질문이 생겼다.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가가 아니라, 저 사람은 어디에 사는가. 그리고 그 집이 자기 집인가. 이 질문이 처음보다 훨씬 빠르게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업명을 듣는 것보다 서울 어느 구에 사는지를 듣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사회가 됐다.
왜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무엇을 하며 사는가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더 민감해졌는가. 보통은 이렇게 설명한다. 공정하지 않아서. 집값이 올라서. 계층 이동이 막혀서.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단지 불공정해서 화가 난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깊은 층위에서, 자산이 곧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직업이 존재를 설명했다.
공무원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안정성을 설명했다. 의사라는 말은 그 사람의 지위를 설명했다. 대기업 과장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설명했다. 무엇을 하며 사는가가 곧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줬다. 직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의 핵심 통로였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저서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 1922)에서 직업적 지위가 개인의 사회적 명예와 공동체 내 위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베버는 이것을 신분 집단이라 불렀다. 무엇을 하는가가 그 사람의 존재를 설명하는 구조였다. 소득은 존재를 유지하는 힘이었고, 직업은 존재를 증명하는 언어였다.
그 언어가 지난 10년 동안 바뀌었다.
지금은 자산이 존재를 증명하는 공감 방식이 되었다.
서울 아파트 보유 여부, 부동산 자산 규모, 금융자산의 축적, 부모의 자산 배경. 이런 요소가 그 사람의 위치를 더 빠르고 강하게 설명한다.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서울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이 더 강한 존재 증명을 하는 현실이 생겼다.
이제 자산은 부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다. 자산은 단순한 축적 수단이 아니라 존재 방식을 증명하는 공감 방식이 되었다. 자산이 곧 존재이고, 자산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회가 되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75%를 넘는다. OECD 평균이 40~5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다. 자산이 곧 아파트이고, 아파트가 곧 존재의 증거인 구조가 물질적으로도 확인된다.
이것은 단순한 공정성 문제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공정성 문제로 본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훨씬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분노한다. 제도와 구조를 비판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낸다. 어떤 사람은 포기한다. 어차피 못 이긴다고 느끼고 의지를 줄인다. 어떤 사람은 적응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산 중심 질서에 맞춰 산다. 어떤 사람은 찬양한다. 자산을 가장 효율적이고 우월한 존재 방식으로 본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불공정을 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산 질서를 미워하고, 누군가는 굴복하고, 누군가는 숭배한다. 문제는 이 모든 반응이 결국 공동체의 공감 질서를 깨뜨린다는 데 있다.
핵심은 공정성 논쟁 자체가 아니라, 자산 중심 질서가 공동체를 어떻게 붕괴시키는가에 있다.
자산 중심 질서는 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가.
자산이 존재의 핵심 증명 방식이 되면, 공동체의 다양성과 공감 가치는 약해진다. 사람을 인간 자체로 보기보다 자산으로 읽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이 약해진다. 자산이 적으면 존재감도 약하다고 느끼게 된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저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3)에서 자산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초과할 때 불평등이 자기 강화적으로 심화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노력의 가치보다 자산의 가치가 빠르게 늘어날 때, 사회는 일하는 자와 소유하는 자로 갈라진다. 이 갈라짐은 단순한 빈부 격차가 아니다. 공동체가 서로를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EETI 공감이론에서 공감은 다양한 존재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서로를 공감하는 구조다. 그런데 자산 중심 질서는 이 다양성을 훼손하고 공감 가치를 떨어뜨린다. 공동체 붕괴는 자산 격차 그 자체보다, 자산이 유일한 존재 기준이 될 때 시작된다.
청년은 사회에 나갈수록 자산이 곧 존재라는 질서를 배운다.
처음에 청년은 이렇게 믿는다. 공부하면 된다. 취업하면 된다. 열심히 벌면 된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알게 된다. 내 소득만으로는 자산 격차를 따라가기 어렵다. 직업적 성취만으로는 존재를 크게 바꾸기 어렵다. 자산 배경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궤도가 다르다.
직업은 있는데 자산이 없어 불안한 청년이 있다. 월 3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이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30년 이상을 모아야 한다는 감각. 이것은 계산 문제가 아니라 존재 문제다. 내 노동이 이 사회에서 얼마짜리인지를 아파트 가격이 말해주는 구조에서, 청년의 존재감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청년은 사회에 진출할수록 자산이 존재를 증명하는 사회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소득만으로는 그 질서에 닿기 어렵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계층 이동 불신은 의지가 반응받지 못할 것이라는 집단적 체감이다.
계층 이동 불신은 단순한 박탈감이 아니다. 내 의지가 사회에서 충분히 반응받지 못할 것이라는 집단적 체감이다. 노력해도 올라갈 수 있을지 믿지 못한다. 자산 배경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느낀다. 의지가 사회에 던져질 이유가 약해진다.
EETI 공감이론에서 의지는 반응을 만나 공감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존재를 실체화한다. 의지가 반응받지 못하면 공감이 약해지고, 존재감도 줄어든다. 계층 이동 불신은 단순한 경제 불만이 아니라 존재 의지의 약화다.
계층 이동 불신은 사다리가 없다는 감각이 아니라, 내 의지를 던질 이유가 사라지는 감각이다. 사람이 사회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열심히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도 반응이 올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큰 충격이 없다면 자산 욕망은 더 강해진다.
혁명적 개혁이나 금융 붕괴급 충격이 없다면, 앞으로 자산에 대한 욕망과 추구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자산은 존재하려는 의지 입장에서 가장 빠르고 강하게 존재를 실체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산은 시간을 압축한다. 30년 치 노동을 1년의 자산 수익으로 대체한다. 자산은 노력을 대체한다. 실력보다 빠르게 서열을 설명한다. 자산은 존재를 즉시 실체화한다.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 없이 숫자로 말한다. 그래서 존재하려는 의지는 자산 쪽으로 더 강하게 끌릴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자산이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는 기본 신분증처럼 작동할 수 있다. 자산이 있어야 출발할 수 있고, 자산이 있어야 선택권이 생기고, 자산이 있어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구조. 현재는 자산에 대한 욕망의 시대다. 미래에는 자산이 욕망이 아니라 디폴트 신분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자산 격차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산 자체보다 먼저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핵심은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은 것이 아니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2011)에서 사람이 손실에 훨씬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것이 자산 증식을 방해하는 가장 큰 심리적 구조다. 공포로 판단하고, 욕심으로 행동하고,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금융 문해력, 투자 원리 이해, 리스크 관리 감각, 장기 복리 감각, 자산 배분 능력. 이것들이 앞으로의 생존 기술이다.
자산을 먼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 미래의 생존 기술은 돈을 버는 능력만이 아니라 돈을 불리는 능력이다.
하지만 자산이 유일한 존재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산 증식 능력이 중요해질수록 한 가지를 놓치면 안 된다. 자산이 유일한 존재 기준이 되면 공동체에서 밀려나는 것들이 있다. 직업적 성실함, 관계의 신뢰, 공동체 기여, 창작과 돌봄, 작은 의지의 다양성, 인간 자체의 존엄.
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2020)에서 능력주의가 극단화될 때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오직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능력 없는 사람은 실패를 오직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산 중심 질서도 마찬가지다. 자산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자산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자산은 생존 기술일 수 있지만, 존재의 유일한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사회는 자산 증식 능력을 가르치되, 자산만이 유일한 존재 방식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지켜야 한다.
지난 10년의 한국 사회는 자산을 중심으로 존재를 읽는 사회로 이동했다. 이 질서는 강력하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후세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공감 가치를 떨어뜨린다.
문제는 자산 격차가 아니라, 자산이 유일한 존재 언어가 되어가는 데 있다.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자산 증식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는 자산 말고도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감장을 지켜야 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은 아직 남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