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던 발리가 나를 살렸다.
17일이었다.
17일 동안 나는 발리에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과하게 느껴진다면, 음, 그럴 수도 있다. 보통 발리는 휴양지고 힐링하는 곳이고 즐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 그랬다. 마치 서바이벌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도 버텨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휴가라기보다 일종의 야생 체험이었다. 잘 훈련된 한국인 중년 남성이 동남아 카오스 정글 속에 던져져 17일 동안 어떻게 되는가를 실험하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시청률은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꽤 힘들었다.
대략적인 스포일러를 풀자면 이렇다. 여기저기 다치고 덧나고. 화창할 때는 태양이 너무 뜨겁다. 실명할 것 같은 수준으로 뜨겁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폭우가 쏟아진다. 하늘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묘사였다. 온몸이 순식간에 다 젖는다. 신발 안에서 물이 찰박거린다. 도로는 교통 체증과 매연이 뒤엉켜 있고, 오토바이는 어디서나 튀어나온다. 인도로, 역주행으로, 심지어 내 감각의 사각지대에서. 주차를 해도 돈 달란다. 길을 걷다 잠깐 멈춰 서도 돈 달란다. 그러면서 웃는다. 그 웃음이 더 무서웠다.
네비게이션은 발리의 도로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구글 지도는 발리에서 일종의 철학적 지침서 같은 역할을 했다. 방향은 제시하지만 실제 길은 알아서 찾아라. 물도 무서웠다. 여행 첫날 현지인이 수돗물로 양치하면 배탈 난다고 알려준 이후로, 나는 물을 적처럼 경계하며 살았다. 17일 동안 생수로 양치를 했다. 뭔가 귀족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귀족들은 이런 피로감을 즐기는 게 아니었나 싶었다.
한국 가고 싶다는 말을 매일 했다. 인자한 회사 사람들, 아늑한 내 방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콧날이 시큰거렸다. 거기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평온하게 혼자 있게 해준다. 오토바이가 인도로 달려오지 않는다. 냉방이 된다. 물로 양치를 해도 된다. 당연한 것들이 그토록 간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발리에 가서야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귀국하는 날,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비행기 문이 열렸다.
차갑고 건조한 2월의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한국은 겨울이었다. 아마 거의 냉동고 온도였을 거다. 방금 발리에서 돌아온 나에게는 그것이 냉장고 정도의 시원한 공기였다. 나는 그 공기를 폐 끝까지 들이마셨다. 17일 치 동남아 더위가 온몸에 배어 있던 채로 마신 인천공항의 2월 공기는, 솔직히 말하면 알프스 공기였다. 아니, 알프스에 가본 적은 없으니 정확하게는 내가 상상하는 알프스 공기였다. 맑고 차갑고 거의 신성한 느낌이었다. 뭔가를 마셨는데 정화가 되는 느낌이랄까.
택시 안에 탔다. 안전벨트를 맸다. 운전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했다. 발리 택시 기사는 뭘 물어보든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다줬다. 그 고개 끄덕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는 이제 안다. 끄덕임은 동의가 아니라 발리 특유의 인사였다. 나는 그걸 17일 만에 깨달았다. 그런데 이 기사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달렸다. 차선 안에서. 신호를 지키면서.
창밖을 보았다. 차들이 차선을 지켰다. 인도에는 사람만 있었다. 오토바이가 없었다. 신호등이 있었고, 그 신호등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내 차 창문을 두드리며 물건을 팔려 하지 않았다.
눈물이 날 뻔했다. 과장이 아니다.
서울이 이렇게 반듯한 도시였구나. 이렇게 질서 있는 곳이었구나. 나는 지금까지 여기 살면서 왜 이걸 몰랐지. 한국은 천국이었다. 내가 천국에 살면서 천국인지 모르고 살았던 거다. 인간은 익숙한 것을 천당이라 부르지 않는다. 잃고 나서야 안다. 나는 17일 만에 천국을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갔다. 기쁨이 조금 과도했지만, 그 과도함조차 달콤했다.
그 감격을 가슴에 꽉 안은 채, 다음 날 출근했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라고 해봤자 별거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가 어, 왔어요? 발리 어땠어요? 라고 한 마디 물어봐 주길 바랐다.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 한 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17일치 이야기를 뒤통수에서부터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치고, 젖고, 흥정 당하고, 길을 잃고, 네비가 틀리고, 생수로 양치하고. 이야기 재료는 차고 넘쳤다. 나는 작가처럼 17일을 살았고, 지금은 관객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오자마자 회의를 하잔다. 분위기가 어두웠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17일 전에 나갔던 그 문으로 그냥 다시 들어온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발리라는 단어는 공기 중에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잠깐 내가 정말 발리에 다녀왔나 의심했다.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화면이 켜지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아직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화면이 완전히 켜지고, 이메일 알림이 뜨기 시작하고, 메신저가 울리기 시작하는 그 3초 사이에, 희망은 조용히 퇴근했다.
받은 편지함에 읽지 않은 메일이 쌓여 있었다.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 여기 있었어, 하는 표정으로.
헉.
이게 무슨 일이야. 나 17일 동안 발리에서 고생했는데 이 이메일들은 왜 나를 기다리고 있었냐. 아니, 기다린 것도 아니다. 그냥 원래 여기 있었던 거다. 세상은 내가 없는 동안 나 없이 멀쩡히 돌아갔고, 그 결과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억울했다. 합리적이지 않은 억울함이었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그날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그다음다음 날도.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분명히 돌아오고 싶었다. 발리에 있을 때 한국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질서 있는 도로, 시원한 편의점, 말이 통하는 사람들, 양치할 수 있는 수돗물. 그것들이 진심으로 그리웠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니, 그토록 그리워했던 한국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휴대폰을 보거나 무표정하게 숟가락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차갑게 느껴졌다. 아무도 쉽게 웃지 않았다. 사람들은 감정을 안쪽으로 꼭꼭 눌러 담은 채 걸어 다녔다. 마치 감정에 진공포장을 해둔 사람들 같았다. 유통기한은 모르겠지만, 밀봉 상태는 완벽했다.
발리에서는 달랐다. 시끄럽고,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했지만 사람들이 웃어줬다. 말을 걸어왔다. 반응을 했다. 그 반응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돈 달라는 반응도 있었고, 흥정하자는 반응도 있었고, 완전히 엉뚱한 방향을 알려주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반응이었다.
퇴근길이 너무 조용했다. 발리에서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긴장됐다. 오토바이가 어디서 나올지 몰랐고, 햇빛은 너무 강했고, 냄새는 향신료와 매연과 젖은 흙이 한꺼번에 섞여서 코를 강제로 열어젖혔다. 낯선 얼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30분에 한 번씩 터졌다. 그때는 그 모든 것이 피곤하고 짜증났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 피곤함 속에서 살아 있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편했다. 분명히 편했다. 깨끗했고, 조용했고, 안전했고, 냉방이 됐고, 수돗물로 양치를 할 수 있었다. 내가 17일 내내 그리워하던 바로 그 공간이었다. 꿈에 그리던 곳에 실제로 누웠다.
그런데 외로웠다.
이상하게 외로웠다.
몸은 돌아왔는데, 감정은 아직 발리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다. 발리에서 매일 자극받고 반응했던 것들이 한국의 방 안에서 갈 곳을 잃고 배회했다. 다리는 아직 걷고 싶어 했다. 눈은 무언가를 더 보고 싶어 했다. 몸은 피곤한데 감각은 꺼지질 않았다. 마치 17일 동안 켜놓은 TV를 갑자기 끈 것처럼, 눈앞은 어두운데 귀에는 아직 소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지옥 같았던 발리가 자꾸 생각났다. 그 끈적한 공기. 정신없는 거리. 뭘 물어봐도 고개를 끄덕이던 택시 기사. 비에 젖은 신발 안에서 찰박거리던 감각. 나를 향해 달려오던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 그때는 그 모든 것이 싫었다. 진짜로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생생하고, 왜 이렇게 선명하고, 왜 이렇게 자꾸 생각나지.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발리는 나를 쉬게 해준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17일 동안 쉬지 못하게 만든 곳이었다. 그 장소는 매 순간 나에게 자극을 보냈고, 나는 매 순간 반응했다. 화가 나도 반응이고, 긴장해도 반응이고, 웃음이 나도 반응이고, 당황해도 반응이다. 불편한 반응도 반응이다. 짜증나는 반응도 반응이다. 심지어 돈 달라는 현지인에게 속으로 욕을 한 것도 반응이다. 나는 17일 동안 반응의 폭풍 속에 있었다.
공감이론으로 말하면 이렇다. 사람은 의지가 반응을 만날 때 존재감을 느낀다. 그런데 반응이 반드시 따뜻하고 예쁠 필요는 없다. 날 선 반응도 반응이고, 불편한 반응도 반응이다. 발리는 나를 계속 반응하게 했다. 그러니 나는 거기서 계속 살아 있었던 셈이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반응이 멈췄다.
몸은 편해졌는데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익숙한 것은 우리를 안전하게 하지만, 동시에 아주 조용히 우리를 잠재운다.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듣기 좋고, 편안하고, 그래서 눈이 감긴다. 나는 그걸 몰랐다. 발리에서 17일 동안 살아남고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어쩌면 이것이다. 한국이 낯설게 느껴진 건 한국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거였다. 17일 동안 발리의 공감장에 길들여진 나는 귀국 직후 한국의 공감장이 낯선 외국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곳도 17일만 비우면 낯선 곳이 된다. 익숙함은 유효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모르는 사이에 그 유효기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여행은 비행기가 착륙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캐리어를 풀었다고 끝나지 않는다. 회사에 출근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여행은 내 안에 들어온 것들이 다시 나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영영 나가지 않기도 한다.
나는 발리에서 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발리는 아직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발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발리가 내 안에서 무엇을 깨웠는지에 대해. 지옥이라고 욕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그리워지는 그 17일에 대해.
당신도 한 번쯤 돌아오고 나서야 그리워진 곳이 있지 않은가.