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80리터 배낭을 메고 낭만을 꿈꾼 바보의 기록

발리 지옥은 나로부터 시작됐다

by kamaitsra

발리 지옥의 시작은 발리가 아니었다.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분명하다. 발리가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괴롭혔다. 발리는 그저 자기 방식대로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방식을 무시하고 들어갔다. 그러니 결과는 뻔했다.




나는 원래 발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발리는 신혼여행지였다. 휴양지였다. 예쁜 리조트, 수영장, 마사지, 바다, 선셋, 칵테일 같은 이미지가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좀 뻔한 여행지처럼 느껴졌다. 다들 가니까 가는 곳. 사진 찍고 쉬다 오는 곳. 예쁘지만 조금 심심한 곳.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라자암팟에 다녀오게 됐다. 스쿠버다이빙으로 유명한 그곳을 가는 길에 발리를 경유하게 됐고, 딱 10시간 정도 머물 시간이 생겼다. 나는 꾸따 지역으로 나갔다. 바다를 봤다. 커피를 마셨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렸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풍경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음식이 특별해서도 아니었다. 누가 대단히 친절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정해진 것이 별로 없는 느낌. 내가 어떤 의지를 갖든, 이곳은 어떻게든 그것에 반응해줄 것 같은 느낌.


한국에서는 많은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 길도 정해져 있고, 표정도 정해져 있고, 말투도 정해져 있고, 하루의 속도도 정해져 있다. 무언가를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고, 계획이 있어야 하고,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발리는 달랐다. 적어도 그 10시간 동안의 발리는 내게 그렇게 느껴졌다. 느슨했다. 허술했다. 조금 무질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공감이론으로 말하면 그곳은 반응의 폭이 넓은 장소였다. 내가 어떤 의지를 꺼내도, 발리는 그것을 딱딱하게 재단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주거나, 흔들거나, 밀어내거나, 다른 방향으로 튕겨냈다. 그 반응이 이상하게 좋았다.


나는 그 10시간 만에 발리의 매력을 느껴버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사람은 가끔 짧은 경험을 전체 진실로 착각한다. 잠깐 좋았던 감각을 운명이라고 착각한다. 한 장면이 마음에 들면, 그 장소 전체가 나를 구원해줄 것처럼 믿어버린다. 나는 그랬다.


"발리 괜찮은데?"


그 생각은 점점 커졌다. 결국 나는 17일 동안 혼자 발리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용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모했다.




그때의 나는 사실 발리에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또는 나를 밀어붙이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왜 혼자서 17일이나 발리에 가려고 했는지. 왜 굳이 편한 휴양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만드는 여행을 꿈꿨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반쪽 날개를 잃어버린 오리 같았다. 오리는 날지 못해도 산다.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먹고살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쪽 날개가 사라진 오리는 안다. 무언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살아는 있지만 제대로 날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그때의 내가 그랬다. 회사도 다녔다. 밥도 먹었다. 사람도 만났다. 일상은 굴러갔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했다. 내 안의 한쪽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무엇이 빠졌는지는 몰랐다. 다만 지금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생각했다. 그냥 쉬는 여행 말고, 나를 조금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여행. 몸이 힘들면 머리가 조용해질 것 같았다. 걷고, 오르고, 버티다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발리는 등산으로도 유명하다는 것을. 바투르산, 아궁산, 롬복의 린자니산, 자바섬의 이젠 화산과 브로모 화산. 발리에서 동부 자바로 넘어가며 화산들을 트레킹하는 루트가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이상한 불이 켜졌다.


"그래, 백패킹이다."


텐트를 치고, 밖에서 자고, 직접 먹을 것을 챙기고, 산을 오르고, 낯선 길을 걷는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었다. 그때의 나는 낭만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트레킹을 한다. 화산을 오른다. 바람 부는 곳에 텐트를 친다. 아침에는 직접 커피를 끓인다. 낯선 해변에서 조용히 밥을 먹는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버틴다.


상상 속의 나는 꽤 그럴듯했다. 문제는 현실의 나는 상상 속의 나보다 훨씬 약했다는 것이다.




준비를 시작했다.


지인을 통해 백패킹 장비를 빌렸다. 텐트, 의자, 테이블, 버너, 코펠, 침낭, 매트. 거기에 먹을 것까지 꽉꽉 채웠다. 김치, 고추장, 김, 참치, 햇반 비슷한 것들, 라면, 비상식량. 한국 음식이 그리울까 봐 너무 많이 챙겼다. 마치 발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 파병되는 사람처럼 준비했다.


그 결과 80리터짜리 등산 가방이 완성됐다.


엄청났다.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불안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 발리 백패킹 간다."


다들 의아해했다.


"발리에 백패킹?" "거기 휴양지 아니야?" "그걸 왜 혼자 해?"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흥. 너희는 모른다. 이 낭만을. 이 자유를. 이 도전을.


사실 그들의 의아함은 꽤 정확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 반응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감이론에서 반응은 의지를 조정하는 신호다. 그런데 나는 주변의 반응을 조정 신호가 아니라 나의 의지를 방해하는 잡음 정도로 취급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기서 이미 지옥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출국 일주일 전에 또 다른 신호가 왔다.


구글링을 하다 봤다. 2월의 발리는 우기라는 것을. 안전상의 이유로 일부 산은 입산이 금지될 수 있다는 것을. 순간 멈칫했다.


우기. 입산 금지. 안전 문제.


분명히 멈춰야 하는 신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몰래 다녀왔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자 쓸데없는 고집이 발동했다. "현지 가서 상황 보면 되지 않을까." "필리핀 우기도 겪어봤는데, 그냥 스콜처럼 내리다 그치겠지."


참 바보 같았다. 스콜과 우기는 다른 세계다. 특히 낯선 나라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과 길 위에서 만나는 비는 전혀 다른 존재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80리터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티켓팅도 이상하게 잘 풀렸다. 수화물 허용 무게를 넘은 것 같은데 추가 비용도 없었다. 비상구 자리도 무료로 받았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보통은 일이 잘 풀리면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세상이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고 나를 지옥 입구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틀리지 않았다.




발리에 도착했다.


수화물을 찾았다. 거대한 배낭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천천히 나왔다. 나는 배낭을 들었다. 그리고 메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X됐다.


너무 무거웠다. 정말 너무 무거웠다. 한국에서 잠깐 들어봤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잠깐 드는 것과 계속 메고 있는 것은 다른 세계였다. 어깨가 바로 내려앉았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허리가 삐걱거렸다.


가방은 크기까지 했다. 움직일 때마다 여기저기 치였다. 사람과 부딪혔다. 기둥에 걸렸다. 시야가 좁아졌다. 휴대폰을 꺼내 길을 검색하려고 하면 팔과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잠깐 멈춰 서는 것조차 일이었다.


절망적이었다.


나는 원래 공항에서 당당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택시 기사들의 바가지를 피하고, 흥정도 멋지게 하고, 그랩도 잘 부르고,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가 저렴하게 이동할 계획이었다. 머릿속의 나는 아주 능숙한 여행자였다. 현실의 나는 80리터 배낭에 깔린 사람에 가까웠다.


밤이었다. 피곤했다. 이미 지쳤다. 바가지를 쓰지 않겠다는 고집을 어찌저찌 내려놓고 공항 밖으로 나가려 했다. 구글맵은 나를 정확히 인도하지 못했다.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점점 멍해졌다.


그러다 비가 왔다.


옴마야.


정말 그 말밖에 안 나왔다.


첫날부터 비였다. 첫날부터 무거운 배낭이었다. 첫날부터 길을 못 찾았다. 설상가상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어렵사리 택시를 탔다. 예약한 호스텔 근처에서 내렸다. 택시가 숙소 바로 앞까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길이 너무 좁았다. 다시 배낭을 메었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구글맵 하나에 의지했다. 길은 어두웠다. 불빛이 거의 없었다.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날다람쥐처럼 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달랐다. 배낭이 나를 코끼리로 만들어놓았다.


철퍽. 또 철퍽.


몇 번이나 물웅덩이를 밟았는지 모른다. 신발은 젖고, 다리는 무겁고, 어깨는 아프고, 골목은 끝나지 않았다.


구글맵이 알려준 호스텔 위치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허 참.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간판도 없고, 사람도 없고, 불빛도 없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같은 골목을 몇 번이나 오갔다. 아무도 없었다.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오밤중에 근처 집을 찾아갔다. 자고 있던 현지인을 깨워 호스텔 위치를 물었다. 거의 애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그 사람은 무슨 죄였을까.


그렇게 겨우 숙소를 찾았다. 방에 들어갔다. 배낭을 내려놓았다.


쿵.


그 소리가 마치 내 고집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침대에 앉았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어깨는 이미 망가진 것 같았다. 무릎은 시큰거렸다. 마음은 너덜너덜했다.


그날은 발리 지옥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이었다.




그 배낭은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특히 오토바이를 렌트했을 때가 문제였다. 배낭이 너무 커서 어깨에 멜 수 없었다. 그래서 스쿠터 의자와 운전대 사이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완전히 꽉꽉 눌러 담았다. 당연히 내 두 발을 둘 곳이 없었다. 핸들도 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바이는 오토바이인데, 나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배낭을 운송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거기에 폭우가 쏟아지면 끝이었다. 배낭은 다 젖었다. 안에 있던 옷도 젖었다. 전자기기도 불안했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까 봐 챙겨온 김치, 고추장, 김, 참치가 그 순간에는 사랑이 아니라 짐처럼 느껴졌다. 다 내다 버리고 싶었다.


더 웃긴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가져간 백패킹 장비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텐트를 어떻게 치나. 어디서 취사를 하나. 어디서 낭만을 즐기나.


내가 상상한 낭만은 날씨 앱 앞에서 무너졌다. 우기 앞에서 사라졌다. 현실 앞에서 찌그러졌다.


딱 한 번 쓴 적은 있다. 우붓에서 아메드로 넘어가는 길에 해변가 Pantai Goa Lawah 비치에 들렀을 때였다. 나는 의자와 테이블을 꺼냈다. 아침 식사를 했다. 낭만은 있었다. 눈물의 낭만. 웃픈 낭만. 쓸데없는 낭만. 털려버린 낭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즐겼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젖고 무거운 배낭 옆에서, 꾸역꾸역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 그 장면은 우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기도 했다.


인생이 그렇다.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그 고생 속에서 기어이 어떤 장면 하나를 건진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장면 때문에 또 웃는다.




그래서 깨달았다.


인생은 지팔지꼰이다.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 아저씨가 된 마당에 이미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분명했다. 누굴 탓하겠나.


발리는 잘못이 없었다. 비도 잘못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도 잘못이 없었다. 택시 기사도, 구글맵도, 좁은 골목도, 어두운 밤도 잘못이 없었다.


내 의지가 너무 컸고, 반응을 너무 무시했다.


나는 발리가 내 낭만에 반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리는 내 착각에 반응하지 않았다. 발리는 그저 자기 현실을 보여주었다. 우기에는 비가 온다. 무거운 배낭은 무겁다. 낯선 골목은 낯설다. 혼자 하는 여행은 혼자 감당해야 한다.


공감이론으로 보면 이 여행의 첫 번째 실패는 분명했다. 의지는 있었다. 너무 강했다. 하지만 반응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의아함. 2월 우기라는 정보. 입산 금지라는 경고. 비현실적으로 무거운 배낭. 발리행 비행기에서 나만 백패킹 가방을 메고 있던 위화감. 세계는 계속 반응하고 있었다. 멈추라고. 조정하라고. 다시 생각하라고.


그런데 나는 듣지 않았다.


의지가 강하다고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지는 반응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반응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공감이 생긴다. 나는 그 반응을 무시한 채 발리에 도착했다.


그러니 지옥은 발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지옥은 내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발리는 그 지옥에 풍경을 입혀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80리터 배낭을 메고. 젖은 신발을 끌고. 아직도 낭만을 포기하지 못한 채.


진짜 발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